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악이라 말하라
악을 악이라 말하지 못하는 것이 최악이고, 죄를 죄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최대의 죄다.
주의 종들 중에는 성도가 악을 행하고 있는 줄 알면서도, 죄를 짓고 있는 줄 알면서도 그것을 지적하고 충고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왜? 성도가 떠날까 봐.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공의가 아니던가. 성경은 그런 자를 짖지 못하는 개에 비유했다(사56:10).
나는 짖지 못하는 개가 되고 싶지 않다. 성도들이 악을 행하거나 죄를 짓는 것을 보면 나는 그가 듣든 안 듣든 내가 해줄 말은 꼭 한다. 예전에 어느 배우가 무당 역할을 하길래,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고 말하며 그 역할은 하지 말라고 말해줬다. 그런데 그 배우는 ‘연기인데 어쩌냐’며 교회를 떠났다. 그러나 어느 젊은 배우는 내 말을 경청하고는 영화를 시작할 때 다들 돼지머리에 돈을 꽂고 절을 하는데도 꼿꼿이 내 말대로 신앙을 지켰다. 그는 지금 누구나 동경하는 스타가 되었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5:37).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 말하라.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악이다.’라는 뜻이다. 악을 보고 묵인하는 것은 그것에 동조하는 것이 아닌가.
헤롯왕이 동생의 아내를 취했을 때 모든 자들은 그것이 악인 줄 알았지만 하나 같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한 사람, 요한만은 ‘그 일은 옳지 않다.’(막6:18)고 당당히 말했다. 이 때문에 요한은 목이 잘렸지만, 죄에 대해 침묵하여 수치스럽게 목숨을 유지하는 것보다 값진 삶이 아니겠는가. 만일 나단 선지자가 왕인 다윗에게 악을 악이라 말하지 못했더라면, 과연 다윗의 족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오셨을까.
짖을 때 짖을 줄 알아야 명견이거늘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꼭 해야 할 말을 못한다면 그 이름이 부끄러운 일 아닐까.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인자들아 너희가 올바르게 판결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시5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