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자유
얼마 전에 나와 손자 녀석들이 집의 창틀을 칠한 적이 있다. 그래서 페인트 색을 고르는데, 손자 중 미술을 전공한 녀석이 파스텔 색조를 주장한다. 그래야 집에 품격이 있다나? 그러나 나는 원색이 좋다고 말했다. 빨강, 파랑, 노랑…. 내 말에 손자는 집이 유치원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나는 그 손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왜 색깔을 억압하니? 색깔을 해방시켜 자기 색을 분명히 드러나게 해야지. 요즘 은은한 색이라 하며 색을 희석하는데 할아버지는 그건 옳지 않다고 본다. 본연의 색이 드러나야지.”
나는 요즘 잠언을 쓰고 있다. 그것을 빨간 판에 만들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내주고 있다. 간혹 이것을 받아본 사람 중에 ‘왜 빨간색 판에다 글씨를 쓰느냐’는 사람이 있다. 빨간색은 우리 교단의 색깔이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미하는 색이요, 열정을 나타내는 본래의 색이기에 나는 빨간색을 선호한다.
생각에도 자유를 줘야 한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머리는 좋은데 왜 창의성이 결여되었을까? 이는 생각을 짜인 틀 속에 구겨 넣기 때문이고, 아이들의 생각을 희석시키기 때문이다. 같은 교복을 입듯 같은 생각을 하게 하는 교육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만의 색깔, 그것은 개성이다. 개성이란 내 생각과 내 삶의 색에 자유를 주었을 때 생겨나며, 이것은 유행이나 관념 따위로 희석되지 않는 독창성을 말한다. 내가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등, 다른 교단과 차별화를 두는 것이 우리 교단의 독창성이다.
고정관념, 그것은 우리를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든다. 규범이나 규칙, 당위성이나 전통을 깨고 생각이 자유로워질 때 무한한 미래가 열리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많은 문화적인 혜택들이 이 자유로운 생각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던가.
물을 가둬두면 썩는다.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할 때 그것이 강에 이르고, 더 넓은 바다에 이르는 것이듯, 생각에 자유를 부여할 때 개인의 삶이, 나아가 사회가 넓고 깊고 풍성해질 것이다.
생각에 자유를 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