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쉿!
바보 삼형제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삼형제가 살고 있는 마을 산속에 동굴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마시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샘물이 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물을 마시려다가 죽었다. 왜냐하면 그 샘물을 먹으려면 동굴에 들어가서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만약 말을 하면 죽었기 때문이다.
바보 삼형제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다는 생각에 동굴에 갔다. 동굴에 들어간 큰형이 동생을 보며 걱정이 돼서 말했다.
“여기서는 절대로 말하면 안 돼.”
그러자 큰 형이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형이 죽은 것을 보고 놀란 둘째가 “말하지 말라니까.”라고 말했다 그만 또 죽고 말았다. 그러자 셋째는 엉엉 울며 “어떡해! 형들이 다 죽었네.” 하고 죽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동네 사람들이 삼형제의 시신이라도 거둬오려고 동굴로 갔다. 동굴에 들어간 이장이 동네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이곳에서 말을 하면 절대 안 됩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네!” 대답하고는 모두 죽고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지키기 힘든 것이 세 치 혀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 자라 하셨겠나. 말을 아끼자. 진실은 꼭 말로 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게 되니까. 지혜란! 표정과 언어의 조종기술이다.
“우리가 다 말의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약3:2).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1:19).
이초석 목사 저서 ‘사랑이 무르익어야
결혼에 골인한다’ 중에서
믿는 자가 받을 성령 (요한복음 7:37~39)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 복음을 전해 주셨다. 세상에는 많은 언어가 있으니 이는 모두 세상에서 난 언어다. 그러나 복음은 창세 이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난 언어다. 복음은 피 뿌린 옷을 입은 말씀(계19:13), 즉 하나님의 생명을 입고 있는 말씀이다(레17:11). 그 말씀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그리스도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났다.
사람들이 가진 신념은 사람을 흑암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놓을 수 없다. 오직 복음으로 말미암은 믿음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골1:13). 이 믿음에 대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했다.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이 복음이 가져다주는 것이 믿음이니, 복음을 받아들이면 믿음을 갖게 되며, 믿음이 있다 함은 복음을 받았다는 뜻과 같다. 이처럼 복음과 믿음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다.
이와 같은 복음과 믿음에는 하나님의 의(義)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했다. 지금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복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요7:38~30). 복음을 받은 사람에게는 성령이 임하신다. 기독교 종교인들은 그들의 교리에 따라 ‘예수를 믿는 순간 이미 성령이 임하신 것이다.’라고 하나 이는 자기도 속고 남도 속이는 것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도 성령의 역사는 있었으나 그때는 성령이 다만 외부에서 감동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기를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을 가리켜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하셨다. 그 성령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임하신다. 그러므로 ‘너희가 믿음이 있느냐?’라는 말은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라는 말과 같다.
성령이 임하실 때는 조건이 있다. 바로 회개다(행2:37). 율법이 있는 곳에서는 죄가 드러나고 죄가 더한 곳에서는 은혜가 더 풍성하다 함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회개하라는 의미다(롬5:20~6:2).
예수께서는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강이란 것은 본래 발원지에서는 개울물에 불과하지만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폭이 넓어진다. 성령을 받은 사람의 모습도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 물줄기가 처음에는 가늘게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점점 넓어져야만 강 옆에 있는 나무들이 마르지 않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겔17:8). 시작은 잘했는데 왜 점점 좁아지는가? 이것을 타락이라고 하며 다시는 돌이킬 방법이 없다(히6:1~6) 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신 후에는 성령을 거스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는 중요한 의무가 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복종하는 것이다.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이 임했을 때, 마리아는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 섭리를 받아들였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9) 하셨을 때 제자들은 그 섭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자기의 생업을 포기해야 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순종하려는 사람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십자가에는 사람이 좋아할 만한 부분이 전혀 없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를 지게 하시는 분이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롬8:16~17).
하나님은 아버지시다. 그가 아들을 보내사 말씀을 알게 하셨고(요12:49~50), 아들은 이를 순종하셔서 인류에게 구원이 되셨으니(마20:28),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이 영생이다(요17:3). 이러한 확인과 그 증거를 성령이 주셨으며 또 인(印)치신다(고후1:21~22). 성령은 관념의 존재가 아니요 실존으로서 오늘날에도 친히 나타내시고 증거 하신다(행19:2). 세상은 그를 알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하나(요14:17) 그러나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반드시 임하시는 성령이시다(요7:38). 그는 보혜사로서 인간의 연약함을 친히 도와주신다. 성령은 주님의 약속이며(롬8:26~27) 반드시 받아야 하는 성도의 믿음이다.
박덕규 목사
마음을 지키는 방법
열세 살 때 무척 싫어하던 교회 오빠가 있었습니다. 같은 교구였지만 저보다 나이가 다섯 살 많았던 터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죠. 그 오빠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중고등부 예배를 드리고 돌아온 언니와 언니 친구에게서 귀동냥으로 들은 게 전부였습니다. 잘난 척한다는 둥, 별로라는 둥 가벼운 험담이 대부분이었는데, 가벼운 흉이라도 매주 옆에서 듣다 보니 제 마음속에도 미움이 크게 자라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외출했고 혼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수화기를 들자 교회 언니가 무거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 오빠가 사고를 당해 하늘나라에 갔다고요. 부모님 오시면 말씀드리라며 장례식장 위치를 알려주었습니다. 너무 놀란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전화를 끊는 순간 주저앉아 오열했죠. 이유 없이 싫어하고 미워했기에 괴로웠고, 직접 용서를 구하고 싶어도 더는 그럴 수 없음에 고통스러웠습니다. 몇 시간을 엎드려서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한 죄를 용서해달라고. 앞으로는 예수님 같은 마음으로 살겠다고.
실천은 쉽지 않았습니다. 학교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들과 싫은 선생님이 꼭 있었으니까요. 친한 친구들과 모이면 자연스레 누군가를 험담하게 되었죠. 그러고 돌아온 날은 또 회개하고, 친구를 만나면 또 흉보고. 그렇게 반복되는 나날이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언제나 그날의 후회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싫어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친구들이 누군가를 흉보면 말을 보태기보다는 가만히 듣고만 있으려 했고, 사람들의 단점을 찾기보다 장점을 발견하려고 했습니다. 누군가의 싫은 점보다는 좋은 점을 말하려고 노력했고요. 잘은 되지 않았는데, 이것도 운동처럼 계속하다 보니 습관이 되더라고요. 4년이 흘러 고등학교에 입학할 즈음이 되자 제 마음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잘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학급의 모든 친구와 사이가 좋았지요. 가끔 누군가의 싫은 면이 보여도 입술로 말하지 않고 그 사람이 가진 좋은 면만 말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정말 좋은 면만 보이게 되더라고요.
마음을 지키는 방법은 입술을 지키는 것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싫어하는 마음이 생겨도 입술을 지켜 말로 내뱉지 않으면 그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말로 내뱉으면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어느새 눈덩이처럼 커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입술을 지켜 마음을 지키게 해달라는 기도를 지금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해 마음을 지키는 습관을 어렵사리 갖게 되었지만, 스무 살이 되고 사회에 나가고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서 입술을 지키지 못한 날이 많았습니다. 마음의 견고한 성벽이 작은 험담과 가벼운 흉으로 인해 구멍이 나고 무너진 적이 수도 없지요. 그래서 요즘은 다시 무너진 성벽을 세우는 자세로 먼저 입술부터 지키려고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지켜내 예수님 같은 마음이 되고 싶습니다.
신은혜
leekjlkj@naver.com
세상에는 짝퉁이 많습니다. 명품일수록 이윤이 많이 남으니 비슷하게 흉내를 낸 짝퉁들이 만들어져 암암리에 팔리고 있습니다. 유일한 구원의 통로인 기독교도 그래서 그런지 이단이나 유사종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천국을 향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화도 위조지폐가 많이 통용되고 있어서 은행마다 위조지폐를 가려내는 감별사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감별사들은 위조지폐를 가지고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훈련할 때 진품을 가지고 손의 감각을 익힌다고 합니다. 진짜를 계속 만지다 보면 가짜가 섞여 있을 때 금방 손끝에 느낌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의 진수인 예수님을 날마다 만나는 사람은 가짜에 미혹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엡2:8).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값없이 공짜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빈부귀천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가장 쉬운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귀한 것을 공짜로 준다고 하니 믿기질 않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어떠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미혹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나의 동역자 조건
예배를 드릴 때 청년들이 찬양을 하고 율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 새벽이슬처럼 싱그럽고 에너지가 넘침을 느낍니다. 우리도 이렇게 기쁨을 느끼는데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실까요?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청년들에게도 늘 여러 고민들이 있답니다. 어릴 때는 대입, 커서는 취업으로, 다음으로 배우자에 대한 고민을 하곤 합니다. 저는 결혼적령기에 있는 입장에서 제가 생각하는 배우자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누구나 배우자에게 바라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외모였으면 좋겠다.’, ‘부지런했으면 좋겠다.’, ‘어른들을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등등 여러 바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 교회 청년들은 예수를 잘 믿는 배우자를 1순위로 꼽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이성을 배우자로 찾고, 또 그렇게 결혼하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중심교회에서 뜨거운 성령의 역사를 보는 것과는 달리 모든 교회가 항상 뜨겁고 성령이 역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같은 크리스천이어도 신앙이 맞지 않아 좌절되는 경우를 수없이 봐왔습니다. 반대로 우리 교회가 성령의 역사가 뜨겁기 때문에 배우자 측에서 거부하는 경우가 많죠. 이렇게 설명하면 어떨까요? 대입시험을 볼 때 서울대학교와 그 외 다른 대학교를 동시에 합격한 학생이 있다면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할 겁니다. 그 이유는 그곳이 최고의 대학이고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최고의 영적 배움터인 예수중심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옮기자고 누군가가 말할 때 흔들리거나 갈등을 할까요? 그 누군가가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말입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상향평준화는 있어도 하향평준화는 없는데요. 오히려 연인에게 같이 우리 교회를 가자고 하는 것이 서로의 사랑을 시험해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신념마저 뛰어넘을 정도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섬기는 교회를 보고 그것을 통해 나의 사랑에 확신을 가지라고 이야기합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라는 말씀을 통해 혹시라도 신앙이 맞지 않는 연인과의 헤어짐으로 잠깐 고통스러울 수 있으나 장차 영원한 천국의 상급에 동참하는 믿음의 동역자와 함께하는 한없는 기쁨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예수를 따랐던 베드로처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연인과의 만남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김대화
우연과 사인
20여 년 전이었다. 당시 핸드폰이 없었고 누군가와 긴급히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던 때였다. 부흥 집회를 참석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교구 차량을 탑승해야 했다. 집회는 내가 처음 간 낯선 곳에서 열렸었고, 모르는 지역에서 차량 위치를 찾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예배가 끝난 후 그 차량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한 10~20분간 돌아다녔을까? 차량은 너무 많고 정확한 차량 위치를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다. 내 앞에 양 갈림길이 나왔는데, 좌우 양쪽으로 끝없이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이 보였고, 양쪽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거기서 지체만 할 수 없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교구 식구들을 생각해서라도 빨리 차를 찾아야 했다. ‘하나님, 어느 길로 가야 하나요? 도와주세요.’ 잠시 기도했으나 아무 사인이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결정했다. ‘하나님 왼쪽 길로 가겠습니다. 도와주세요.’ 그렇게 기도하고 왼쪽 길로 발을 내딛는 순간 보이지 않던 거미줄에 내 얼굴이 걸렸다. ‘뭐지? 왜 갑자기 거미줄이?’ 이것은 우연인가, 하나님이 주신 사인인가, 순간 고민하다 반대 길로 가라는 사인으로 받아들이고 바로 우측 길로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우측 길 끝에서 마침내 교구 차량을 만나게 되었다.
거미줄에 걸린 것을 우연의 일이라 생각하고 왼쪽 길로 갔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그 끝도 없던 길을 생각해보면 지금도 아찔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사인을 보내고 계시는데 혹시 내가 무뎌서 우연으로 치부하고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본다. 수많은 다른 주파수에 묻혀서 정작 가장 중요한 그분의 음성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며 반성한다. 예민하게 우리를 가다듬고 충만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사인을 받아들이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이 되길 바란다.
장명훈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