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부활
잘 익어가는 과일
떠날 준비 화장할 때
참 아름다움 생각해 보았나?
신부 단장과 무엇이 다를까
떠날 때 맛과 향기 남기고 사라지나
서글퍼 우는 것 못 보았네
발그레 수줍은 듯 좋아라 웃드라
왜냐고 물으니
이 땅에 씨앗을 남김이 좋아서란다
나무로 다시 태어날 걸 알기에 서글퍼 울지 않는단다
우리네 인생도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익어가는 것이니
떠날 시간 가까움 알면
여보게!
단장하게나
과일만도 못하면 되겠나!
서글퍼 말게나
다시 태어날 생각하며
세상에 있을 때 병든 과일 버림받듯 버림받지 말게나
흠도 점도 없이 아름답고 향기롭게 익어가세나
예수 향기 남기며
부활의 기쁨을 생각하세, 우리…
朋友
모두 드러나리라
참 알다가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이다. 이제는 기억나지도 않는 학생시절의 학교폭력 가해전력이 드러나 한순간에 유명인사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몇 년 전에 나왔다가 별 반응 없이 묻힌 노래와 가수가 어느 순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어 음원차트와 방송순위를 석권하고 일약 스타가 되니 말이다. 전자도 후자도 자신들의 과거가 이렇게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만천하에 드러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건물 안이나 길거리나 어디를 가도 카메라가 우리를 찍고 있다.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비범한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각자의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어서 자신의 SNS에 업로드하고 공유한다. 이제는 누구와 통화를 하더라도 그 통화내용이 녹음될 수 있다는 사실이 더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유명세와 함께 자신을 알고 있는 불특정 다수 앞에 자신의 지난 과거를 엄중히 평가받을 준비까지 해야 한다. 이제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시대가 아니라 모두가 모든 것을 보고 듣는 시대가 됐다. 세상이 이렇게 변한 것이 범죄예방이나 사회정의구현을 위해서는 참 잘된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의 말과 행동에 더 이상 영원한 비밀은 있을 수 없음을 의미하기에 묘한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세상도 이러한데 온 천지 만물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오죽하실까. 성경이 이야기하는 하나님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시며 우리의 앉고 일어섬과 마음의 생각의 어떠함까지 다 아시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한 분이시다(대하16:9, 시139:1~4).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외식(外飾)을 주의하라고 하시면서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눅12:2~3)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앞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 무엇이랴. 이 땅에서는 어찌어찌 속이며 좋게 포장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우리는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행한 모든 일들을 낱낱이 직고하게 될 것이다(롬14:11~12).
아직 만회할 기회가 있다. 이제부터라도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매사 조심하며 살자.
신혁주 전도사
죄의 진공(眞空)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5:21).
믿어지는가. 주께서 인류를 위해 대신 속죄 제물이 되셨다는 사실이 어떻게 믿어지는가. 이것이 믿어지지 않으면 기독인이라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시고 주께서 속죄해주셨다는 두 가지 사실만 제대로 믿어진다면 믿음 생활이 흐트러질 수가 없다. 현실에서도 그렇다. 누가 나를 위해서 죽어줄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을 내 목숨만큼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를 만들었다면 죽기까지 순종하지 않을까. 이 두 가지 전제를 완전히 체득할 수 있다면 이 세상 믿음 생활이 흔들릴 수가 없다. 내가 내 의지로 태어나지 못하고 살지 못하고 죽지 못하는 사실이 내가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당위이다.
‘희생양’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대신 제물이 되었다는 말이다. 어떻게 제물이 죄를 씻어 주는가. 왜 제물은 흠이 없고 깨끗해야 하는가. 어느 날 문득 깨달아진 것이 있다. 그야말로 청정한 물이 있으면 주위의 모든 더러운 물의 오염이 빨려 들어간다. 진공상태가 되면 주위의 모든 공기가 강하게 유입된다. 죄가 없으신 분이 죄의 진공상태가 되어 있을 때 온 인류의 죄가 빨려 들어가 내 죄가 깨끗해진다. 온갖 번뇌에 찌든 사람과 같이 있을 때 머리 지끈거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스펀지는 더러운 것을 빨아들여 자기는 더러워지고 주위를 깨끗하게 한다. 이것이 십자가 대속의 의미이다.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으심, 대속의 완성! 본인이 더러워지고 찢기고 죽으심, 완전한 죄의 진공, 완전한 순결. 그래서 태어나심도 동정녀를 통해 이루셨다. 더러움과 수모와 멸시와 고통을 짊어지고 이루고 부활하셨다.
혼의 번다한 움직임으로부터 벗어나고 깨어져야 한다. 대속해주신 주님처럼 나도 고난을 통하여 본래의 내가 새롭게 탄생된다. 그것이 나의 십자가이다. 완전한 죄의 진공상태. 블랙홀에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가는 태양의 수천 배 되는 별을 보면 우리 죄쯤이야 주께서 온전히 대속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 깨끗함, 죄 없음의 대속자 주님께서 청하신다. 택함을 받아야지.
이광주 목사
거리에서 만난 예수님
출근하려고 평소처럼 지하철을 탔습니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핸드폰을 보고 있었고, 저는 서서 책을 읽고 있었지요. 그때 옆 칸에서 행색이 누추한 남자 한 분이 이동해 왔습니다. 그는 곧바로 낡고 닳은 종이를 앉아있는 승객들 무릎에 하나씩 올려놓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건들거나 읽으려 하지 않았지요. 열차가 덜컹거려 누군가의 무릎에 있던 종이가 바닥에 떨어졌지만 줍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일어서 있는 제게는 주지 않았지만 어떤 글이 적혀 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일할 수 없는 어려운 사정과 도움을 청하는 내용일 거라 생각하며 지금 내 지갑에 현금이 있나? 잠시 떠올리다가 신용카드만 있다는 걸 깨닫고는 ‘뭐 어쩔 수 없지.’하고서 읽던 책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그날 제게는 못난 마음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신문에서 어떤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지하철에서 동냥하던 시각장애노인이 알고 보니 시각장애인도 아니었고 몇 억짜리 아파트까지 소유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동냥으로 벌었다는 기사를 읽고서 꽤 분개했었지요. 열차 안에서 바구니를 들고 다니시는 어르신들께 건넸던 수많은 돈이 떠오르면서 아깝다는 생각까지 들었더랍니다. 그 기사를 읽은 뒤로는 ‘혹시 저 사람도 그런 거 아닐까’ 하는 의심이 종종 들곤 했습니다. 그날도 못난 의심이 들려는 찰나, 마태복음 25장 말씀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때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시고 의인을 칭찬하십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느니라.”
그러자 의인들이 주님께 묻습니다.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곧이어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 말씀이 떠오른 순간 한없이 부끄러워져 회개했습니다. 예수님은 지하철에도 계시고 길거리에도 계시고 우리 주변에 계시며 매일 우리와 마주치고 계십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가 커서 주님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겠다고 고백하면서 정작 길에서 만난 예수님께는 작은 베풂도 아깝다고 생각함에 크게 회개했습니다.
저는 매달 네 가지의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국내 청소년에게 생리대를 후원하고, 아프리카 어린이와 1:1 결연을 하고 있습니다. 매달 친구들과 모은 소정의 돈으로 연말에 불우이웃에게 필요한 물품을 구매해 전달 드립니다. 그리고 평소 적게나마 현금을 지니고 다닙니다. 길에서 만난 예수님께 작은 은혜를 나누고 싶어서, 예수님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아서요. 다시는 주님께 인색한 자녀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복을 나누며 살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되길 원합니다.
신은혜
Good News
힘든 일이 생기거나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하면 점쟁이나 무당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마귀와 악의 영들은 간교한 궤계로 거짓말을 일삼으며 미혹의 영을 통하여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멸망의 길로 이끌고 갑니다. 길흉화복을 점쳐주고 굿판을 벌이거나 비싼 부적을 사서 간직하고 다니라고 합니다.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방편이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생사화복의 주관자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악한 마귀를 추종하는 무리들은 찾아온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면서 굿판을 벌이거나 비싼 부적을 강매합니다. 복을 빌어준다고 복채를 요구하지만 가짜 소망을 심어주는 것이지 실제적인 역사는 없습니다. 악한 영들에게 미혹된 자들의 말로는 결국에는 영벌의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다니지만, 지푸라기를 잡은 사람은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요, 우리 인생의 해결사가 되어주실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짐과 인생의 문제를 주님 앞에 내려놓으면 모든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겠다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모든 문제의 정답입니다.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
2월 26일부터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3월 15일 기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누적 접종자 수는 56만 명 정도이다. 백신 접종자가 늘어나면서 백신의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 백신은 최신기술을 이용해 우리 몸에서 일시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의 일부 단백질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지만 마치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온 듯 우리 몸은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을 갖게 된다. 다만 화이자 백신이 바이러스의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RNA라는 유전물질을 이용한다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DNA라는 유전물질을 아데노바이러스를 이용해 전달하는 차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서 DNA를 실어 나르는 아데노바이러스는 증식능력이 없으며 우리 몸의 DNA에 끼어 들어가지도 않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다. 근본적으로는 두 백신 모두 우리 몸에서 코로나바이러스의 단백질을 만들어내도록 하지만 투여하는 유전물질의 종류가 다른 것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후 백신 효능이 60~70%라고 알려져 있는데 백신 효능이란 백신을 투여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 백신이 얼마나 환자를 줄일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백신 효능 70%라는 것은 백신을 맞지 않았을 때 환자가 10명 생긴다면 백신을 맞았을 때 3명으로 줄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백신 효능이 90%라면 백신을 통해 환자 수를 10명에서 1명으로 줄일 수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임상시험에 65세 이상 고령자가 많이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고령에서 젊은 사람과 유사한 수준의 항체가 형성되는 것을 확인해 코로나 환자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가 만75세 이상 고령층은 4월에 화이자 백신을, 65~74세는 5~6월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하기로 결정했다. 요양병원, 시설의 만 65세 이상 입원, 입소자 및 종사자도 3월 중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부작용은 다른 백신과 유사한데 주사 맞은 부위에 3일 정도 통증이 있을 수 있고, 발열, 오한, 피로감, 두통, 근육통, 구역, 구토 등이 하루, 이틀 정도 있을 수 있다. 백신을 맞기 전후에는 과음, 무리한 운동, 목욕을 삼가고 예방적으로 타이레놀을 복용하여 발열과 통증을 완화할 수 있다.
백신 2차 접종 후에도 백신 효능이 100%는 아니므로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증상이 경하거나 무증상일 수 있고 중증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낮아지며 바이러스 배출도 적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위험도 줄어든다.
Dr. 조희경 집사
pearl9230@naver.com
외모
날씬하고 예뻤던 딸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살이 찌기 시작했다. 내심 예전의 몸매를 되찾기 바랐는데, 실제로 성인이 되면서 10kg 가량이 빠져 주변에서는 다이어트 비결을 묻는 등 더욱 예뻐졌다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그러나 공황장애 진단으로 의사의 ‘무조건 휴식’ 권고에 일찍 퇴근했던 딸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급격히 비만이 되어버렸다. 심각함을 느꼈을 때는 이미 멀리 와버렸고 날씬한 몸매는 로망이 되어버린 듯 했다.
허약체질의 장애인 이모를 부축해 미용실을 다녔던 딸은 ‘이모의 양식까지 축내서 이모는 마르고 자신은 살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미용실 가기가 싫다고 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사실 그것은 여태껏 가졌던 내 생각의 일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딸은 음식섭취를 제재하는 나에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손발을 묶어서 음식을 못 먹게 해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주위에서는 ‘임신했느냐, 뚱뚱하다…’, 차마 내뱉기 힘든 무례한 말들을 쏟아냈고, 자신들의 기준으로 딸을 재단하고 판단했으며, 때론 얄팍한 동정심으로 자신들의 진심을 전하곤 했다. 강한 자극을 받은 딸은 서슬 퍼런 모습으로 식이요법을 하였으나 금세 무너져 절망감에 빠지곤 한다.
어미인 나 역시 확증편향에 빠져 딸의 가슴을 아프게 했음을 고백한다. 그것이 최선이 아님을 깨닫고 회개했고, 나는 딸을 존중해주며 에둘러 말하지 않고 살리는 말, 응원의 말로 동기부여를 해주며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키려 노력한다.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뭐든 한다면 하잖아.”, “좋아, 어제보다 훨씬 좋아 보여. 그대로 조금만 더 노력하는 거야.”
나는 믿는다. 긍정과 희망이 깃든 말의 능력을! 사랑은 인내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추성숙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