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짐승이냐, 사람이냐?
과테말라 알몰롱가 집회 광경
최근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반려동물의 보유가 거의 일상화되고 있다. 오피스텔, 소형차, 반려동물을 갖추고 사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의 로망이라고 할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 사이의 소통은 줄어들고, 기존의 윤리 관념이 희미해지면서 사람보다 동물이 우대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목사님은 지난 수요예배를 통하여 이러한 세상풍조를 따라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질타하셨다.
“상담을 통해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우리 교단 내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디다. 애완견을 키우고 있는 동생 집에 애들을 데리고 방문했는데, 아마도 대소변을 못 가리는 어린 조카가 거실에서 일을 본 모양입니다. 그러자 동생이 난리를 치더랍니다. 더럽게 아무데서 그런다고 말이죠. 그런데 참으로 웃기는 건, 키우는 애완견에게는 ‘아유, 우리 새끼, 쉬했어?’ 하며 얼러주더랍니다. 기가 막힌 언니가 후에 저에게 들려준 이야깁니다.
어디 어린 조카뿐이겠습니까? 제가 전에 얘기했었죠? 자식 놈이 며느리와 함께 애완견을 얼마나 아끼는지 부모에겐 그리 인색하게 굴면서 애완견에게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애완물품을 사 나르고 먹을 것을 이것저것 사다 먹이더랍니다. 화가 난 아버지가 하루는 자식 놈 퇴근할 때 맞춰서 개집에 들어가 있었답니다. 기가 차고 코가 찰 일 아닙니까? 반려동물을 키우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보다 동물이 앞섭니까? 더구나 부모보다? 조카보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이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 할 짓입니다. 난 젊은이들이 내 말이 듣기 싫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옳고 그른 것은 분명히 가르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며 키워준 부모를 업신여기고, 현대판 고려장으로 늙고 힘없는 부모를 버리질 않나, 심지어 부모를 죽이기까지 하는 인간 말종들이 있으니 이게 사람입니까? 짐승이지? 아니 짐승만도 못합니다. 말 못하는 짐승도 자기 가족을 지키려 맹수와도 싸우고, 주인을 지키려 목숨을 던지는 충견들의 일화도 있지 않습니까? 진실로 깨닫기 바랍니다.
제가 과테말라에 갔을 때 일입니다. 수도 과테말라시티 집회를 마치고 시골마을인 알몰롱가에 갔는데, 시장을 비롯한 관리들과 상인 및 주민대표들이 상가를 철시하고 나와 대대적인 환영퍼레이드를 펼치며 저와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습니다. 방송 인터뷰를 하고, 세미나 및 집회를 성황리에 마친 후, 알몰롱가 집회를 배설한 마리아노 목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는 알몰롱가 시의 족장역할까지 하는 그 지역사회에 신망이 두터운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말하길 과테말라는 인구 1,400만 중 약 900만이 인디언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인디언 사회에는 인디언 부족법이 여전히 강력한 효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과테말라 법 위에 인디언 부족법이 상위법으로 작용하여 중죄를 범하면 족장의 명령에 따라 공중 앞에서 매질을 하고 멍석에 말아 불태워버린다고 하네요. 이런 처결에 과테말라 정부도 어쩌지 못한다고 하는데, 만일 정부나 지역경찰이 간섭했다가는 인디언 사회의 엄청난 저항과 소요를 각오해야 할 정도랍니다. 이로 인해 알몰롱가에는 아예 교도소가 없다고 합니다. 형벌 자체가 워낙 무섭다보니 누가 감히 죄를 범할 생각조차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사회를 지탱하는 윤리와 도덕, 사회풍속을 저해하는 행위는 분명히 엄벌해야 마땅합니다. 작금의 이러한 현실은 정말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6장 7절 말씀처럼,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가르쳐야 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에베소서 6장 2,3절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세상풍조를 따르지 말고, 제발 인간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