행복과 기쁨의 차이
행복과 기쁨의 차이
행복과 기쁨의 차이를 아는가? 행복과 기쁨이 함께하는 경우도 있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성경에 ‘기쁨’은 성령의 열매이지만 ‘행복’은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는 것에 신기하고 흥미롭다. 왜냐하면 행복은 환경에 따라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연봉이 오르고, 새집을 구입하고, 자동차를 사고…. 이럴 때 행복지수는 치솟지만, 사업에 실패해서 집을 팔아야 하거나 몸이 아프다거나…. 그러면 행복은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기쁨은 환경이 힘들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환경에 대해 반항한다. 기쁨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혔을 때 찬양을 불렀다. 행복해서 찬송했을까? 아니다. 그러면 기뻐서 찬송했을까?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쁨은 세상 환경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쁨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 만들어주시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고통의 상황에서 기뻐했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바울은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세 번씩이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으나 하나님은 거절하셨다. 그러나 바울이 여전히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네 은혜가 네게 충분하다’며 거절하신 하나님의 뜻이 자기의 교만을 막기 위함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난의 잔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No라고 응답하셨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기쁨으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자신이 받은 고난이 헛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이 자기 앞에 놓여 있음을 알고 있었다. 절대 시들지 않고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이 자기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아직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인해 힘든 상황에 빠져 행복하다고 말하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 속에서도 기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기쁨은 우리가 사는 그 어떤 환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반항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고난을 예방하고 낙심을 예방하는 백신과 같기 때문이다.
이정금 전도사
산발랏 도비야 비아냥
여우도 넘나드는 담장이라
비웃음 뒤로하고
한 손에 병기, 한 손에 연장
별 보고 일어나 별 보고 누우니
무너진 성 재기의 나팔이
가신 님 위하고 오실 님 맞으니
재기의 깃발은 꿈나래 춤을 추네
朋友
음모를 혐오하시는 하나님
한 성도가 코로나 백신주사 음모론을 접하고 그동안 접종을 미뤄왔는데, 때마침 마귀의 장난에 속지 말 것을 주장하신 총회장 목사님의 설교에 확신을 얻고 주사를 맞았다고 한다.
믿음이 연약한 자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고 받아야 하기도 하지만(롬14:1), 그렇게 믿음이 연약해지도록 만드는 마귀의 역사도 분명히 있다. 코로나라는 위기의 토양에서, 마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두려움과 부정을 주입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가졌다. 품지 말아야할 생각 그 이상의 과도한 생각을 품어(롬12:3), 부분적인 사실에다가 거짓을 교묘히 섞어가며 스스로도 속고 남도 속이게 만든다(딤후3:13). 이해 불가능한 보이지 않는 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무엇인가와 부정적으로 추론하고 연결 지으려 한다는 면에서 음모론은 영적인 요소가 분명히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망령되고 헛된, 꾸며낸 이야기들을 물리치고, 경건함에 이르도록 연단해야 한다(딤전4:7).
성경에도 많은 음모론이 등장한다. 유대민족을 죽이려던 하만의 음모, 산발랏과 도비야의 성벽건축 훼방음모, 진리를 막아서서 예수를 죽이려했던 바리새인들의 음모, 예수의 부활을 거짓으로 둔갑시킨 음모, 계시록의 7교회에 등장하는 음모론 등등! 그러나 하나님은 각종 악한 음모들을 결국에는 당신의 선한 뜻으로 바꾸신다. 악과 거짓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며, 하나님이 부재한 것이기에 종국엔 안개와 같이 사라지고 만다. 반대로 예레미야 선지자는 국가반역자로 취급받고 음모론자로 몰렸으나, 결국 그 선포의 기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그대로 성취되었기에 그것은 음모가 아니었음이 증명되었다. 불안을 조장하는 음모론들을 예방하고 치유할 핵심 자원은 바로, 성경 말씀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히 서기 때문이다. 음모를 혐오하시고, 거짓을 말할 수 없으신 하나님(민23:19), 그런데 성경 말씀은 그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딤후3:16). 그러니 결국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 기가 막힐 웅덩이에서 건져 우리의 발을 견고한 반석위에 세우시고(시40:2), 종국엔 우리를 위해 선(善)을 성취하실(롬8:28) 하나님께만 삶의 토대를 두자!
송직화 목사
계란으로 바위치기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이익은 커녕 손해만 보는 어리석은 일, 또는 불가능하고 무모해 보이며 도저히 승산이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개구리 두 마리가 우유 통에 빠졌습니다. 첫 번째 개구리는 자신의 운명을 개탄하고 헤엄쳐 볼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스스로 빠져 죽었습니다. 두 번째 개구리는 하나님이 구해주실 것을 굳게 믿고 기적이 일어나기를 빌고 빌었습니다. 기도하던 중
‘너는 빠져나올 수 있다! 계속 발길 짓을 하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개구리는 어떻게든 우유 통에서 빠져나오려고 버둥대며 뒷발로 우유를 휘젓고 또 휘저었습니다. 마침내 우유가 치즈가 되면서 딱딱하게 굳자 개구리는 그것을 딛고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포기하는 순간 핑곗거리를 찾게 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방법을 찾습니다.
최근 저에게도 계란으로 바위를 깨야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첨단재생의료 및 바이오 의약품 안전에 관한 법률에 의거, 제가 대표원장인 신우 신경재활의학과 줄기세포센터는 2021월 7월 8일, 식약처로부터 첨단재생의료 줄기세포처리시설 허가를 받았습니다. 이는 줄기세포배양 및 줄기세포연구 등에 관하여 바이오시설과 연구인력, 줄기세포 배양기술력을 국가로부터 인증받은 것입니다. 첨단재생의료 법률에 의거, 본 신우 줄기세포센터는 허가일로부터 합법적으로 줄기세포를 배양할 수 있으며 본 줄기세포센터에서 배양한 줄기세포를 외부 첨단재생의료기관(대학병원, 종합병원 등)에 공급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배양된 줄기세포를 이용한 희귀난치질환 임상연구와 치료를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절박한 희귀·난치질환자에게 새로운 줄기세포 치료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재생의료법률과 제도의 미비로 줄기세포치료를 위해 많은 환자들이 해외(중국, 일본)로 나가야 했던 불합리성을 개선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국내에서 국가(식약처)가 허가한 줄기세포 처리시설 허가를 취득한 의료기관, 연구소에서만 합법적으로 줄기세포를 배양하고 치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우 줄기세포치료센터는 첨단재생의료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의거, 식약처로부터 줄기세포처리시설 허가를 받았기에 경쟁력 있는 연구인력 및 시설과 차별화된 배양기술을 통해 합법적으로 배양된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루게릭병, 파킨슨, 알츠하이머 치매, 뇌졸중 및 희귀 난치질환 치료와 코로나 백신 등 첨단바이오 의약품 연구가 가능해졌습니다. 이런 최첨단 줄기세포 재생의료를 통한 희귀 난치질환 치료와 연구는 서울대학병원, 가톨릭 서울성모병원, 차의과대학 차병원 등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의료기관은 병원이 아닌 작은 의원입니다. 이번에 저희 줄기세포센터가 식약처로부터 세포처리시설 허가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고 골리앗과 어린 소년 다윗의 싸움이었습니다. 주변에서 애당초 되지 않는 일로 헛수고라고 모두 말렸습니다. 특히 이번 세포처리시설허가는 우리나라 SKY대학 중 Y대학교 세OO스병원과의 경쟁에서 한 곳이 허가받는 상황이었습니다. 초일류 대학병원 첨단의료센터와 명성도 없는 저희 의원급 줄기세포센터와의 싸움이었기에 처음부터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철저히 준비해야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패색이 짙어지고 저도 지치고 번아웃 상태에 이르러 포기하고 싶어졌습니다.
그 순간 총회장 이초석 목사님께 전화드렸습니다. 그간의 사정을 말씀드리고 기도 부탁드렸습니다. 목사님 특유의 목소리 톤으로 “No!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잖아! 네 생각이 부정적이면 하나님도 네 의지를 초월하여 도우실 수 없어! 꿈을 가져! 할 수 있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은 거짓말을 못하시잖아!” 하시며 전화로 축복의 기도를 아주 강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이초석 목사님께서 저희 병원까지 찾아오셔서 제 머리에 안수하시며 기도해주셨습니다. 안수받는 내 머리가 갑자기 뜨거워졌습니다. 그 순간 내 영혼과 마음으로부터 작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기도하고 간구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알아라!”
‘아! 이번 도전한 일이 이루어지는구나.’ 하는 확신이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이후에도 식약처는 이런저런 사항들을 지적하며 개선하고 보완하고 증거서류를 제출하도록 압박하였고 한가지가 끝나면 또 다른 보완사항을 끊임없이 요구하였습니다. 제풀에 지쳐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목사님 기도와 성령의 뜨거운 응답을 받았지만 너무 지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다시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때마다 이초석 목사님은 카톡 문자로 잠언을 보내시고 중간중간 전화로 확인하시며 ‘꿈을 버리지 마라! 이겨놓고 하는 싸움이다. 힘내라. 하나님이 도우신다.’ 하시며 기도해주셨습니다.
2021년 4월 8일 시작한 일이 2021년 7월이 시작되었는데도 진전이 없었습니다. “엘리야가 사환에게 명한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왕상18:43)”는 말씀을 붙잡고 버티고 있던 순간 정말 작은 구름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큰 비가 내렸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식약처의 지적사항을 끊임없이 개선하여 보완내역을 계속 올리고 있던 중 Y대학교 세OO스 병원 첨단재생센터에서 포기하겠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Y대학교 세OO스 병원 담당 직원 및 교수들도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Y대학교 세OO스 병원도 지적사항과 보완내역이 너무 많고 이런저런 규제로 더 이상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판단하였습니다. Y대학교 세OO스 병원은 다음 기회에 다시 신청하기로 내부회의에서 결정하고 세포처리시설 허가 신청을 포기하였습니다. 이런 우여곡절이 있는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 제가 섬기는 신우 신경외과/재활의학과의원 줄기세포센터가 세포처리시설 허가를 받게 됩니다. 하늘에 있는 별을 따온 것입니다.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자녀가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내어줄 사람이 있겠느냐?…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태복음 7:9~11절),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기도하고 간절히 간구한 것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여 어린아이가 칼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 이상 하나님도 오래 참지 못하십니다. 나의 앞의 반석에서 샘물나게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되게 하시려고 그 힘든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의지하여 기도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것이면 계란으로 바위를 깨주십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감사드립니다. 줄기세포치료를 통해 생명을 살리는 일에 매진하며 예수님 이름을 높여드리며 복음전파와 선교의 수단으로 잘 감당하겠습니다. 포기의 순간과 눈물의 골짜기를 넘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질책과 격려와 쉬지 않고 기도해주신 이초석 목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포기하는 순간 핑곗거리를 찾게 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방법을 찾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을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도하며 해내는 일입니다. 하나님 자녀의 특권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신우신경외과 재활의학과
(메디스템 줄기세포센터)
대표원장 안계훈
중요한 것,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을 가장 먼저 할 줄 아는 사람이 복되다.
중요한 것을 나중에 하는 습관을 들이면 결국 그 일을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비단 큰 프로젝트나 큰일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다. 매일 반복되는 나의 일상적인 일에도 분명 우선순위가 있고, 그 우선순위에 맞게 행동해야 결국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다.
하루 일 중에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와 말씀 묵상일 것이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 집에서 자율적으로 내 신앙을 관리해야 한다면 이를 저녁이 아닌 오전이나 새벽에 하는 것이 당연히 유리하다. 저녁에는 또 무슨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당장 일과 후에 몸이 피곤하기만 해도 중요한 일을 포기하거나 뒤로 미루기 십상이다.
내 육체를 관리하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아침에 운동하는 습관을 들이면 다른 일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해내게 된다. 그러나 저녁에 운동하게 되면 여러 변수에 노출되어 결국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성공자의 책을 보면 그들 대부분 아침 일찍 기도와 명상과 운동을 하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아침잠이 없어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을 먼저 해야 중요한 것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시간 관리이고, 결국 자기 관리이다.
목사님 말씀처럼 자기 관리를 잘해야 내 인생에 부도가 나지 않는다. 자기 관리의 표본 같은 우리 목사님을 수십 년 따라왔다면 ‘이젠 적어도 그분 닮은 모습이 조금이라도 나에게서 보여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노력한다. 닮은꼴은 시간과 정비례하니까.
장명훈 집사
jjoshua@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