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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을 지켜라

1106호 · 2021-07-18
책을 펴다

주일을 지켜라

미국 12대 대통령인 재커리 테일러 장군의 대통령 취임식이 헌법에 의거하면 1849년 3월 4일이었다. 그런데 그날이 마침 주일이라 재커리가 취임을 거부하여 상원의장이 24시간 동안 대통령 임무를 대신했다. 그는 주일성수가 대통령 취임식보다 더 귀하고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1924년 프랑스 파리 올림픽 당시 100m 세계 신기록 보유자인 영국의 에릭 리델 선수는 100m 경주가 주일에 열리자 경기를 포기했다. 확실한 우승 후보자였지만 포기하고 주일을 지켰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를 높여주셨다. 400m 경주에 출전하는 선수가 갑자기 뛸 수 없게 되어 그가 대신 뛰게 되었는데, 그는 한 번도 400m 경주를 해본 적이 없었으나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47.6초의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믿지 않는 자에게 일요일은 공일(空日)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주일(主日)이다. 주님의 날이다.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뵙고, 온전히 그분을 위해 사는 날이 주일이다. 그러므로 그날은 온전히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저 잠시 예배만 드리고 자기 할 일을 하는 날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찾아 봉사해야 한다.

설마 주일에 상사 결혼식에 눈도장 찍으러 가지는 않는가. 돈 준다는 약속 때문에 주일성수를 하지 않고 사람 만나러 가지는 않는가. 아침 일찍 예배드리고 오후에는 골프 치러 가지는 않는가?

하나님을 홀대하면, 하나님을 경히 여기면 하나님도 당신을 홀대하시고, 우습게 여기실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을 꼭 지켜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20:8).

예수중심편집실

부르심의 소망

사막에서 별을 바라보며

저는 웃음이 많고 긍정적인 사람입니다만, 가끔 마음이 몹시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4장 18절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러면 저는 “하나님, 아브라함에게는 직접 ‘하늘의 뭇별처럼 네 자손이 많아질 것’(창15:5)이라고 얘기해주셨잖아요. 저에게는 아무 말씀도 없으시면서 제가 어떻게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저는 꿈이 없었습니다.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고, 무엇을 잘하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냥 회사 다니면서 봉사 열심히 하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니 로마서 말씀은 그저 답답하게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서 하나님은 총회장 목사님을 통해 제게 꿈을 주셨습니다. 제 처지와 환경을 생각하면 바랄 수 없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그 꿈을 들었을 당시에는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아멘’ 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것을 확신했습니다(롬4:20~21). 설렘만 가득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쉽게만 느껴졌어요. 그러나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저를 훈련하기 시작하셨고, 정말이지 너무 힘들고 아파서 다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외적인 부분, 남들이 그럴듯하게 볼 만한 스펙을 쌓게 하신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연단하셨기 때문입니다. 억울한 일이 생기면 조용히 입을 닫고 하나님이 신원해주실 때까지 수년을 기다리게 하시고, 서운함이 들 때에도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하게 하셨습니다. 신경을 살살 건드리며 화를 돋우는 일에는 무조건 참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거절당하고 상처받을 것 같은 두려움을 뛰어넘어 한 번 더 손 내밀게 하시고, 상대가 먼저 손을 내밀 때는 마음을 빨리 풀어서 때를 놓치지 않게 하시고, 행여 불순한 마음을 가지면 그것이 비록 아주 작은 마음일지라도 빨리 버리게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편에 서는 훈련에서는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으로 인해 더 곤란한 상황에 놓여 눈물이 그렁그렁 맺힘에도 견디게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힘들기만 해서 ‘내가 언제 그 꿈을 달라고 했느냐’며 원망했습니다. 그 모든 고통이 꿈을 위한 하나님의 훈련임을 알고 있었고, 또 하나님이 내게서 믿음을 보기 원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때에 믿음을 보이는 것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여러 차례 넘어지고 일어서는 훈련이 거듭될수록 이제는 모자람만 느낍니다. 기분에 따라 마음을 크게 쓰지 못하고 쪼잔하게 굴 때는 ‘난 아직 멀었구나.’ 하며 한숨 쉴 뿐입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갑니다. 여전히 훈련은 고되지만 더 이상 힘들게만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훈련기간이 길수록, 꿈을 향한 기다림이 길수록 그 사람은 내가 인정하는 사람이란다. 너도 끝까지 따라올 수 있겠니?”

예전처럼 뭘 잘 모르던 때였으면, “그럼요, 주님!” 하며 해맑게 대답했을 텐데 지금은, 저의 내면 상태를 보아 짐작건대, 아직 갈 길이 구만리나 더 남은 것 같아 대답 대신 눈물이 차오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훈련받은 시간들이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따라가 보려 합니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서 하늘에 닿도록 크게 외쳐봅니다.

“내 아버지 되신 하나님, 당신을 신뢰합니다.”

박영신

나도 건강할 수 있다

잘 안 낫는 병은 화병(火病)을 의심해야

화병은 잘 참는 여자들에게만 있고 동양에서만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서양인들에게도 화병이 많으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화병의 증상이 나타난다.

화병의 증상으로는 가슴에 열이 나고, 답답하고, 짜증이 나고, 불안하거나 한숨을 자주 쉬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이 있다. 또한 어지러움, 두통, 소화불량, 변비 설사가 잦은 증상, 불면증, 목에 무엇인가 걸린 증상도 있다.

화병으로 인하여 생기는 질환이 너무나 많은데 그중에 불면증은 가슴속에 화가 쌓여 수면 시에 얼굴이나 가슴이 뜨겁고 열이 있어서 수면에 들지 못하고, 답답한 가슴으로 우울하고 짜증이 나게 된다. 이것이 반복되어 심해지면 공황장애(극심한 공포를 느껴 발작을 하거나 숨이 잘 쉬지 않는 증상)로 발전된다. 화병이 식도로 가게 되면 역류성 식도염이 생기는데, 가슴이 타는 듯 뜨겁고 화끈거리는 증상이 바로 화가 쌓여있어서 생기는 증상이다. 화가 머리로 올라가면 열기가 모공을 손상시켜 탈모가 발생하기 쉽다. 갑상선 질환은 거의 화병으로 보는데, 화를 풀지 못할 때 나타나는 증상중 하나는 ‘매핵기’로 목에 무언가 걸려 답답한 느낌이 드는 증상을 말한다. 암환자의 경우에도 암이 발생하기 전에 큰 사건(사기, 배신, 상처, 파산, 억울한 사건, 외도, 이혼)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오랜 기간 작은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쌓인 만성 스트레스를 경험한 경우가 많다. 신체 심리학자에 의하면 암은 내 몸이 죽을 만큼 힘들다는 메시지이며,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하는 몸의 언어라고 한다. 그래서 암이 왔으면 지금껏 살아왔던 방식을 돌이켜보고 ‘우선멈춤’을 하고 내 몸과 소통하고, 내가 몸에게 한 잘못이 있다면 충분한 사과를 해야 한단다.

그럼 화를 푸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 나를 사랑하기. 화가 가득 차 있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못마땅해 하고 미워한다. 그러한 자신을 모르고 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의 의미는 자신의 부족한 점도 사랑하는 것이다. 10가지 좋은 모습이 있지만 하나뿐인 부족한 모습만 보면서 자책하는 사람들이 있다. 있는 그대로 부족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조차도 알아주고 인정해주어야 한다.

두 번째, 상처 주고 화나게 하는 가족을 용서하고 받아들이기. 나를 인정하고 사랑한 후에는 나의 생명의 뿌리인 부모와 가족을 사랑하는 단계이다. 완벽한 가족은 없으며 가족은 든든한 버팀목이지만 나를 더 화나게 하고 더 아픈 상처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면서 마음으로는 화라는 감정에서 멀어지고 용서하기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내가 화를 인정할 때 화는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용서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세 번째, 나를 화나게 하는 모든 것을 내보내기. 내가 누군가의 모습에 화가 난다면 그 모습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프랑스 심리학자 라캉은,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볼 수 없고 타인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즉 ‘타인이 나의 거울’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이것을 알고 인정하기만 해도 내 안의 감정은 순화된다. 나를 화나게 하는 저 모습이 나의 모습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화낼 일이 별로 없어진다.

마지막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언어를 사용하면 화가 줄어든다. 자기를 사랑하기 위해서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라는 말을 내 자신에게 오늘부터 자주 표현하는 것이 어떨까?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Dr. 설재현 집사

kseolmed@hanmail.net

신앙에세이

그 정도는 해야지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던 나에게 초등학생인 첫째 아이가 옆에 서며 말했다.

“아빠, 머리 좀 빗겨주세요.”

학교 온라인 화상 수업을 하기 전, 자다가 붕 떠버린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눌러 달라는 얘기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해주었을 텐데, 그날은 불쑥 이런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 정도는 혼자서 할 수 있잖아?”

문득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실 때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들었던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이 떠오르며, ‘아, 하나님께서는 그런 고백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으실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이가 ‘아빠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말보다 ‘아빠가 옆에 있으면 뭐든지 해낼 수 있다’는 말이 더 기쁘기 때문이다. 아빠가 보고 있으면 할 수 있다는 말이 기쁘고, 높은 곳에서도 용기 내어 나에게 뛰어내리며 와락 안기는 전적인 믿음과 그 행동이 기쁘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불가능은 없다, 불가능이란 생각만이 존재할 뿐이다’라고 외치는 주의 종을 필요로 하시고, 기뻐하시나 보다.

물론 아이가 걷다가 힘들 때 힘든 표정으로 나를 가로막고 안아 달라 하면 그래도 그 모습이 사랑스럽다. 아빠 힘든 것 생각해주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가지 않고 내 앞에 나아온 자체가 사랑스럽기에 안아준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지쳤을 때 그 앞에 나아가는 것을 왜 기뻐하시고, 우상을 찾아가거나 다른 사람을 의지하는 것을 왜 몹시 싫어하시는지 알 것 같다. 그래도 아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척척 해나갈 때 가장 기쁘다. 왠지 하나님께서도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얘야, 그 정도는 네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공부하면, 관리하면 되는 것 아니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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