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인의 마음을 아는가!
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욥이 절규했던 것처럼, 앞으로 가도, 옆으로 가도, 뒤로가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절망하고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러나 어차피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보이지 않는 천국을 향하여 이 길을 나선 사람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으며,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하여도 우리가 처음 받은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며 천국을 향해 가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이다. 엘가나의 아내 한나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명문가의 안주인이었다. 그러나 다 가졌어도 딱 한 가지,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남편 엘가나의 총애를 받는 귀부인이었지만, 하나님이 성태치 못하게 하신 것
이다. 고대 부족국가 시절, 자녀를 생산치 못하는 여인은 존재 의의가 없었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시127:4~5)라고 하지 않던가. 아무리 남편의 사랑을 받고 재산이 넘쳐나면 무슨 소용인가? 무자하니 대적 브닌나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당했다. 격동하고 번민하던 한나는 여호와의 전에 올라 통곡으로 기도하며 서원한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만일 저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저를 생각하시고 잊지 아니하셔서 아들을 주신다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한나의 고통은 표면적으로는 자식이 없음이었지만, 더 근본적으로 한나가 괴로워했던 것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슬픔 때문이었다. 만일 한나의 기도가 오직 자녀 얻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시원찮은 엘리 제사장의 마지못한 축복기도에 그처럼 반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고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 원하노라.”는 엘리 제사장의 기도에 한나의 반응을 보라. 당장 어떤 응답을 받은 것도, 손에 잡은 것도 아니건만, 한나는 즉시 금식을 끝내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었다고 기록되어있다(삼상1:18).
사무엘상 2장은 하나님의 응답으로 얻은 아들 사무엘을 젖을 뗀 후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미로 가득하다. 한나가 그토록 황홀한 찬미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식을 얻은 기쁨 그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사실이었다. 자식만이 목적이었다면 아무리 서원했더라도 눈에 밟히는 자식, 이제 겨우 젖을 뗀 핏덩이를 어찌 떼어놓을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다. 한나의 찬양이 날마다 우리 삶 속에 울려 퍼져야 마땅하다. 눈에 보이는 일상에 일희일비하는 냄비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의리로 충만한 기쁨의 삶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한분으로 족한 삶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