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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3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손에 쥐어줘도 모르는 자여, 깨달으라(눅11:1~13)

1083호 · 2021-02-07

요즘 나오는 최신형 핸드폰은 그 기능이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2G폰처럼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화나 걸고 문자나 하는 정도로 쓰는 사람 말입니다. 왜 그러냐? 기능을 다 몰라서 그런 겁니다. 그러나 기능을 다 아는 사람은 그것으로 정보도 입수하고, 사진과 영상 편집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스케줄 관리도 하고, 세계 어느 언어든 번역도 하고…. 핸드폰 하나로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하나님이 우리 손에 천상천하에 가장 좋은 것을 쥐어주셨습니다. 바로 ‘성령’입니다. 그런데 다들 ‘이게 뭐야? 이게 뭐람?’ 이러고 있습니다. 성령의 가치와 능력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긴 어느 폐가에 가보니 조선시대 김홍도의 그림이 벽지 대신 더덕더덕 벽에 붙여놓았더랍니다.

여러분, 성령은 예수님의 영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18~26). ‘나 대신 성령을 보내줄 테니 걱정 마라.’ 하시고, 심지어 그것이 우리에게 더 유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6:7). 왜냐? 예수님이 보내신 그 보혜사 성령은 우리를 살리는 영이요, 우리의 조력자요, 우리의 상담자요, 위로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은 삼위일체이시므로 성령은 곧 하나님의 영이요, 성령의 능력은 곧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능치 못할 일이 없고(막9:23),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는 말씀이 우리에게 이뤄지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미 대부분 성령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성령의 능력을 사장시킨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처럼 성령의 능력을 주장하는 곳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핸드폰을 손에 들고도 사용하지 못해 무용지물을 만드는 답답한 자처럼, 성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호텔에 가면 마스터키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방이든 다 열 수 있는 키입니다. 그런데 마스터키를 들고도 문을 못 열어서 이 사람 저람 찾아다니며 도와달라는 자가 있다면 어리석다 하겠지요. 성령을 받고도 축복의 방, 건강의 방, 행복의 방, 평안의 방을 열지 못하고 권력자나 지력자를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한다면 더욱 어리석다 하지 않겠습니까?

성령의 능력은 고린도전서 12장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12:6~11).

제가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고, 암을 고치고, 소경을 눈 뜨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는 것 아닙니까? 또 야외집회 때 비가 오면 비를 멈추고, 올림픽공원 사이클 경기장에서 태양이 작열할 때 ‘구름아, 태양을 가려라.’ 명령한 것 아닙니까? 부족한 제가 어떻게 각 분야에 세상 지식이 많은 자들을 가르치고 인도하겠습니까? 성령의 은사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받은 성령이나 여러분이 받은 성령이나 똑같은데, 여러분에게는 왜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제가 특별해서일까요? 아닙니다. 계속 쓰는 열쇠는 빛이 나고 구멍에 넣고 돌리면 바로 문이 열리지만, 안 쓰던 열쇠는 어쩌다 쓰려고 하면 녹이 슬어서 열쇠 구멍에도 잘 들어가지도 않는 것처럼, 성령의 능력도 안 쓰면 녹슬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각 사람에게 각각의 은사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연장이나 무기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꼭 필요한 연장과 무기를 주신 것입니다. 요즘은 ‘장비빨’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예전에는

‘일 잘하는 놈은 연장 탓 안 한다.’ 했는데 요즘은 연장이 좋을수록 일을 더 잘한다고 합니다. 하긴 호미로 온종일 일하는 것보다 포클레인으로 한 번 파는 게 낫습니다. 전쟁도 예전에는 육탄전이었는데, 지금은 첨단무기전입니다. 누가 더 성능 좋은 무기를 가졌느냐에 전쟁의 승패가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의 싸움입니다(엡6:12). 이 싸움에는 종전이 없습니다. 죽는 날까지 싸워야 하는데,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무기가 좋아야 합니다. 최고의 무기가 바로 성령입니다. 이 성령의 능력으로만이 마귀와 그 일당을 무찌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병들게 하고, 가난하게 하고, 망하게 하고, 죄짓게 하는 놈이 바로 마귀와 그의 졸개들입니다. 그것들을 쫓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벧전5:8).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도 세례 요한을 통해 물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이 임하자 3년간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분이 받으신 성령을 우리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능력이 나타나야지요. 사도행전 1장에는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는다고 했습니다(행1:8). ‘권능’이란 권세와 능력을 말하는데, 권세란 바로 예수를 믿음으로 얻게 되는 하나님 자녀로서의 권세요(요1:12), 능력이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행하신 것 같은 능력을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 성령을 그냥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갔을 때,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으니 그들의 눈이 동그래지며 “성령이 뭡니까?”(행19:2)하고 되레 반문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들에게 성령세례를 주니 그들이 방언을 말하고 예언도 말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고 말씀하셨고, 세례 요한은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3:11)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성령은 회개하고 성령을 사모하는 자에게 찾아오십니다(행2:38). 그리고 성령 충만함을 입으려면 기도와 말씀에 전무해야 합니다. 만 원과 천 원의 가치가 다르고, 4시간 기도와 1시간 기도의 능력이 분명히 다르듯, 펌프질을 오래 해야 물이 콸콸 나오듯, 기도를 많이 하고 말씀을 상고해야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성령이 임했다면 지금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모든 심령에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이 귀한 성령을 받고도 귀신의 밥이 되어 끌려 다닌다면 성령을 보내주신 예수님이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주신 성령을 환영하고, 성령의 능력을 사용하여 가난과 저주와 병과 죄악에서 해방됩시다. 그것이 성령을 보내주신 예수님의 뜻입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5:19).

할렐루야!

내가 불이 붙어야

남도 불붙일 수 있다

성령의 은사는

삶의 연장이요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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