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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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호 목차 › 객원컬럼

미련한 것 같으나

1104호 · 2021-07-04

우리는 구원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믿음으로 받는다. 그러나 그 축복을 얻을 때까지 방법도 선하라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이르러 진을 치고 여리고 성을 바라본다. 바라보니 능히 이길 것 같아 대군을 몰고 여리고 성을 향해 진격하는데, 갑자기 여호수아 앞에 한 사람이 칼을 빼들고 서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놀라 묻기를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노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신을 벗은 여호수아에게 천사는 어떻게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것인가 그 방법을 말씀해준다. 하루에 한 번씩 법궤를 메고 제사장들이 앞장을 서서 나팔을 불며 여리고 성을 엿새 동안 돌고, 제 칠일에는 일곱 바퀴를 돌다가 나팔과 함께 큰 소리로 외치면 무너진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약속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든지 하나님이 도울 것을 믿었다. 우리 속담에 “어떻게 가든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듯이 목적이 선하면 그 방법이 어떻든 상관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칼을 빼든 것이다. 목적만 선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방법도 선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 방법도 하나님이 주실 터이니 물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반대에 부딪히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하나님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어떨 때 그 방법을 말씀하시는가? 바로 거룩한 자에게 말씀하신다고 하신다. “너는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사막에서 ‘신을 벗는다’는 것은 인간이 의지하는 최저수단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사막에서 신발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그런데 신발을 벗으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이다. 주님만 의지할 때 하나님은 그 방법을 알려준 것같이 목적과 함께 방법도 거룩하라는 것이다.

민수기 22장에도 발락과 발람의 얘기가 나온다. 모압 왕 발락의 유혹에 솔깃해져 따라가는 발람을 칼을 빼든 주의 사자가 막아선다. 결국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고 축복했지만 베드로후서 2장 15절과 유다서 11절에 삯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잘못된 종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불의한 일인 줄 알면서도 눈앞의 이익 때문에 어그러진 길을 간다면 하나님은 칼을 빼실 것이다. 이것만 지나면 성공하겠는데 넘어가지지가 않는다. 이유는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들고 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 속에서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거룩하라, 순전하라, 성령을 거역치 말라.”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신기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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