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민들레
가냘픈 당신은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부드러움뿐이구려
당신의 수수한 색채는
하늘의 날개가 되고
남모르게 흘린 당신의 눈물은
온 세상을 사랑으로 수놓았소
행여, 누군가의 입김으로
당신의 자태가 산산이 부서진다 하여도
나는 아오
당신은 당신의 부서짐을 슬퍼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더 먼 세상에 당신의 몸을 던져
가득 채우려는 것을…
朋友
잘살아보세!
70년대에 새마을운동이 한창 일어날 때 ‘잘살아보세!’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정부와 민관단체, 동민들까지 열심히 일했던 새마을운동을 필자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렇게 땀 흘려 노력한 결과 지금의 우리나라가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잘사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잘사는 것은 바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땅과의 관계, 농작물과의 관계, 짐승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를 바로 가지는 것이다.
과거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였다. 그렇게 못살 때는 모든 관계가 잘못되어있었다. 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땅을 일구지 않았고, 농작물을 심어놓고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짐승들이 있어도 잘 키우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서로 돕고 사랑하지 못하고 싸우고 원수 맺고 살았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미신을 섬기고 보름달이나 고목나무 밑에서 고사를 지내면서 복을 달라고 빌었었다. 그 결과 탐관오리들이 득실거렸고, 삼삼오오 모여서 노름이나 하고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며 싸웠다. 그러니까 못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이 일어나면서 ‘잘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모든 국민들이 바른 관계를 맺으니까 잘살게 되었다.
잘산다는 것은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이요.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고 자신과의 관계도 그렇다. 즉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가 올바를 때 누구든 잘 살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자신과의 관계도 잘 맺어야 한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대접할 줄 알아야 한다. 목사님은 늘 자신에게 인색한 자가 가장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은 관계를 잘 맺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고 하셨다. 이 말씀은 어느 누구도 나의 적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을 원수가 아닌 친구로 만들어야 한다. ‘열 사람의 동지보다 한 사람의 원수를 두지 말라’는 목사님 말씀이 귀에 생생하다.
율법에 최고의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잘살아보자!
임택함 목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학창 시절, 우리 교단의 지교회가 없던 지역에서 타 교단의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래도 어머니의 열심 덕분에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 테이프를 통해 늘 믿음의 설교를 듣다 보니, 믿음도 자라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커져갔습니다.
그 교회 고등부에는 좋은 전통이 있었습니다. 고등부 회장은 반드시 고3 중에 선출했는데, 가장 귀한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의미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고등부 회장이 되었습니다. 집과 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저는 교회가 얼마나 그리웠던지 토요일만 되면 곧장 달려가 주일까지 하루 종일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봉사하면서 고등부 예배실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몸은 피곤해도 즐거웠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너무 좋았습니다.
방학이 되어 교회 고등부 수련회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고등부 회장은 당연히 형제자매들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방학 때도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명목상 자율이었지만, 출석하지 않을 경우에는 반드시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종종 크리스천을 무시하는 발언을 할 정도로 철저한 무신론자였습니다. 선생님께 허락을 구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어머니의 부탁에도 선생님은 “맘대로 하십시오!” 하고 화를 내셨습니다. 단 한 번도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한 적이 없었지만, 선생님이 노여워하시더라도 가야 했습니다. 수련회를 마치고 학교에 돌아오니, 선생님께서 ‘고3 귀한 시간에 교회나 쫓아다니는 정신 나간 놈이 있다’고 저를 비난하고 다녔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먼저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선생님 마음 불편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저의 인사에 예상 밖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네가 믿는 하나님이 무서워서 너를 못 때리겠다.” 비록 비꼬는 말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방패가 되어주셨다고 생각하니 참 감사했습니다.
어느새 고3 마지막 기말고사가 돌아왔습니다. 늘 하던 대로 최선을 다해 시험을 보았습니다. 지난 글에 적었듯이, 500명 중에 300등으로 입학한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반에서 3~4등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며칠 후, 교실에 성적표가 붙었는데, 평소와 다르게 석차는 표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나서기 좋아하는 친구들이 굳이 다른 반까지 돌아다니면서 석차를 계산하기 시작했고, 곧 제가 전교 1등이라는 사실을 온 학교에 소문냈습니다. 이전에 선생님께서 ‘귀한 시간에 교회나 쫓아다니는 정신 나간 고3’이라고 제대로 홍보해주신 덕분에 하나님께서 더욱 영광 받으셨습니다. 몇 달 후, 교회 고등부 졸업예배 때, 대표로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모든 사람 앞에서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 아까워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절대 빚지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1등 하게 해달라고 구할 만한 믿음에는 미치지 못하여 바란 적이 없고, 그저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린 것뿐인데, 하나님은 깜짝 선물로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을 주셨습니다.
시시때때로 꿈과 소원이 생겨납니다. 꿈과 소원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기 전에 나의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을까? 전능하신 하나님을 이용해서 나의 꿈과 소원을 이루려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말로 포장하는 것은 아닐까?’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하나님이 가진 것만을 탐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꿈과 소원이라면 하나님께 내어놓기 부끄러울 테니 말입니다. 언제라도 하나님께서 마음의 창문을 열어보았을 때, 오직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만 가득 차 있어 하나님께서 늘 감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요21:15).
정명관
v-777@naver.com
빼앗기지 마세요!
요즘 코로나 확진자가 700명대로 확산되면서 중소기업, 소상공인, 가정, 개인, 교회, 예배까지도 흔들리고 있는 게 정직한 현실이다. 그로 인해 지금 우리 마음은 전쟁 중이다. 악한 마귀가 지속적으로 우리 마음을 흔들어 예배 자리로 가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끝까지 마음을 잘 지켜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 혼란한 시대에 과연 누가 영적으로 살아남을까? 끝까지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자, 그로 인해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 된 자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는 자를 찾으신다. 그를 통해 선하신 뜻을 이루기 위함이리라.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사람 다윗의 생애를 보면 참으로 치열한 삶을 살았다.
다윗도 인간인지라 실수도 하고, 간음, 살인, 너무도 큰 실수와 죄악을 저질렀지만, 죽을 때에 다윗의 생애는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 죽었다”(대상29:28). 무슨 뜻인가? 끝이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이런 복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그가 마음을 지켰기 때문이다. 우리도 끝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그렇다. 지키지 않으면 다 빼앗긴다. 사람의 마음은 그냥 버려두면 엉망이므로 내가 다스려야 한다(막7:21~23)
코로나 사태 이후에 사람들이 건강 지키는데 관심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이 땅의 일시적인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영원한 것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마음과 합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 사명감으로 믿음과 마음을 잘 지켜서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승리하자.
김정옥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