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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 36주년 축하 메세지

1076호 · 2020-12-20

이초석 목사님의 성역 36주년을 축하드리며,

축하의 메시지를 싣습니다!

성역 36주년 축하드립니다

목사님의 성역 기념일이 되면 고창 포도원에 400평 쯤 되는 밭 전체를 뒤덮고 있는 한 그루 포도나무가 늘 떠오르곤 한다. 어떻게 포도나무 한 그루가 그 넓은 땅을 뒤덮을 정도로 클 수가 있을까. 상상하기가 힘든 일을 우리가 현실로 보고 있다. 사진만 보아도 입이 떡 벌어진다.

봄이 되면 그 포도나무에 달릴 수천 송이의 분양이 순식간에 끝나서 분양된 포도송이를 잘 키워 늦여름이 되면 주인에게 배달된다고 한다. 기자에게 대답한 농부의 비결은 간단했다. 뿌리가 먼저 뻗어나가야 나뭇가지가 뻗어나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밭에 물을 줄 때 뿌리에 직접 물을 주지 않고 뿌리로부터 1미터 쯤 먼 곳에 둥글게 물을 주면 뿌리가 살기 위해 물 준 곳으로 뻗어나간다는 것이다. 먼저 뿌리부터 온 밭에 가득하도록 키워나간단다. 그러면 포도나무가 자연스럽게 퍼져나가고 마침내 뿌리와 나무가 서로 도와가며 얼마나 튼튼하게 자라는지 아무리 커도 실한 열매들을 주렁주렁 맺는단다.

우리 목사님 포도나무도 요셉의 포도나무가 담을 넘은 것처럼 전 세계로 가지를 뻗어 온 세계를 뒤덮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다. 지금도 그 가지들을 통해 많은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들을 보고 듣는다. 목사님의 포도나무가 전 세계로 뻗어나간 것도 뿌리가 먼저 뻗어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뿌리가 기도라고 생각한다. 농부가 뿌리에게 고통을 주어 넓게 뻗게 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포도나무가 지구촌을 덮게 하시려고 물 없는 사막, 눈 덮인 산야를 걷게 하셨나보다. 주님의 은혜와 함께하심이 없으면 도저히 살아낼 수가 없고, 성령의 생수가 아니면 말라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인도하셔서 눈물의 기도로 그 뿌리가 먼저 온 세상으로 넓게, 넓게 뻗어나갔으리라.

어느덧 36년생 나무가 되어 수없는 성도들이 전 세계에서 그 그늘에 거하며 생명을 공급받고 있다. 공들여 키운 나무도 계속 공을 들이지 않으면 망가지고 고사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최선을 다하시는 목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낀다.

안성에서 배 밭을 하시는 어느 성도 집에 심방 간 적이 있었다. 나무가 분재처럼 되어 족히 100년은 된 것 같아 보였다. 이 나무는 얼마나 됐냐고 물으니 예상대로 100년 쯤 되었단다. 지금도 열매를 맺느냐고 물었더니, 손질을 계속 하니 열매만 맺는 것이 아니고 배도 엄청 맛있단다. 목사님께서 지금까지 온 힘을 다해 키워 오신 나무 대대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돌본다면 더 튼실한 나무가 되어 더 맛있는 열매를 계속 거둘 것이다. 예수중심교단의 나무가 더 건강하고 풍성한 열매 맺는 나무가 되어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목사님 성역 36주년을 우리 모두 축하드리며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이시대 목사

내가 만난 이초석 목사님

원고 청탁을 받고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의사들이 한명도 남지 않고 사라져버린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우선 중환자실에 있는 중병의 환자들이 하루 이틀 사이에 모두 사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수술을 앞둔 각종 암환자, 심장병환자, 심한 외상을 입은 환자들이 죽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은 만성 성인병을 가진 환자들과 작은 질환이지만 점차 큰 병으로 진행되어 사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붕괴되어 전쟁 같은 대란이 일어나고 두려움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한 명의 의사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상상 이상의 노력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중·고등학교 6년간 거의 전교 1등을 해야 하고, 전체적 석차로는 전국에서 0,2%안에 드는 성적이어야 합니다. 의과대학 6년 동안 하루 18시간의 의학수업과 실험, 실습을 해야 하고 국가고시를 통해 의사면허를 받습니다. 의사면허를 받은 후 또 다시 인턴, 레지던트 5년의 기간 동안 하루 20시간의 수련을 받아야 초보 병아리 전문의 자격을 받고 환자를 진료할 수 있습니다. 명의가 되기까지는 또 다시 10년 이상의 진료경험이 요구됩니다.

‘할 줄 안다’의 초보의사와 ‘잘 한다’는 명의는 엄청난 격차가 있습니다. 뇌수술 할 줄 아는 초보 의사와 뇌수술 아주 잘하는 명의(名醫)가 있다면 누구에게 수술을 받을 것입니까? 질문을 할 필요가 없는 부분입니다.

영혼의 의사인 목회자의 경우는 어떨까요? 어느 날 이 세상 목사님들이 모두 없어졌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의료대란 같은 전쟁에 준하는 큰 난리와 두려움이 찾아올까요? 이초석 목사님마저 안 계신다면 엄청난 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할 줄 안다’의 초보 목회자와 ‘잘 한다’는 원로 목회자는 어떤 차이가 있고, 왜 이런 격차가 존재하는 것일까요? 의학과 신학은 같은 뿌리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사실 의학은 신학의 시녀 학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언제나 신학이 먼저이고, 의학은 신학을 뒷받침하고 보조하는 영역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의사생활을 한 지 내년이면 36년입니다. 의사와 목사는 그래서 참 비슷한 것이 많은 직업입니다. 의사로서 ‘의학은 신학의 시녀이다.’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해주신 분이 바로 이초석 목사님이셨습니다.

내가 이초석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26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 나는 대전의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에 다니며 신학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1990년대 우리나라는 ‘정통과 이단’시비가 정점에 있던 시기였습니다. 조금만 이상하면 이단으로 몰아붙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처음 이초석 목사님의 대전집회에 참석하여 예배시간에 귀신을 쫓으시는 축사의 현장과 암, 중풍, 희귀난치병 환자들이 타고 온 휠체어를 내버리고 짚고 온 목발을 던져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의사로서 적잖이 놀랐습니다. 이초석 목사님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고 병든 자에게 안수하시며, 예배 말미에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쫒아내는 것이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라(막12:28)”,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마9;29)는 성경의 말씀만 전파하셨습니다. 그 능력이 목사님 당신의 것이라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고 기도로써 이루셨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모습을 보면서 왜 저런 분을 이단이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고, 그게 이초석 목사님과의 첫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의사로서 심히 부러운 부분도 있었고, 의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치유하는 모습에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내가 크리스천으로서 기도하지 않았구나 하는 죄책감이 몰려오는 카이로스의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곁에서 지켜본 이초석 목사님은 ‘할 줄 안다’와 ‘잘 한다’를 구분하시는 원칙을 가지고 계십니다. 목사님 당신이 ‘할 줄 안다’와 ‘잘 한다’에서 ‘잘 한다’를 선택하기 위해 매일 7시간씩 기도하고 계십니다. 목회와 교단 일에서도 목회자와 행정사무의 사람을 쓰실 때에도 ‘할 줄 안다’와 ‘잘 한다’를 구분하여 잘 하는 사람을 찾아내 일을 맡기셨으며, 어느 부분에서 ‘할 줄 안다’의 수준일 경우 과감하게 잘하는 외부 전문가에 일체의 일을 맡기시고는 조금도 간섭하지 않으십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호4:6)는 말씀을 자주 하신 이유입니다.

목사님은 ‘목회는 외줄타기’라고 하셨습니다. 조그만 실수, 허물, 아주 작은 비리에도 소문이 나고, 이로 인해 외줄에서 떨어진다 하시며 스스로를 삼가고 기도하신 목회 36년의 성역이었습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외롭고 힘들고 눈물 나고 괴롭고 고독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목사님은 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지침으로 살아오셨고, 제게도 늘 이것을 금과옥조로 모든 일을 판단하라 하셨습니다.

“의료진을 신뢰하지 않는 환자는 병이 여러 개 있는 희귀난치병 환자이고, 의사의 지시와 권고를 따르지 않는 환자는 곧 중환자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목사님을 신뢰하지 않는 신자는 여러 귀신들이 들어있는 희귀난치 신자이고, 목사님의 지시와 권고를 따르지 않는 신자는 곧 신앙의 중환자가 될 것입니다.

이초석 목사님의 지나온 36년의 시간을 두 손 들고 아멘으로 존경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36년의 기간이 더 성대하고 세계만국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 나라가 더욱 더 굳건히 세워지는 예수중심교단의 미래를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초석 목사님의 향후 36년을 위해 40대의 건강과 배가되는 영력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목사님! 사랑합니다. 성역 36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의학박사/신경외과 전문의 안계훈

신우 신경외과/재활의학과 대표원장

메디스템 줄기세포치료학회 이사장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물 위를 걷는 삶을 살아가시는 목사님을 만나게 된 것은 뉴욕 5차 집회 때(99년도)입니다.

제가 전도사로 일하던 휄로쉽 교회에서 찬양을 돕게 된 것이 인연입니다. 그 이후 필라델피아에서 저의 교회 주최로 부흥 집회가 있었으며, 저는 그 때부터 무엇인가 강력한 힘에 이끌려 목사님의 해외선교팀 열차에 오르게 됩니다.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군요. 정금 같은 남미의 ‘드림팀’이 구성되기까지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어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목사님과 남미 사역을 함께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터득하게 되었지요.

‘아! 목사님께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살고 계시는구나. 또 물 위를 걷는 삶을 살고 계시네.’ 목사님과 많은 경험을 통해 목사님의 삶을 알게 되었고,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그리고 부단히 노력하며 많은 물리적인 적들을 물리쳤기에 오늘의 제가 있습니다. 저도 목사님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또 물 위를 걷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기도하며 노력했습니다. 선교 날짜를 받으면 바짝 긴장이 되어, 또 어떤 적군들의 방해가 있을까, 그 적군들과 싸우는 일에 목숨까지도 내놓을 각오가 필요했답니다.

한 번은 텍사스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려고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데 굉장히 높아보여서 조심해야겠다 했는데, 그만 발이 미끄러져 뒤로 넘어졌습니다.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 갔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음 날 무사히 팀과 합류하여 일하게 하시는 이적을 경험도 했습니다.

저는 영어단어에 ‘understand’란 말을 좋아합니다. ‘밑에(under, 아래에) 서다(stand)’인데요. 다른 표현은 상대방의 아래쪽에서(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자는 뜻이 되겠지요.

목사님은 항상 약자 편에서, 상대방 편에서 생각하시고 이해하시며 일처리 하시는 것을 늘 보아왔어요. ‘아. 저래서 실수가 없으시구나.’ 그 모습은 저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항상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시는 모습은 늘 감동이었지요. 그것뿐입니까? 미래를 보시는 안목도 남다르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파라과이 집회 때 저를 도와서 일하시는 한 분이 목사님께 어렵게 허락을 얻어 선교 길에 함께 하게 됐지요. 저는 목사님께 부탁을 드려 집사 직분을 받게 했습니다. 사실 그 분은 그 아내가 14년 동안 눈물의 기도를 드려 돌아온 탕자 같은 자였는데, 목사님의 사역을 보고 깨닫고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동행을 청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10년이 다 되도록 그에게서는 만족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참으로 목사님께 부탁을 드렸던 것이 못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때가 되면 변화될 것이니 조급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어 대신 성경 쓰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각자가 집에서 성경을 쓰기 시작한 겁니다. 시편부터요. 그런데 이적이 일어났어요. 변화 받지 못한 그 집사가 성경을 쓰면서 회개가 일어나고 변화가 되더니 지금은 일등공신이 되어 전도도 잘하고 기도도 정말 열심이며 저를 적극적으로 돕는 자가 되었어요. 저는 그 때 다시 한 번 목사님께서는 미래를 내다보시는 영감이 남다르시다는 것을 알고 머리를 깊이 숙였습니다.

지금도 목사님은 이 코로나19가 끝나면 남미 100만 명 집회에 가자고 하십니다. 21년 동안 ‘No’가 없었던 저는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코로나가 끝나면 목사님과 함께 다시 ‘드림팀’에 합류하여 세계복음화에 동참하겠습니다. 힘이 닿는 대로 부족하나마 목사님을 돕겠습니다.

목사님의 성역 36년을 멀리서나마 축하드리며, 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김성자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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