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꿈꾸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시126:1~3)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6:3).
믿음의 기본은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데서 출발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성경 구절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하나님을 알아봅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이시며, 사람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창1:27). 그 하나님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롬4:17),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2:6~7). 그래서 사도 바울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롬11:33~36)라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실 뿐 아니라 아니 계시는 곳이 없이 무소부재하신 분입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찌라도 거기 계시니이다”(시139:7~8). 또 그분은 우리의 속내까지 속속히 다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시139:1~3). 그래서 우리의 형편과 필요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합해서 하나님을 한마디로 표현한 구절이 이것입니다.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18:27).
그리고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을 죽이신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알아야 참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 32,500가지의 약속을 선물로 주셨고, 그것을 다 지키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짓말을 못하시기 때문입니다(히6:18). 더욱이 그분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며(마7:11),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롬8:28).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고 싶어 하십니다. 당신의 능력으로 우리의 영·혼·육이 잘 되기 바라십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은혜요, 꿈같은 일입니다. 성경을 보세요. 소경 바디매오가 눈을 뜬 일(막10),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에 걸렸던 여인이 나음을 받은 일
(막5), 38년 된 병자가 고침을 받은 일
(요5)…. 이 모두가 하나님이 행하신 대사(大事)입니다. 마치 꿈꾸는 것 같은 일이지요.
그런데 이 시대에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이런 하나님의 대사를 그 시대 그 역사의 일이라며 무관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인데 말입니다. 그건 그들이 하나님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들 스스로 한계를 그어버리니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으신 거지요. 그래서 지금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과소평가했던 것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4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엘리사를 따르던 생도 하나가 죽었습니다. 빚만 남기고요. 어느 날 채주가 와서 빚 대신 아들을 데려가겠다고 했습니다. 생도의 아내는 화급히 스승이었던 엘리사를 찾아와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묻자 엘리사는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고 말합니다. 생도의 아내는 기름 한 병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게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이었지요. 그러나 엘리사는 이웃에 가서 그릇을 있는 대로 빌리고, 아들과 방에 들어가 문을 건 채 기름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생도의 아내와 아들은 엘리사가 지시한 대로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름을 따르는데 빌려온 그릇이 다 차도록 기름을 따르고 따라도 줄지 않았습니다. 빈 그릇이 하나도 없었을 때야 기름이 그쳤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사의 생도의 아내에게 대사를 행하신 것입니다. 그들 모자(母子)는 “이게 꿈이야, 생시야?”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일 이들이 주위의 부정적인 사람들의 말을 들었더라면, 혹은 선지자의 말을 반신반의했더라면 이런 꿈같은 일이 일어났을까요? No.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부정적인 말이 귀에 들리고, 주의 종의 말에 의심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과소평가한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는다면 부정적인 말에 현혹될 수가 없습니다.
그다음 장에는 아람의 군대장관인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큰 용사였으나 문둥병 환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이스라엘에서 잡은 작은 계집종의 말을 듣고 아람 왕의 선처를 입어 이스라엘 땅으로 문둥병을 치료하러 옵니다. 그런데 선지자 엘리사는 그를 맞이하기는커녕 사환을 보내어 요단강에 일곱 번 들어가 몸을 씻으라고만 합니다. 이에 나아만 장군이 대노하여 본국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때 그를 수행한 종들이 “장군님, 문둥병이 낫기만 한다면야 뭔들 못하겠습니까?”(왕하5:13)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아만 장군이 마음을 돌이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니 어린아이 살처럼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대사가 속히 달려오려면 긍정적인 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선친들은 부정적인 말에 귀를 닫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었기에 꿈같은 일을 이뤘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일을 하시면 마귀도 일을 시작합니다. 마귀는 주위 사람들을 통해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이건 안 돼.”라는 부정적인 말과 생각을 주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하시며 부정을 쫓아내라고 하십니다. 그럼요, 하나님은 약대가 바늘귀로 통과하게도 하시는 분이시며(막10:25), 우리의 겨자씨만한 믿음으로도 산을 들어 옮기실 수 있는 분입니다(마17:20). 그분을 온전히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당신 삶에 꿈같은 일이 일어나길 원합니까? 하나님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주위 사람의 부정적인 소리에 귀를 닫고 온전히 하나님께 구하세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하신 말씀에 후회가 없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으로 주시려는 하나님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고 하십니다. 구하는 대로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까무러칠 정도로 입을 크게 벌려 구하세요. 엘리사가 생도의 아내에게 그릇을 조금 빌리지 말고 많이 빌리라고 한 것처럼, 바랄 수 없는 것을 구하세요. 그래야 하나님이 사람이 할 수 없는 꿈같은 일을 우리에게 이루십니다.
히스기야에게 곧 죽는다고 말씀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그에게 다시 15년 생명을 연장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한나의 태를 닫은 분도, 그녀에게 사무엘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무엇을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과소평가한 죄를 회개하고 온전히 그분을 믿을 때 당신의 삶 속에 꿈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할렐루야!
믿음도 전염되고
부정도 전염된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