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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소문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롬10:9~17)

1078호 · 2021-01-03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이는 소문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우는 말씀입니다. 그럼요, 아무리 좋은 물건이 있어도 소문내지 않으면 아무도 모릅니다. 소문을 내야지요.

우리 교회의 부흥은 소문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병을 고친다, 귀신을 쫓는다는 소문이 전국에 퍼져 사람들이 대거 몰리면서 우리 교회는 폭발적인 부흥을 이뤘습니다.

성공과 광고는 나란히 가는 파트너입니다. 실과 바늘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기업들이 광고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겁니다. 예전에는 주로 입소문이었다면, 지금은 SNS 등을 통한 소셜미디어와 매스컴을 통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갑니다. 좋은 소문도, 나쁜 소문도, 때론 거짓 소문도 순간 퍼져나가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더욱 내 관리는 물론이요, 품질관리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거목이 되는 것은 수십 년, 수백 년이 걸리지만, 그것을 자르는 것은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자신을 소문내셨습니다. 성경 처음 장 첫 구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고 말씀하시고, 그 후에 만물과 사람을 만드셨다고 말씀하심으로 온 세상 천지만물을 창조한 분이 하나님이라고 소문내셨습니다.

구약에는 우리를 위하여 한 아기가 나시고, 그 아이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고 죽으시며,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신다는 소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절히 메시아를 기다린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사야서 9장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다윗의 혈통을 통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다는 것을 알리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의 몸에서 나신다는 말씀이 이사야서 7장 14절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 분이 우리를 위해 대속 제물이 되신다는 말씀이 이사야서 5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의 목숨을 던져가면서까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냈던 자가 아닙니까.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요1:26~27).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가 성경에 말씀한 바대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소문을 내셨고, 당신이 그 나라의 주인이시며, 자신을 통해야만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직접 알리셨습니다.

소문이란 광고를 말하는데, 광고란 자고로 청각적인 것보다는 시각적인 것이 잘 먹힙니다. 그래서 라디오 광고보다 TV 광고가 더욱 효과가 큰 것입니다. 그것을 아시기에 예수님도 시각적인 효과가 뛰어난 광고 전략을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귀신을 쫓아가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4:48). 이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져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병들고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저 역시 모든 집회 전에 성령의 역사를 영상으로 보여주고, 또 귀신을 쫓고, 예수 이름으로 병을 낫게 합니다. 그러면 그들의 마음이 열려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시대인 지금은 우리가 예수님을 광고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당신의 뒤를 이어 계속 하나님 나라를 광고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오직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세상에 알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광고를 잘 못합니다. 왜요? 보여줘야 믿는데 보여주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행실과 삶이 믿지 않는 자들의 본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능력이 없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 기독교인이 점차 줄고 있는 것이고, 예수를 믿으라고 전하면 ‘너나 믿어라.’는 소릴 듣는 겁니다.

우리가 각성해야 합니다. 전도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전도자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고, 전도자로서의 신앙을 갖질 못했기에 예수의 소문이 안 먹히고, 우리의 광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불이 붙어야 남에게도 불을 붙일 수 있는 법, 내가 예수를 체험하고,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어야 소문을 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우물로 물을 길러 나온 사마리아 여인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녀는 예수를 만나고 마음에 불이 붙었습니다. 변화가 되었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요4:28~30).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예수를 광고하고 소문낸 것입니다.

이대론 안 됩니다. 우리 다시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영적 대각성이 우리에게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는 다시 부흥할 것이고, 우리 교회로 인하여 우리나라가 살아날 것이고, 내 영혼이 살아나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올 것입니다.

모스크바에 가 봐도, 뉴욕에 가 봐도 거리 곳곳마다 삼성과 LG의 광고판이 도배를 하고 있습니다. 10년 전만해도 일본의 소니(SONY)와 파나소닉(Panasonic)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한국 기업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 영광에 취해 있다가 도태당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다가는 그 옛날의 대영제국이나 무적함대 스페인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지금이 영적 개혁을 일으켜 첫사랑을 되찾을 때입니다. 그것만이 우리와 우리 교회가 살 길입니다.

제가 해외선교에 주력하는 것을 본 혹자들은 “그 돈으로 교회를 짓든가, 가난한 사람을 돕지.”라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그건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그중 한 사람만 변화되어도 그 사람으로 인해 수많은 영혼이 구원됩니다. 조지 뮐러 같은 사람 하나가 변화되니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변화되었습니까? 저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습니까? 광고란 그런 겁니다. 그래서 대기업들이 미국 슈퍼볼대회 같은 곳에 엄청난 광고비를 내고 광고하는 겁니다. 분명히 나비효과가 있거든요. 그러니 장사를 하든, 취직을 하든, 결혼을 하든 광고하세요. 광고와 성공은 반드시 정비례하니까요.

그리고 하나 더, 나에 대한 소문이 어찌 나 있는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내 소문이 나쁘게 나 있는지, 좋은 소문이 나 있는지 살펴 나를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소문이 곧 나이기 때문입니다. 이왕이면 다윗처럼 ‘찬양을 잘 하는 자’로 소문이 나야 하고, 요셉처럼 ‘진실된 자’라고 소문이 나고, 고넬료처럼 ‘구제를 잘 하는 자’로 소문이 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언행심사에 조심하고, 하나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좋은 물건이 있는데 안 팔립니까? 결혼적령기의 자녀가 있습니까? 광고해야 합니다. 소문을 내야 합니다. 광고만이 생존전략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광고와 성공은

정비례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광고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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