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한 광야훈련
뉴노멀시대로 변화되어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불안한 마음으로 가득하다.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이기도 하고, 당장 우리의
건강과 일터와 자유를 잃어버릴까봐 긴장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마치 광야에
서있는 느낌이 든다.
광야는 우리에게 어떤 곳인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다. 반석에서 나오는 물과 만나와 메추라기로만 먹고 살 수 있는 곳이다. 오직 100%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하며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하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으로만 살아내야 하는 곳이 광야이다.
또 광야는 불순종을 순종으로, 불평을 감사로 훈련하는 장소이다. 하나님은 노예 근성이 가득하고 불순종과 불평이 몸에
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해주시고, 옷과 신발이 해어지지 않게 하시며, 순종훈련과
감사훈련을 시키셨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처럼 순종하는 삶이요,
범사에 감사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광야는 내 자아가 깨어지는 곳이다. 골리앗과 싸워 승리하고 승승장구했던 다윗도 13년 동안 사울 왕에게
쫓기며 도망해야 했던 광야 인생이 있었다. 그런데 이 시간은 다윗의 자아가 깨어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인격으로 빚어져 가는 시간이었다.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 부은 왕을 결코 죽이지 않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인생들과
함께 지내며 친구가 되어 주었다. 자신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보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배우는 시간이 광야였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라를 통치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으로 인정받을 수가 있었다.
우리 목사님은 눈 덮인 산야, 물 없는 사막을 지나왔다고 늘 말씀하신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눈물 없이 갈 수 없는
광야를 통과하셨기에 세계적인 전도자가 되셨고, 지금의 예수중심교단을 이루신 것이 아닌가.
우리 인생에도 반드시 광야 훈련이 있다.
그러나 광야의 시간은 하나님만을 신뢰하도록 우리의 믿음을 키워가며 불완전한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키고 성숙시키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광야에서 빨리 나오는 방법은 순종과 감사다. 그렇지 않으면 일주일이 40년이 됨을 알자.
이정금 전도사
전도의 파장
1858년 보스톤에 있는 한 주일학교 교사 킴벌(Kimball)은 구둣방에서 일하는
자기 반 학생을 방문하여 그에게 성경공부를 시켰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였고, 그리고 범사에 열심이었다.
그 가난한 학생이 후일 세계적인 목사가
된 무디(D. L. Moody)다.
21년 후, 무디는 런던에서 전도집회를 열었는데, 거기 참석했던 메이어(F.Meyer)가 주님을 영접하여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메이어 목사가 미국에서 집회를 할 때 채프만(J.Chapman)이 회심했고, YMCA에서 일했던 채프만은 야구선수인 썬데이(Billy Sunday)에게 성경을 가르쳐 전도사가 되게 했다. 썬데이는 강사로 초빙되어 집회를 가졌는데, 그때 당시 열두 살짜리 소년 한 명이 결신을 했다. 그 소년이 전 세계 수백만 명
에게 복음을 전한 대부흥사 빌리 그래함
(Billy Graham)이다.
전도는 이처럼 엄청난 파장을 가지고 있다. 마치 도미노 현상처럼 전도는 큰 파장을 타고 다닌다. 그러므로 때를 얻는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 만일
당신으로 인해 복음의 파장이 끊기면 당신은 나중에 하나님께 물음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당신이 씨를 뿌리는 자가 되라. 그러면
누군가가 물을 줄 것이고, 거두는 이가
반드시 있을 것이니 열심히 씨를 뿌리는
복음 전파에 박차를 가하라. 당신이 뿌린 씨가 나중에 거목으로 자랄 수도 있음을 알고 어디든 어느 때든 복음의 씨를 뿌리는 부지런한 농부가 되라.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는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이초석 목사 저서 ‘사랑이 무르익어야
결혼에 골인한다’ 중에서
항상 최고의 것으로
최근 제가 맡은 팀에 새신자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나오지 않을 것 같던 친구가 나와 예배와 모임에 참석하는 모
습을 보니 ‘하나님이 이번에 이 친구를
확실히 만나주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온 지 2주 만에 그 친구에게 큰 어려움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하며 친구는 지금까지 노력해서 얻은
것들을 다 잃었고, 교회에도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분명 이 친구가 교회에 나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는데, 믿음이 생기기도 전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나도 마음 아픈 일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은 한 사건을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제가 대학교에 떨어지고 다시 입시를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의 일입니다. 그날따라 일도 힘들고, 미래에 대한 막연함 때문에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했는데, 마침 바로 옆으로 버스가 지나가면서 신호등에 딱
걸리게 되었습니다. 조금만 뛰면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아서 ‘진짜 하나님,
오늘 되는 일도 하나 없었는데, 저것이라도 제발 타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며 뛰었습니다. 그런데 코앞에서 버스가 떠나고 말았습니다. 저 버스를 고작
1초도 잡아 놓으시지 않은 하나님이 밉고, 저런 사소한 것도 마음대로 안 되나
싶어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채 1분도 되지 않아 같은 번호의 버스가 오는 게 아닙니까? 게다가 그 버스는 퇴근 시간에 절대 볼 수 없는 텅텅 빈 버
스였습니다.
저는 비록 바로 앞에 있는 버스를 타길
원했지만 항상 최고의 것을 주시는 주님은 제가 더 편하게 갈 수 있는 빈 버스를 준비해주셨습니다. 이 일이 생각나면서 이 친구의 고난이 하나님을 더욱
강하게 경험하기 위한 과정인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도 후 친구와 대화를
하는데 놀랍게도 친구가 저에게 “예수님이 도와주실 거예요. 기도 열심히 하려고요.”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가장 최고의 길로 그 친구를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당장은 이해하지 못할 고난이 오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린다면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최고의 것으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장수정
어젯밤도 안녕히 주무셨나요?
‘잠이 보약이다’라는 말처럼, 숙면은 생기를 되찾기 위한 가장 좋은 영양제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건강식품을 챙겨 먹어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늘 피곤할 수
밖에 없다. 성인의 적절한 수면은 7~9시간이다. 더 짧아도, 더 길어도 건강에 별로 좋지 않다. 그런데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잠이 부족하다. 야근하는 직장인, 수험생, 그리고 스마트폰 등을 이용한 인터넷 사용 급증, 커피나 차 등 카페인 섭취 증가, 신체 활동 부족 등 사람들의 수면이 부족한 이유는 다양하다.
수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수면 부족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으로는 비만, 심혈관질환, ADHD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장애), 우울증, 교통사고 등이 있다. 밤을 새워서 공부하는
경우, 뇌의 해마가 활성화되지 않아 충분히 잠을 잤을 때보다 기억저장능력이 40% 정도 감소된다. 매일 4시간씩 자는 경우에는 성호르몬 등을 담당하는 생식계의 노화가 앞당겨지며 NK세포의 활동량이 무려 70%나 감소한다. NK세포는
자연살해세포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직접 죽이는 면역세포이다. 면역력과 관련되어 대장암, 유방암, 전립선암이 수면부족과 관련이 깊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면 불면증 극복을 위해서는 어떤 생활지침을 지켜야 할까? 우선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며 카페인, 니코틴, 알코올, 정신자극제 등 중추신경계를 활성화시키는 물질을 중단해야 한다. 낮 동안 적절하게 활동하며 저녁식사 후 텔레비전,
스마트폰, 게임 등 자극을 줄이고 독서처럼 적당한 정신적인 피로를 쌓을 수 있는
활동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야식은 먹지않고 적당한 스트레칭과 근육 이완이 가능한 운동을 하거나 잠들기 전에 20분 정도 따뜻한 물로 목욕하고 편안한 수면 환경을 유지하도록 하자. 잠을 그저 다음날 하루의 컨디션을 좌우하는 정도로만 치부하지 말고 인간의 생체 리듬이 인생의 3분의 1을 자도록 설계된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 수면은 질병이나 노화속도, 기분, 사고(思考)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하루 이틀 정도는 상관없지만 수면장애 시간이 길어질수록 삶의 질 또한 달라질 수 있다.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127:2).
Dr. 조희경 집사
신념 or 생각의 나태
신념이라는 단어는 대개 좋은 의미로 쓰인다. 굳게 믿는 마음, 변하지 않는 생각
과 가치 등을 표현하는 단어로, 한 사람이나 단체의 일관된 생각과 믿음을 좋게
표현하는데 쓰이곤 한다.
일반적으로는 개인이나 단체나 신념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 생각과 가치를 남에게 공유하고 실천하며 그것은 더욱 아름다워지고 발전해 나간다.
하지만 때론 그 신념이 바뀌고 변해야 할 때가 있다. 상황과 환경이 변했다면 말이다. 이미 주변 상황이 모두 바뀌고 예전에 가졌던 신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 신념을 고집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를 보고 한 유명한 철학자는 ‘신념을 가진 자를 달리 말하면 생각이 정지되어 있다는 것일 수 있다.
정신의 나태함이 신념을 만든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남들과 대중이 동조하고 따르는 생각과
가치를 만들고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먼저 이해해야 하고, 내가 가진 지식과 생각의 깊이를 늘려 나가야 한다. 그리고 변화하는 흐름을
내 생각 속에 반영하기 위해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내가 부지런하지 못하고 게을러 나를 개선하고 업그레이드해나가지 못한다면
내가 가진 생각과 가치는 더 이상 아름다운 신념이 아니다. 오히려 요즘 사회적인 문제 중 하나로 치부되는 꼰대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진리가 아닌 이상 세상 모든 지식과 가치는 변하고 발전한다. 그러므로 목사님
말씀처럼 성장하고 발전해야지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게으르고 나태한 생각을 내어 쫓고 무딘 철 연장 날을 부지런히 갈고 닦아, 지혜와 통찰로 무장한 성숙한 성도가 되자.
장명훈 집사
jjoshua@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