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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적인 것과 실수는 다르다

1074호 · 2020-12-06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는 자들은 금세와 내세에 용서가 없다(베네수엘라 바르가스 집회 광경)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문제는 고의적으로,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저지르는 잘못이다. 그러나 설령 의도적이었다 해도 죄를 자복하고 철저히 회개하는 경우 다윗의 예를 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기회를 주셨다.

목사님은 지난 수요예배를 통하여 성경에서 실수했던 자들과 고의적으로 죄를 저지른 자들이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 보여주셨다.

“아나니아, 삽비라는 고의적으로 베드로를 속여서 저주 받은 대표자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네 아내와 더불어 속이느냐?’ 베드로의 말을 들은 아나니아, 삽비라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 죽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진실로 하나님께 드려 사도 바울과 동일하게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았다고 성경을 통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잘 되는 목사, 장로, 권사, 집사들을 고의적으로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있는데 만약 그런 사람들이 잘 된다면 하나님이 안 계신 겁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실 뿐입니다. 깨닫지 못하면 영원한 지옥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이 땅에 검찰, 경찰, 감옥이 존재하듯이 하나님께서도 천군과 천사, 지옥을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의도적인 살인과 과실 치사는 재판정에서 전혀 다른 판결을 낳습니다.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살인에 대해서는 중형을 때립니다. 그러나 실수로 인한 과실치사인 경우, 피고인이 용서를 구하며 개전의 정을 보일 때는 정상 참작을 통해 집행유예로 풀려나기도 합니다.

나의 죄는 남은 몰라도 나는 압니다. 물론 하나님도 아십니다. 그런데 나는 모르고 하나님만 아시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충성된 신하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고, 이를 감추기 위해 다시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충신 우리아를 전장에 보내 살인한 다윗이 있었죠. 다윗 자신은 완전범죄로 다 감출 수 있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 많은 양과 소를 가진 부자가 하나밖에 없는 암양 새끼를 가족처럼 데리고 살고 있는 가난한 자에게서 빼앗아 자기 손님을 대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죽어 마땅한 놈’이라고 펄펄 뛸 때까지만 해도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가 ‘네가 그 사람이다!’라고 직언했을 때, 다윗은 즉시로 깨닫고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방성대곡하며 용서를 구하는 다윗을 비록 용서하셨지만, 죄의 대가는 피할 수 없어 그의 집안에 피가 끊이지 않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의도적으로, 고의적으로 성령으로 역사하는 주의 종들을 훼방하는 자들에게 경고합니다. 예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12:31~32). 천국에도 들어갈 수 없을뿐더러 이 땅에서도 잘 될 수가 없다는 무서운 경고의 말씀입니다. 절대 잘 되는 사람들을 고의적으로 딴지 거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시기, 질투해서는 안 됩니다. 박수를 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원수조차 사랑하고 축복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깨닫고 돌이켜야 합니다.

남에게 눈물을 흘리게 한 자는 자기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심은 대로,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고의적으로, 의도적으로 예수를 죽이기 위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쳤던 이스라엘 민족이 수천 년을 나라 없이 떠도는 신세가 된 것도 모자라 나치의 600만 대학살이라는 끔찍한 저주를 당한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그 학살을 명령하고 부역했던 나치 전범들은 지금까지도 단죄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도, 역사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음 뒤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히9:27).

깨닫고 돌이켜 회개합시다. 이제는 남을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며, 박수를 보내는 참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은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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