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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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도 아껴라

1099호 · 2021-05-31
겨자씨만한 믿음

작은 것도 아껴라

임진왜란 때의 재상 오성 이항복의 어렸을 때 이야기다.

항복은 대장간에서 낫이나 호미를 만들며 그 끄트머리 쇠붙이를 아무렇게나 내버리는 것을 보고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양반 체면에 상놈이 버린 것을 손으로 줍기는 그래서, 그는 노는 체하고 엉덩이로 그것을 모아 아무도 보지 않게 집으로 가져갔다. 이것이 한두 번이 아닌지라 대장장이도 눈치를 채고 말았다. 그래서 한 번은 뜨거운 쇠를 버려 항복의 엉덩이를 데게 하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항복이 성인이 되었고, 더불어 대장장이는 늙었다. 성인이 된 항복이 가난하고 초라한 대장장이를 보고는 안쓰러운 마음에 어느 날 자기 집으로 불렀다. 왜 부르는가 싶어 온 대장장이를 향하여 항복이 말했다.

“나는 영감이 이렇게 되리라 미리 짐작했었소.”

대장장이는 이 말에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항복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러자 항복이 다시 말문을 연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그렇게 쇠붙이를 함부로 버리는 것은 낭비였소. 그것들을 녹이면 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는데 말이요. 내 집 창고에 가 봅시다.”

하여 대장장이가 창고에 가보니 자기가 버린 쇠붙이가 가득 쌓여있었다.

“내가 그간 가져온 쇠요. 그러나 당신 것이니 가져가시오. 그리고 앞으로는 작은 것을 귀히 여기시오!”

10원이 모여 100원이 되는 것이고, 100원이 쌓여 1,000원이 되는 것이다. 작은 것을 우습게 여기면 작은 것 때문에 울 날이 꼭 오고야 만다.

작은 것을 귀히 여기고 아껴라.

이초석 목사 저서 ‘사랑이 무르익어야

결혼에 골인한다’ 중에서

소망의 언덕

그날이 도적같이

지난 5월 15일 토요예배 중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총회장 목사님께서 중고등부 예배에 찾아오셨습니다. 총회장 목사님은 사전에 어떤 연락도 없이 찾아오셔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모든 예배의 순서가 끝나고 제 마음에 남는 큰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물론이고 교사들과 학생, 그 누구도 목사님께서 그날 중고등부에 찾아오실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전혀 예상 못한 순간에 총회장 목사님이 찾아오신 것처럼 예수님의 오심도 이와 같겠구나.’ 목사님이 갑자기 오셔서 너무 반가웠지만, 솔직히 당황도 했습니다. 평소에 모든 면에서 준비가 완벽해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예수님도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그날과 그 시는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니 그날이 오면 기쁘지만 당황스럽기도 할 겁니다. ‘더 열심히 할걸.’, ‘내일 한다고 미루지 말고 어제 해놓을걸.’ 이런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27:1)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목사님은 ‘내일은 우리 권한 밖이다. 그러므로 오늘을 마지막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오늘을 중점으로 살았습니다. 매일매일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샘플이 우리 목사님이십니다. 찬양을 하셔도 최선을 다해서 하시고, 일을 하셔도 그 일이 끝날 때까지는 식사조차 하지 않으시는 목사님을 본받으면 우리도 성공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님을 일생의 롤모델 삼아 뛰고 있습니다. 지금은 목사님의 신들메도 감당할 수 없지만, 제 보폭으로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주님 보시기에 꽤 괜찮은 주의 종이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님은 홀연히 오십니다. 늘 내일 주님이 오신다는 생각으로 신앙생활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자가 됩시다.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5:2~3).

이현승 목사

에덴으로 귀환

하나님의 계획

지난 3월 밤에 한 꿈을 꾸었는데 우리 회사에 큰 싱크홀이 뚫려 그곳을 통과해야하는 꿈이었습니다. 다행이 무사히 통과하였지만 기도하라는 경고임을 깨닫고 최문선 차장과 함께 3일 금식기도를 결심하였습니다. 저는 아직 모유수유 중이라 수유 중에는 금식을 하면 안 된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들었지만,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며 무사히 금식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자마자 엄청난 시련이 닥쳤습니다. 우리 회사는 단 하나의 악플 없이 평판이 꽤 좋았는데, 새로 입점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경쟁업체로부터 공격을 받기 시작했고, 매출은 형편없이 추락했습니다. 금식기도를 하면 시험이 오는데 그것을 지혜롭게 잘 이겨내야 한다는 어머니 말씀을 듣고 ‘아, 이것이 기도한 후 찾아온 시험인가보다.’ 생각하며 악플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버텼습니다. 하지만 그 경쟁업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속적인 공격을 가할 것을 암시하며 협박까지 했습니다. 추후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해당 온라인 플랫폼에 협조를 구했고, 가해자들이 나쁜 댓글을 달지 못하게끔 변호사를 선임하여 법적 대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주일예배에 총회장 목사님께서 금식기도는 모든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3일 금식기도를 하면 이루어지지 않는 게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시고 아버지께서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큰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온 가족에게 3일 금식기도를 선포하셨습니다. 지난 금식기도를 한지 딱 한 달 만이었습니다. 한 달 전에도 모유수유 때문에 고생을 해서 괜찮을까 염려하며 시작했는데 이틀은 잘 버티다가 마지막 날엔 젖이 말라 수유할 때마다 이삭이가 너무 힘들어하고 젖이 모자라 흐느껴 울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펑펑 울며 하나님께 “하나님, 보시고 계시죠? 이 어린 아기까지 이렇게 함께 애통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 사업에 꼭 큰 축복을 주세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마지막 날 승리한 기쁨을 만끽하였고,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실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아니 그런데 더 큰 시험이 닥쳤습니다. 5월 10일 저녁,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성동경찰서인데 거래처에서 저와 최문선 차장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는 것입니다. 해당 거래처는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것인데 계약금 반환을 하지 않았다며 말도 안 되는 거짓 주장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법을 어기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데 사기라니요? 너무 기가 찼습니다. 아무리 금식 후 찾아오는 시험이라지만 이건 너무 아니다 싶었습니다. “하나님, 이건 너무 심하잖아요. 목사님께서는 분명히 3일 금식기도면 이루어지지 않는 게 없다고 하셨고, 에스더는 3일 금식이 끝나자마자 왕 앞에 나아가게 되었잖아요. 그런데 왜 저는 금식이 끝나자마자 경찰서를 가야하나요? 아, 너무 억울하고 분해요.” 정말 화가 나고 야속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실 거라며 원망하지 말고 기다려보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첫 번째 사건 때 선임했던 변호사에게 이번 사건도 맡기게 되었고, 얼마 지나서 변호사가 입수한 상대측 고소장을 받아보았습니다. 고소장을 확인하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사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날은 5월 10일이라 5월 초에 고소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고소를 준비한 날짜는 제가 꿈을 꾸었던 시기였고, 중간에 고소장이 수차례 수정되어 5월 10일이 되어서야 전화를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대비해서 기도하라는 경고의 꿈을 꾸게 하신 것이고, 첫 번째 사건으로 인해 변호사를 만나게 된 것이며, 결국 두 번째 사건에 대해 철저히 대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셨던 것인데, 저는 어리석게도 이렇게 죽을 때까지 기도하는데 왜 시련만 오는지 모르겠다고 철없이 징징거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항상 예비하시고 계획하시는 좋은 분이십니다. 기도한 것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아 걱정이 많으신가요? 하나님께서 왜 내게만 잠잠하신 것인지 궁금하신가요? 비록 당장 눈앞에 길이 보이지 않고, 희망이 보이지 않고, 내가 부르짖고 기도했던 제목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고, 저 앞에 빛도 보이지 않아 막막하게 느껴지지만, 반드시 어두컴컴한 터널 끝에서 밝은 영광을 차지하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것이었구나 하고 놀라게 되겠죠? 그 날을 또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김온유 집사

ceo@edenique.co.kr

나도 건강할 수 있다

암은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부터!

양자의학에 따르면 우리의 몸이나 지구에 있는 다양한 물질과 물체, 공기중에 있는 것은 모두 고유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으며, 바이러스와 세균도 고유의 주파수가 있다. 신기한 것은 보이지 않는 감정과 생각에도 주파수가 있다고 한다. 질병은 자신의 정신과 심층 심리가 주파수에 영향을 미쳐서 생긴 것으로 파악하여, 병을 고치기 취해서 자신의 주파수를 바꾸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양자의학에서 말하는 암이 주는 내면의 목소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간암은 해독을 하는 장기로 과도한 술이나 음식첨가물, 약물 등을 지속적으로 복용하게 되면 분해과정에서 간에 부담을 준다. 간은 오랫동안 분노를 쌓아오거나 독설을 통해서 쏟아내고 싶은 감정과 관련이 깊다고 한다.

둘째로 위암은 무엇인가를 소화하지 못해서 병이 생긴다. 여기에서 소화란 단지 영양분의 소화뿐 아니라 가족관계, 대인관계, 사회적 의미 등을 소화하는 뜻도 있다. 이런 것들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달콤한 것을 추구하다면 위가 점차적으로 약해진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지나치게 공감받기 원하고 동정받기 원하고 의존적이기 원하는 경우 내 안의 중심이 약하고 자립하지 못하여 위장이 약해진다고 한다.

셋째로 폐암은 호흡이 제대로 안되기 때문에 병에 걸린다. 호흡이란 복식 호흡도 의미하며, 사회생활을 하면서 숨죽이고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의학에서 폐는 슬픔과 근심의 감정이며, 죄책감을 자주 쌓아가는 사람이 폐질환에 걸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또한 목소리를 높여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병이 걸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넷째로 대장암은 배설이 되지 않을 때 병이 생긴다. 배설이란 음식물의 배설도 있지만, 죄책감, 슬픔을 배출하는 것도 의미한다. 대장은 폐처럼 주기적인 호흡을 통해 배출하지 않지만 한 번에 대변으로 내보내야 하며, 깊은 원한이나 집착과 같은 생각들의 배출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로, 신장암 역시 배설이 안 되어서 병이 생긴다. 음식물이 아닌 물의 배설의 의미로 물은 돈으로 보기도 하며 불안이나 두려움으로 보기도 한다. 신장은 피를 담당하고 빈혈과 관련이 되기도 한다. 혈류량이 나빠져서 작은 일에 고민하고 두려움을 느끼게 되어 병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그 외에 혈액암은 심장과 관련이 있고, 심장은 사랑과 긴장의 장기이며 연예, 가족관계, 친자관계 등과 관련이 되어있다고 한다.

인생을 살면서 사회적, 금전적, 가족 간의 어려움들은 단순히 그 문제뿐 아니라 암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몇 가지 의미를 시사해준다. 내 안에서 부모에 대한 갈등, 주변인에 대한 원망, 집착, 인정받고 싶은 욕망, 체면, 금전욕, 명예욕, 권위욕, 공포감 등이 있을 수 있으나, 이러한 심리적인 원인을 깨달은 암 환자는 비약적인 회복을 보인다고 한다. 문제는 해결하라고 있는 것이라는 목사님 말씀처럼, 현재 내 문제의 원인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기도해보며 주님이 가르쳐주시는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면 좋겠다.

Dr. 설재현 집사

kseolmed@hanmail.net

빛이 되리라

배웠다면 실천해보자

섬기던 목사님께로부터 예전에 귀한 가르침을 받았던 적이 있다.

맘에 드는 한 처소를 발견했을 때, 그곳이 다른 사람에게 먼저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그것은 바로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는 것이었다. 이곳은 우리가 잡아둔 곳이니 ‘예수 이름으로 아무도 먼저 가져가지 않을지어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과거 지교회에서 맘에 드는 성전을 미리 잡아둘 때 있었던 일인데, 이렇게 예수 이름으로 묶어 뒀던 처소가 한참이 지나도 빠지지 않고 계속 묶여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나중에 풀어주셨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던 적이 있다.

최근에 비슷한 일이 나에게도 생겼다. 개인적으로 이사할 일이 있었는데 맘에 드는 한 장소가 생겼고 그곳을 꼭 잡아두고 싶었다. 그때 목사님이 하셨던 그 말씀이 기억나서 같은 방법으로 예수 이름으로 명령했다. 다행히 더 좋은 조건의 집을 발견해 그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계약을 하게 되어서 그 집 일은 잊고 있었는데, 한참 후에 아내가 인터넷으로 주변 집 검색을 해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 집이 아직도 안 빠졌는데?” 아뿔싸, 다른 곳 계약했으면 그 집은 풀어줬어야지, 까맣게 그 일을 잊고 있었다. 가슴 한 켠에 죄송한 마음을 담아 묶여있던 그 집을 풀어달라고 기도하면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예수 이름의 놀라운 힘을. 그리고 배운 대로 실천하면 그 일이 나에게도 일어난다는 것을 말이다. 비록 작은 간증이지만 늘 깨닫게 하시고 늘 더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배움의 끝은 실천이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약2:17~18).

장명훈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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