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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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6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세 나무 이야기

1086호 · 2021-03-02
책을 펴다

세 나무 이야기

‘세 나무 이야기’라는 책 내용이다.

올리브나무와 떡갈나무, 소나무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올리브나무는 보석상자가 되어 그 안에 보물을 담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나무꾼은 그 올리브나무로 구유를 만들었다.

떡갈나무는 왕을 싣는 배의 일부가 되고 싶었으나 나무꾼은 떡갈나무로 조그만 낚싯배를 만들었다. 소나무의 꿈은 높은 곳에 서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번개가 치더니 소나무를 쓰러뜨렸고, 소나무는 쓰레기 더미에 던져졌다. 세 나무는 모두 자신의 가치를 상실했다고 생각했다.

한편, 마리아와 요셉이 아이를 낳아 구유에 뉘였다. 이 구유가 그 올리브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올리브나무는 가장 귀한 보물인 하나님의 아들을 담게 된 것이다. 장성한 예수님이 호수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작은 낚싯배를 선택하셨다. 위대한 왕을 태우고 바다를 건너고 싶었던 그 떡갈나무는 만왕의 왕을 태우게 된 것이다. 몇 년이 흘러 로마 병사들이 쓰레기더미에서 소나무를 찾아 십자가를 만들었다. 그 소나무에 예수님이 달리게 되었다. 이 소나무는 하나님의 사랑의 예표로 대신하고 있다.

하나님의 생각과 방법은 늘 우리와 다르나 언제나 선을 이루신다. 그래서 낙담하지 않아야 한다. 세 나무처럼 우리 인생을 주관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결국 아름답게 결말이 나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이초석 목사 저서 ‘사랑이 무르익어야

결혼에 골인한다’ 중에서

신앙논객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꼰대’, 이전에는 기성세대나 나이 드신 분들을 뜻하는 은어 내지는 속어였다면, 요새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연령대와 상관없이 이르는 말로 쓰인다. 꼰대의 6하 원칙도 있다. ‘내가 누군지 알아(WHO)’, ‘뭘 안다고(WHAT)’, ‘어딜 감히(WHERE)’, ‘왕년에 내가(WHEN)’, ‘어떻게 나한테(HOW)’, ‘내가 그걸 왜(WHY)’, 이런 유의 말을 자주 쓸수록 자신도 모르게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믿음 안에서도 소위 ‘꼰대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앙의 연수가 높다고, 지식과 경험이 많다고, 직분이 있다고 상대방을 업신여기거나 함부로 대하여 상처를 주고, 심한 경우에는 실족시키는 일도 종종 보게 된다. 욕하면서 배운다고, 속으로는 적폐(積弊)라고 생각해왔으면서도 막상 내가 그 자리에 가면 같은 짓(?)을 따라하고 반복하기도 한다.

꼰대가 되지 않고 좋은 선배, 멘토, 리더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유익이 없고,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16:14)고 권면한다. 사랑은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고 성내지 않는다. 즉 ‘꼰대짓’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사랑 없이 하면 꼰대요, 사랑을 담아서 하면 그 말로 상대방의 영혼을 살리는 사람이 된다. 사랑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꼰대와 어른을 판가름한다.

사랑의 유무를 어떻게 아냐고? 어렸을 적에는 부모님의 잔소리와 선생님들의 야단이 마냥 듣기 싫지만, 철이 들면 그것이 그분들의 사랑의 표현이었음을 우리는 안다. 목사님께서 단에서 무서우리만치 강하게 말씀하시는 것도, 성령이 탄식하시기까지 듣는 우리의 영혼이 잘 되고 강건하기를 바라시는 목사님의 사랑이 담겨있기 때문에 은혜가 되고 능력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나의 말과 행동에는 상대방을 향한 사랑이 담겨 있는지, 나도 모르게 꼰대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자.

신혁주 전도사

부르심의 소망

미움받을 용기

고등학교 3학년 때, 뜻이 맞는 친구들이 모여 ‘낙타 무릎’이라는 기독동아리를 처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낙타 무릎, 하나님 앞에 매일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의 무릎에는 낙타 무릎처럼 굳은살이 박힙니다. 이런 연유에서 낙타 무릎이라는 말은 묵묵히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수업 시작하기 전에 빈 과학실에 모여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미션스쿨이 아닌 일반 학교였음에도 한 선생님께서 흔쾌히 동아리를 맡아주셨고, 그 선생님을 통해 목사님도 모시게 되었습니다.

수능이 한 달 정도 남았을 때, 수험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고사를 지낼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각 반에 흩어져 있던 ‘낙타 무릎’들이 급하게 모였습니다. 당장 기도해야 한다고 마음을 모았고, 빈 교실을 찾을 수 없어 강당 앞에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강당 옆에 매점이 있어서 다른 학생들이 많이 붐비는 시간이었습니다. 한창 다른 사람의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할 소녀들이었지만, 그때만큼은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우상 숭배를 지켜볼 수만은 없기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얼마 동안을 기도한 뒤 다음 수업을 위해 교실로 돌아가던 순간, 누군가의 말이 제 귀에 들렸습니다. “저렇게까지 유별나게 해야 해?” 믿지 않는 친구겠거니 했는데 그 아이도 교회를 다닌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너무 의아했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에게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오후에 체육수업을 마치고 수돗가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동아리 지도 목사님이 한 손에 성경책을 들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목사님께 연락했던 모양입니다. 그때는 그 목사님의 모습이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든든하게 느껴졌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든든함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일반 학교에 성경책을 들고 가서, 고사 지내는 것은 하나님의 법도에 어긋나니 절대 안 된다고 담대하게 말씀하시다니…. 정말 멋진 목사님이셨습니다.

그 후 교내 방송이 울려 퍼졌습니다. “개 무릎인지 낙타 무릎인지 당장 교무실로 와!” 우리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교무실에 모였습니다. 어쩌면 함께였기에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당당했습니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고사 지낸다는 건 헛소문이었다, 왜 이렇게 난리를 치냐!”고 변명하며 화를 내셨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칭찬받은 것처럼 기뻤습니다. 우리가 막아냈다!

하나님의 법대로 산다는 것은 유별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유별나지 않고는 세상과 구별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 보면, 경멸로 가득 찬 시선을 마주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또 그 시선을 혼자서 감당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혼자가 되었을 때 엄습해오는 두려움에 내가 지금 잘못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그 두려움에서 평안을 구해도 계속해서 불안하기만 할 때, 감정에 속지 않고 믿음이라는 의지를 마음에 불어넣으며 외롭게 서 있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님 말씀에 옳은 것이라면 마땅히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그때에 나를 주목하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말3:17~18).

박영신

rubyday0@naver.com

나도 건강할 수 있다

깨닫는 자, 영혼육이 살아난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께서 죄악의 종류별로 어떻게 죄를 씻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5장 14절에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를 치유하신 후에 말끔히 나았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도 보게 됩니다. 태생적으로 죄인인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새로워졌지만 날마다 연약한 생각과 습관과 마음을 회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존재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회개를 하는 것은 영적, 혼적, 육적인 죄악을 씻음 받고자 하는 것이며, 이 과정을 한의학적으로 건강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동양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명의 편작(扁鵲)은 ‘두한족열 복불만(頭寒足熱服不滿)’이라는 말로써, 머리는 시원하고 발은 따뜻하고 배는 비워두는 상태를 가장 건강한 상태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동서양 건강 진리의 요체인 수승화강

(水昇火降)을 의미하며 수(水)기운은 위로 올라가고 화(火)기운은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머리가 시원한 것은 머리에 쓸데없는 잡념과 욕심과 흥분과 중독과 분노와 억울함과 같은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로 족열이라는 것은 발이 따뜻하여 혈액순환이 잘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머리는 뜨겁고 발은 차가운 상태, 즉 건강의 정반대가 되는 상태로 건강성을 상실하고 살아가기가 쉽습니다. 발이 따뜻하기 위해서는 발로 많이 걸어서 하체

(골반이하)가 튼튼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로 복불만이라는 것은 배가 더부룩하지 않게 먹는 상태, 즉 평소 조금 부족한 듯이 가볍게 먹고 소화가 잘 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슴부위도 시원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회개는 나의 행동을 돌아보는 시작이며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었다면 주님 앞에 용서를 구하고, 내가 잘못한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주님께 아뢰고 자신을 낮추는 마음을 갖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회개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 앞에서 은혜를 얻고 믿음과 영적인 축복을 받지만, 육체적으로도 머리가 맑아지게 되어 머리의 열이 발(하체)로 내려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욕심을 내려놓게 되어 가슴과 배가 시원해집니다. 누군가와의 갈등에 대해서 내가 먼저 회개하고 용서를 하기 때문에 내 안에 복잡한 갈등이 줄어들어 암 발병률을 낮추며 내 몸이 건강성을 회복하게 됩니다.

회개는 영적인 축복과 혼적인 사고의 변화, 그리고 육적인 건강성을 회복하는데 주님이 주신 소중한 기도이며 매일매일 새로운 회개 거리를 찾는 것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키워주며 항상 유연한 사고와 겸손한 삶을 살기에 치매를 예방할 수 있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그 날까지 소중한 기도의 습관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은 회개에 대한 한의학과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도 회개의 기쁨 가운데 건강성이 날로 회복되시기를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Dr. 설재현 집사

참된 깨달음

그리스도인의 삶

그리스도인의 삶은 일등이 목표가 아니다. “온리원(Only One)”, 일류가 목표다. 세상 사람들과 차별화된 삶. 그러려면 삶의 목적이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닌 자신을 이기는 것이어야 한다.

나를 이기는 삶에도 기준이 있다. 인간의 선(善)이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다. 그렇다면 일류의 삶은 어떻게 이뤄낼 수 있을까? 내면을 가꿈으로 가능해진다. 내면을 견고하게 가꾸어 나가면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내면을 가꾸는 삶은 작은 것에서 행복을 추구한다. ‘덴마크 사람’ 하면 떠오르는 삶이 ‘휘게 라이프(Hygge Life)’,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뜻한다. 우리나라 말로 ‘소확행’, 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는 삶이다. 편안하게 함께, 따뜻하게 작은 것에서 행복을 누린다.

내면의 삶은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어야 한다. 신앙생활은 일등의 삶을 추구하지 않는다.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다. 일상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며 작은 것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바울이 지식을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던 것은 실리를 추구하지 않고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부자가 되어 돌아왔다. 부(富)가 목적이었던 사람이었다면 그는 이때부터 천박한 갑질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면을 가꾸는 삶을 추구했던 그는 소박한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자로 살아간다. 이는 하나님을 위한 삶이며, 곧 십자가의 삶이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며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 나의 인격을 성화시켜가는 것, 이웃을 사랑하며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발하는 것, 무엇보다 가치 있는 삶 아닐까.

김정옥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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