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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1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성령을 제한하지 말라(요1:12)

1091호 · 2021-04-04

왜! 이 시대, 이 시간에는 주의 종들이 능력이 없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집사들도 능력이 있어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고, 소경을 눈 뜨게 하고, 귀머거리가 듣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어나게 했는데, 왜 이 시대에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능력을 행하는 자들을 되레 핍박할까요? 답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성령을 받지 못했거나 성령충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만 다니면 되지, 무슨 성령이야?”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평신도가 이렇게 말한다면 ‘뭐 모르니까’ 할 수 있지만, 목사나 전도사들 중에도 성령에 대해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갔을 때,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으니 그들의 눈이 동그래지며 “성령이 뭡니까?”(행19:2)하고 되레 반문했지 않습니까? 지금도 이런 사례가 있다는 겁니다. 왜 이런 일이 있느냐? 자신이 성령을 안 받았으니 못 가르치는 겁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눅6:39).

여러분, 예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습니다(롬10:13). 그러나 그것으로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 이 세상은 마귀가 지배하고 있는 음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에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고 했습니다. 그런 곳에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정도의 신앙으로는 악한 것들에게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기가 있어야 합니다. 연장도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의 은사입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사랑하던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를 보세요. 그는 분명히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었지만(마16:16), 로마 병정들에게 잡히신 예수님 앞에서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돌아섰지 않습니까. 악한 것들이 공격하면 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니 어찌 되었습니까? 180도 다른 사람이 되었지요. 겁쟁이 시몬이 아니라 믿음의 반석인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도 성령을 받으신 후에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눅4:18).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문도도 성령을 받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성령을 받은 후에 그들은 예수님처럼 나가서 전하고, 귀신을 쫓고 병을 고쳤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이렇게 권능이 나타납니다(행1:8). 권능이란 하나님 자녀의 권세요, 그에 따르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성령을 몸소 체험한 사도 바울은 “성령을 소멸치 말라.”(살전5:19)고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능력은 그의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으니 그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낫는 겁니다.

성령은 예수 이름으로 온 하나님의 영이며, 지금은 성령이 통치하는 시대입니다. 곧 성령을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며, 성령을 제한하는 것은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기 소유를 판 돈을 얼마 숨기고 베드로에게 다 인양 가져왔을 때 베드로가 ‘네가 성령을 속였다’고 했고(행5:3), 이는 곧

‘하나님을 속인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행5:4)?

지금 이 시대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성령을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이건 되고, 이건 안 되고’ 하기 때문에 성령, 곧 하나님이 제한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성과 인격과 감정이 있으신 분입니다. 제한하면 제한을 받으시고, 무시하면 성령이 떠나십니다.

성령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마태복음 14장에 예수님은 말씀을 듣던 자들이 배고플 것을 염려하셔서 그의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명하십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인 빌립이 예수님의 명령이 아주 부적절한 것임을 설명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아무리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도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는 없습니다. 돈이 있어도 어디 가서 뭘 사다 먹여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고도

‘이것만은 안 된다’고 스스로 단정 짓고, 능력을 제한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어린아이가 가져온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수많은 군중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나 되는 부스러기를 남기는 역사를 보여주심으로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자가 있습니다. 마르다입니다. 오라비인 나사로가 살아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마르다는 ‘죽은 지 사흘이나 되어서 예수님이라도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11:40)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으면 기적을 맛볼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는 돌을 옮겨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을 제한합니까? 그것은 자기의 쥐꼬리만 한 지식, 세상적인 경험을 가지고 하나님을 잣대질하고, 말씀을 분해하기 때문입니다. ‘내 경험으로 봐서는 안 돼’, ‘내 상식으로는 안 되는 말이지’, ‘논리적으로 이게 말이 되냐?’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우스운 일입니까? 피조물이 창조주를 저울질하다니요? 어떻게 사도 바울이 그렇게 큰 능력을 행했습니까?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배운 지식을 다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 발견되었기 때문 아닙니까(빌3:8~9).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한 자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행2:38). 그 성령은 예수님이 받으신 성령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 동일한 성령을 받아 저는 전 세계를 다니며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성령을 받았다면 이런 권능이 나타나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과 선지자 등 특정인만 기름 부음을 받고 사역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만인 제사장 시대입니다(벧전2:9). 왜냐하면 지금은 죄를 회개하고 성령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기름부음, 곧 성령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모든 자는 예수님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성령을 받은 우리에게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고도 하셨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주님보다 큰일을 하느냐고요? 예수님이 아버지께 가시고 성령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내 힘으로, 내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의 능력으로 일하기 때문에 예수님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어떻게 큰일을 해? 교만하네.”라고 말하시는 분들,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사모하세요. 성령을 소멸하지 마세요. 늘 성령 충만함을 입으세요. 그러면 만사가 형통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우리를 노리겠고, 무엇이 우리를 해하겠습니까? 무엇이 우리의 앞길을 막겠고 방해하겠습니까? 성령은 우리의 신분을 알게 하고, 장래 일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깊은 속까지 통달하게 하는데요.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12:49)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불’은 곧 성령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령을 받았으면 다 받은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만사 오케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아무리 장대비가 쏟아져도 그릇이 엎어있으면 빗물을 한 방울도 담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무한하다고 해도 당신이 성령을 제한하면 절대 성령의 능력을 맛볼 수 없습니다. 성령을 제한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성령으로 지금부터 영원까지 당신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무기요 연장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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