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은혜를 기억하라
받은 은혜를 기억하라
책장을 정리하다 책들 사이에 살짝 삐져나와 있는 일기장을 발견했다. ‘1년만 써보지 않겠냐?’는 권유로 시작된 일기 쓰기는 처음엔 무엇을 적어야 할지 몰라 몇 마디 적거나 그림일기처럼 일과를 적는 게 전부였었다.
그러나 하루하루 일기를 쓰다 보니 점점 글 쓰는 게 늘었고, 점점 상세하게 적게 되었다. 무엇보다 누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기에 나 자신에게 솔직히 그날의 모든 생각과 감정 또한 적게 되었다.
일기를 쓰다 보니 마지막은 감사와 회개의 기도로 마무리를 하게 되었는데 무엇보다 감사한 것들이 많이 보였다. 그때 적었던 기도문이 며칠 뒤 응답되거나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도 너무나 감사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다시금 상기시키면서 지금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 첫사랑을 지금도 잃어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일기를 쓰기 때문이라는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아하수에로 왕이 모르드개에게 은혜를 입은 기록을 통하여 은혜를 갚았던 것처럼, ‘흐르는 물 한 컵을 떠줘도 은혜를 잊지 말라’는 말씀처럼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들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 생각과 기억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어 있는 법, 그것을 적어놓아야 잊지 않는다. 좋은 기억력보다 흐린 잉크가 낫다고 하니까.
태초부터 영원토록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록해놓은 성경을 사모하며, 받은 은혜를 매일 적어 기억하고 간직하자.
일기는 나의 영적 성장과정 기록이며, 반성기록지이고, 훌륭한 인생 자습서다.
이은성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가면
살다 보면 때로는 억울하지만 내 힘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인간적인 수단과 꾀를 쓰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가느냐가 관건이다.
나에게도 기억나는 사건이 하나 있다. 지도하는 아이의 엄마가 어느 날 잔뜩 화난 얼굴로 회사의 대응 태도에 관한 불만을 쏟아내며 강하게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 시간 가까이 멈추지 않고 쏟아지는 고객의 불만 내용을 다 듣고, 회사에서도 딱히 해결책이 없다는 답변을 들은 나는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 기도하며 일하던 중,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또렷하게 말씀하셨다. ‘괜찮다!’. 홀로 답답해하는 것을 아신 성령님께서 그 일이 원만하게 해결될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다시 만났을 때 아이의 엄마는 반가운 얼굴로 곧바로 사과부터 했다. 이유인즉슨, 그날 내가 돌아가고 나서 마음이 이상하게 계속 불편하더란다. 이유를 찾던 중, 잘못이 없는 나에게 크게 화를 낸 것이 생각났고 이후로 나에게 사과하려고 계속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 후 그분은 때마다 나에게 좋은 것으로 대접하며 끝까지 충성 고객으로 남았고, 회사에서도 나를 유능한 직원으로 인정해주었다. 만일 그때 내가 그 고객과 문제를 수수방관한 회사에 맞서 다짜고짜 항의부터 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비록 작은 사건이었지만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거나 불평부터 하기 전에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직접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일하셔서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시는 것을 목도한 귀한 경험이었다.
성경에서 요셉, 다니엘, 다윗과 같은 인물들은 이유도 알 수 없는 주변 사람들의 시기, 질투와 모함으로 인해 흑암과 같은 깊은 곤경 가운데 빠져 있을 때, 해명 변명하거나 사람과 맞서 싸우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신원하시고 세우실 때까지 자신의 일에 묵묵히 성실했고, 인간의 꾀나 방법을 배제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기다렸다. 내 방법대로 가는 것이 쉽고 빠른 것 같지만, 조금 어려워도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묵묵히 기다리고 그분의 방법대로 가는 것이 진리이며, 인생의 행로 법칙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다르고, 축복은 하나님의 생각과 방법을 따라갈 때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국진 사모
보상심리를 버려라
‘보상심리’란 내가 한 행동에 대해 보상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이때 쓰이는 ‘보상’을 영어로 ‘reward’라고 하는데, 성과금이나 상(賞)의 의미로 쓰이곤 합니다. 이처럼 보상심리는 내가 무엇인가 잘했을 때, 칭찬받을만한 행동을 했을 때 ‘상’ 혹은 ‘대가’를 원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나를 알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대학부 안에는 저에게 맡겨진 영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셔서 기도하고, 연락하고, 마음을 다해 사랑합니다. 그렇게 팀원들에게 마음을 쓰면 저도 모르게 ‘내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우리 팀원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내가 나의 팀원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나의 팀원들도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기도 합니다.
이 마음은 저의 보상심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것처럼 사랑은 오래 참고…,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향한 나의 기도나 사랑이 당장 열매 맺지 않아도 오래 참고 계속 사랑하는 것, 아무도 나의 사랑을 알아주지 않아도 자랑하지 않고 묵묵히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진짜 사랑입니다.
생각해보면 보상심리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저희를 태초부터 사랑하셨으니 말입니다. 세상일에 바빠 하나님을 소홀하게 여길 때도, 예수님을 몰라 세상에서 방황할 때도, 마음이 강퍅해 하나님을 외면할 때도 하나님은 언제나 저희에게 손 내미십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양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사랑하지 못할 때 사랑하자.’ 나의 마음을 몰라줘서 억울하고 마음이 상할 때, 상대방을 향한 나의 기도가 열매 맺지 못할 때, 그때가 정말 나의 사랑을 증명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이 그 누구보다도 나의 마음에 공감하시고 나를 알아주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 이웃을 더 사랑할 수 있기를 소망하겠습니다.
장수정
천국 가기까지
지난 5월 언니가 복통을 호소해 응급실에 내원했다. 상장간막동맥증후군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콧줄(비위관)을 통해 충분한 칼로리와 영양분을 공급하면 수술하지 않고도 완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지적 장애가 있는 언니가 콧줄을 손으로 빼는 걸 방지하기 위해 손과 발을 침대 끝에 묶었다. 콧줄을 하면 침 삼킬 때 코와 목에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는데, 언니는 가래까지 생겨 그 통증으로 인해 24시간 중 5분도 잠들지 못하고 몸부림을 쳤다.
온몸의 기력이 쇠하여 가는 게 역력했다. 강력한 영양제가 투여되고 있었지만, 언니의 정신은 더욱 혼미해져 나를 못 알아보거나 ‘엄마’라고 부르기도 했다. 정신이 돌아오면 결박된 손을 풀어달라고 애원했다. 억장이 무너져 내렸고 오열하며 언니에게 따라서 말하라고 했다. “예수님, 저 고통 없이 천국으로 데려가주세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따라 하는 모습을 보며 안도하며 구원의 확신을 얻었다.
이틀 후 새벽 4시경, 언니는 기어코 묶인 손을 푼 후 콧줄을 빼버리고 말았다. 두 명의 간호사가 언니를 결박하고 표정 없는 의사는 연속 4번 콧줄을 넣었다 뺐다 반복했지만 실패했다. 온몸을 비틀며 발버둥 치는 모습에 “이러다 사람 죽겠어요. 낮에 껴도 되는데 자다 말고 이게 무슨 짓이에요.”라고 다급하게 외쳤다. 의사는 ‘두 번만 더 시도해보고 안 되면 낮에 끼우겠다.’ 했고, 그 두 번째에 언니의 심장은 정지되었다. 기나긴 심폐소생술이 성공되어 인공호흡기가 부착되었으나 언니는 의식도 없었고 갈비뼈도 손상되었다.
중환자실 면회는 거부되었고, 담당 의사에게 연명치료 거부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여전히 몸부림은 계속되고 있다는 간호사의 답변에 이유를 물으니 의식은 없지만 통증이 원인이라고 한다. 언니의 영혼이 고통 받고 있음에 가슴이 미어졌고 큰 결단을 해야 했다.
임종하기 전날 주일 새벽에 꿈을 꾸었다. 언니가 퇴원해서 집에 왔는데 화장실 간다기에 딸에게 부축해드리라 한 후 나는 언니의 식사를 준비했다. 된장찌개를 끓였는데 너무나 맛있게 끓여졌다. 좋은 꿈같다.
나는 교회 도착하자마자 제비같이, 학같이 목 놓아 슬피 울며 기도했다. 많은 눈물이 마스크를 가득 적셨다. 평안이 몰려왔다. 다음날 오빠, 동생과 함께 연명치료중단에 사인했다. 의사는 마지막으로 면회를 허락했다.
지치고 피폐한 모습의 언니는 나를 알아보았고, 두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언니를 지명하여 직접 집사 직분을 주셨던 상화평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언니의 귓전에 갖다 대었다. 조용한 병실 가득 목사님의 간절한 기도가 울려 퍼졌다. 언니는 입을 크게 벌려 ‘아멘’을 두 번이나 했다. 나는 눈물을 닦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천국은 너무나 좋은 곳이야.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초점을 잃은 언니에게서 주렁주렁 매달려있던 줄들이 분리되었고, 2시간 후 언니는 소천 하셨다. 발인 전, 입관을 도우시는 분이 ‘대부분 사망 시 고통으로 인해 근육이 심하게 경직되는데 언니는 너무나 부드러워 고통 없이 천국 가신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수의 속으로 손을 넣어 언니의 손 마디마디를 만져 보았는데 실제 살아있는 듯 부드러웠다. 나의 기도가 응답받는 과정을 알고 있던 오빠, 동생에게 복음을 전했고 긍정의 답을 들었다.
며칠 후 진료기록지를 확인한 결과 최초 심정지 원인이 콧줄 삽입하다 발생한 의료과실이 아닌 선천적 지체장애 호흡부전이라고 기록되어있었다. 분개한 나는 한국의료분쟁 조정중재원에 조정절차를 열람하였고, 1인 시위를 통해 그 의사의 명예를 최소한이라도 실추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곧 마음을 바꿨다. 당시 의사는 당황하며 환자가 협조하지 않아 가래가 기도로 넘어가 생긴 심정지라며 변명했고, 그 어떤 말도 건네지 않고 무작정 콧줄을 넣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나는 살인행위라며 반박했지만, 체념한 후 ‘천국 가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로 마무리했던 일들을 녹음했었다. 그 마지막 말이 발목을 잡았다. 그가 불신자라면 나의 이 말이 씨뿌리는 역할을 한 것이고, 믿는 자라면 크게 회개해야 할 그의 몫이라고 받아들였다,
‘엄마가 이모 십일조 내드렸고, 이모는 죄도 짓지 않아 천국에서 부자로 살 것’이라며 딸이 위로해준다. 맞다. 나는 수시로 불평하고 죄짓고 회개하길 반복하며 제자리를 맴돌았지만, 평생 지적장애인으로 산 언니는 불평 한번 없었고, 교회 가는 날이면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준비를 마쳐놓곤 했었다. 지난주일 이월드 목사님이 성경공부 많이 하고, 학사모 쓴 사람이 천국 가는 게 아니고, 지능이 낮아도, 지식이 없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지적장애인이 천국 간다고 하셨다.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어린아이와 같은 자를 사랑하신 하나님, 이 땅에서 존재감 없이 살았던 언니를 사랑하신 하나님께 이 지면을 통해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추성숙 집사
세대 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
세계 어느 곳이나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차이는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이 변화를 거듭하면서 발전해오고, 그 발전한 문명의 혜택을 자녀 세대들이 살면서 겪은 경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겪은 50년대 이전에 태어난 어른들이 ‘아끼고 절약해야 잘 산다’고 이야기를 하시면, 고도성장기에 태어난 60, 70년대 세대들은 이 말에 100% 동조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6, 70년대 세대들이 신문을 스크랩하며 신문 사설을 8, 90년대 세대에게 이야기하면, 그들은 고리타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좋은 논설문이나 좋은 시각자료들은 소셜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8, 90년대 세대들에게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예로, 80년대에 태어난 저는 모르는 것을 검색할 때 네이버나 구글과 같은 포털사이트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2000년대에 태어난 청소년들은 유튜브와 같이 영상을 통해 모르는 것을 찾아봅니다. 이런 식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사회가 발전해감에 따라 세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사용설명서를 책으로 읽어보는 것과 영상으로 익히는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서로 다른 세대는 언제나 같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기성세대들은 새로운 도구와 문명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세대를 관통하는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차 조심해라.”, “몸에 나쁜 음식을 먹지 마라.”,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등등의 보편적인 당부도 좋지만, 세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다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가르치는 것이 기성세대가 차세대에게 꼭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교회도 오랜 시간이 흘러 어른들과 청년들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교회는 늘 힘이 넘치고 성령이 함께 하시는 것 같지 않나요? 그 이유는 세대가 거듭하고 변화해가도 변치 않는 진리를 가르치고 배워 성령이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세대 차이를 더 부드럽게 융화시키는 것은 어른들이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는 배움보다도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진리의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잘 배우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대화
이미 주신 응답
올해 초 이시대 목사님께서 3가지 올해의 목표를 노트에 적어놓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바로 이 세 가지였다. 그중 내가 갖고 싶은 것으로 적어놓은 것은 새 핸드폰이었다. 이미 기존 핸드폰을 6년째 쓰고 있던 터라 멈춰도 언제 멈출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바람은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통해 선물로 주시는 것이었다. 여러 사람 돕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보니 하나님이 보상으로 선물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았고, 또 그래도 기도 제목인데 내가 내 돈 주고 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도하며 기다리던 도중 내가 하고 있던 일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간단한 제안이 들어와 100만 원가량이 갑자기 수중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에 총회장 목사님께서 설교해주신 말씀을 듣고 그제야 깨달았다. 재난 속에서 하나님께 구해달라고 기도했던 사람에게 하나님이 헬리콥터를 보내주셔서 구하시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직접 구해주시는 것이 아니라고 도움을 거절했던 사람의 이야기. 그 사람이 바로 나라는 걸 깨달았다.
갖고 싶은 것을 놓고 기도했고, 그걸 사라고 100만 원을 이미 보내주셨는데, 어리석게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만 기다리고 있던 나였다. 깨닫고 나서 즉시 그 돈으로 핸드폰을 사기 위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친구를 돕기 위해 만나러 간 곳 근처에서 그날이 마지막인 핸드폰 할인 행사를 우연히 발견했고, 시세보다도 훨씬 저렴하게 새 핸드폰을 구입하게 되었다.
저처럼 하나님이 이미 내 기도에 응답하셨을 수 있다. 다만 내가 둔하여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이미 주신 응답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감사할 줄 아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자.
장명훈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