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모든 규제를 혁파하셨다(히9:1~12)
규제가 심하면 전진도, 발전도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재계는 늘 정부를 향해 과감한 규제 혁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업 활동을 억압하는 규제를 풀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줄 것을 요구하는 겁니다. 규제가 심하면 마음껏 기업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진대국, 경제 강국에 하루라도 빨리 도달하려면 기업들의 활발한 기업 활동을 위해 자유로운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합니다.
규제를 혁파(革罷)하는 것을 개혁(改革)이라 합니다. 제도나 체제를 새롭게 뜯어고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개혁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을 이루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이라고 하면 마틴 루터를 먼저 떠올리는데, 근본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유월절이 가까울 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돈을 바꿔주는 사람들로 인해 성전이 장사 터가 된 것을 보셨습니다. 이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고 상을 엎으시며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요2:13~16).
예수님은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유월절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지내야 하는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수확물이나 가축을 흠 없이 가져와야 했습니다. 흠이 있는 것은 제물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먼 거리를 오면서 가축이나 수확물을 흠 없이 가져온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보니 거래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가지고 와서 성전에서 제물을 사면 편리할뿐더러 흠 없는 것으로 제사를 드릴 수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상행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점차 지도급 유대인들이 자기네가 파는 물건이 아니면 거래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자기네 배를 채우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엎어버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고 하시며 근본적 개혁을 암시하셨습니다. 정말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근원적인 개혁을 단행하셨습니다.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9:9~10).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 의해 제사 제도가 있었습니다. 제사는 회막이나 성전에서 드려졌습니다.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어 있으며, 성소에는 등대와 상, 진설병이 놓여있고, 지성소에는 향로와 언약궤가 있습니다. 성소에서는 필요에 따라 제사장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했으나 지성소에는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만 들어가서 하나님이 명하신 예법에 따라 제사를 드렸습니다(히9:7~8).
그러나 이러한 장막의 예법으로는 성도를 온전케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다만 ‘개혁할 때까지’만 유효한 것이었습니다. 이 ‘개혁’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의 모든 불완전한 규례들과 의식들로는 우리의 더러운 죄를 온전히 사할 수 없어서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보내사 단번에 그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도록 개혁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1~12).
그 증표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지성소를 가리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더 이상 성소와 지성소의 구분이 사라진 것입니다. 동물의 피로 제사를 지내고, 대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복잡한 규제가 사라지고, 하나님을 직접 뵐 수 있는 시대가 예수님에 의해 열린 것입니다.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히7:27).
그래서 지금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는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시인만 하면 죄를 사함 받고,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2~13)는 말씀이 우리에게 이루어져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 회개하면 다 용서를 받습니다. 또한 필요한 것이 있으면 구하고, 아픈 데가 있으면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하면 됩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직접 뵈면 죽었지만, 지금은 모든 규제가 풀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의 품 안에 안길 수 있으니 너무 감사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복음(福音)입니다. 복되고 기쁜 소식이지요. 솔직히 저도 구약시대 제사장을 했더라면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 복잡한 절차를 어찌 소화해낼지 암담할 뿐입니다. 성도들 역시 동물의 피로 제사를 드렸다면 요새 같은 초스피드 시대에 번잡스러워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이 복잡한 절차를 혁파하고 개혁을 이뤄주셨으니 이것이야말로 복된 소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정말 복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감사와 더불어 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갖게 되어 이 세상과 내세에서 성공된 삶을 살 수 있다고 전하는 것이 우리가 꼭 해야 할 일, 곧 사명이며, 예수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지상 명령입니다. 제가 지구촌을 메주 밟듯 하며 세계 각 나라에 가서 하는 일이 바로 이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1:17). 제가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것은 사람들이 규제나 제약이 없이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이 복된 소식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 안 믿을까 봐 기사와 표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요4:48).
여러분, 전하지 않으면 누가 알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물건이 있다 해도 알리지 않으면 창고에서 썩고 말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몸을 드려 개혁을 이룬 사실, 그래서 예수 이름만 부르면 구원을 얻는 이 단순한 진리를 알리지 않으면 어찌 되겠습니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3~14).
당신의 피를 뿌려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나아갈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 그 은혜를 갚는 길은 이 복된 소식을 널리 전하는 것이 아닐까요? 할렐루야!
삶에도 신앙에도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규제가 심하면
발전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