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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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1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예수님의 옷자락

1051호 · 2020-05-31
겨자씨만한 믿음

마가복음에는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이 나온다. 혈루증은 만성 하혈증으로, 자궁 안에 종기가 생기거나 어떤 이상이 생겨 불규칙적으로 피가 흐르는 증세라고 한다. 그 여인은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느라 모든 재산을 썼으나 고치지 못하였다. 구약에서는 혈루증을 부정한 병이라고 해서 혈루증 걸린 사람은 물론이고 그 사람이 만지는 것도 모두 부정한 것으로 여겼다.

살아갈 아무 희망도 없고 죽음만을 바라보던 여인에게 어느 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들렸다. 여인은 죽음을 불사한 간절함으로 예수님께로 나아가 몰래 옷에 손을 대어 병 고침을 받았다.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나을 것이라는 믿음과 간절함이 그 여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여인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5:34).

삶 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오래된 쓴 뿌리들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분주하지만 아무런 이로움도 없이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이 혈루증 걸린 여인과 같다. 오래된 쓴 뿌리들을 제거하려면 믿음의 손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아야 한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은 사람이 그 혈루증 걸린 여인뿐이었겠는가. 하지만 그 여인만이 병 고침을 받은 것은 그 여인이 간절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 옷자락을 붙잡는 것처럼 믿음의 손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는 것이다. 절망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께로 나아가 간절함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자. 모든 절망을 딛고 일어나 주님의 충만한 은혜로 가득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김성일 집사

신앙논객

이제는 오히려 기대가 된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로 나라가 부도가 났을 때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중학생이었다. 뉴스를 통해 곤두박질치는 주가와 치솟는 환율 그래프를 보면서,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마냥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나라의 빚을 갚는데 써달라며 금 모으기 운동을 전개했다. 물론 모아진 금이 외환보유고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우리나라와 국민들이 빚을 갚고 구제금융 상태를 벗어나려는 의지가 있음을 전 세계에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고, 우리나라는 예상보다 빨리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008년, 증권사에서 일하던 당시 세계 5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증권사 지점 객장에선 연일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이제는 무슨 의미인지 아는 주가와 환율 그래프를 보면서 망연자실한 고객들을 상대했던 기억이 난다. 기라성 같은 금융사들과 몇몇 대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했고, 살아남은 기업들은 구조조정과 신규채용 감소 같은 강도 높은 자구책을 펼쳤다. 그 여파가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지만, 각 경제 지표들도 금융위기 이전 수준 내지는 그 이상으로 회복되면서 이제는 “그땐 그랬지.”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2020년, 코로나19로 촉발된 전 세계적인 대봉쇄(Great Lockdown)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수많은 나라들이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자국민을 살리고 보호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유독 이 상황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大韓民國)이다. 방역당국과 의료진, 그리고 전 국민의 헌신과 노력이 전 세계에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추락하던 경제지표는 빠르게 회복 중이며, 오히려 이 난국을 기회 삼아 마스크와 진단 키트뿐만 아니라 스포츠 중계권까지 수출하고 있다.

혹자는 ‘우리나라는 위기 극복의 DNA가 있다’고 말했다. 일제 치하 36년과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나라, 외국의 원조를 받던 입장에서 원조를 하는 입장으로 바뀐 유일한 나라, 교회가 세워진 지 100여 년 만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 이제는 오히려 기대가 된다. 역전의 명수이신 하나님이, 또 어떻게 이 나라를 들어 쓰실지.

신혁주 전도사

낮은 울타리

여호와께 맡기라

대학교에서 동아리 부회장을 맡았을 때의 일입니다. 새터민이 운영하는 식당과 함께 음식을 팔고 수익금을 기부하는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식당에 도움을 주며 기부도 하고, 탈북 과정의 실태를 알릴 수 있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그해 동아리에서 진행하는 가장 크고 의미 있는 행사였습니다.

그런데 행사를 2주 앞두고 두 가지의 큰 사건이 생겼습니다. 첫 번째는 학교 내에서 식중독이 퍼진 것입니다. 행사에서 팔려던 음식은 따뜻한 음식이었기 때문에 걱정하는 시선이 많아졌고, 참여율이 높을지도 미지수였습니다. 두 번째는 식당 측에서 행사를 함께하지 못하겠다고 통보한 것입니다. 해당 업체 없이 그 음식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행사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더군다나 기부하기로 한 단체와는 약속을 한 후라서 행사를 아예 안 할 수도 없었습니다. 제가 준비과정에서 놓친 것이 무엇인지, 왜 이 상황에 처하게 된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준비해놓은 모든 것을 엎고 망연자실한 저에게 크리스천이던 회장은 말했습니다. “언니, 우리가 너무 우리 힘으로만 하려고 했나봐. 하나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언 16장 3절이 떠올랐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학교 일이라고 하나님과 별개로 생각하며 나를 의지하고 나의 노력만 믿었던 저를 회개했습니다. 그러고 기도로 준비하면서 나아갔습니다. 그 후 하나님이 더 좋은 아이디어를 주셨고, 더 많은 수익금을 낼 수 있었습니다. 한 달 동안 준비했던 모든 것들을 넉넉히 2주 안에 마쳤고, 100명을 목표했던 저희는 약 250명의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가끔 기도하지 않아도 잘 되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하지 않고 쌓은 탑은 모래 위에 지은 탑과 같습니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다 무너지고 말지요. 하나님께 하나하나 물어보는 게 더 오래 걸리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 물어보고 가는 길이 곧 지름길입니다. ‘기도는 부도나지 않는다’는 목사님 말씀처럼, 문제가 생기기 전에 어떤 일이든 기도로 준비하고 나의 모든 행사를 하나님께 맡기며 나아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장수정

청춘, 그 아름다운 이름

통증 덕분에

여느 때와 같이 출근하려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오른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오늘은 무슨 뉴스가 있나 살펴보고 있는데 갑자기 등 쪽에서 찌릿,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정확히는 오른쪽 날갯죽지 아래. 그 부분이 아픈 건 처음이었죠. 응급 처치한다는 게 고작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옆 사람과 부딪히지 않을 정도로만 어깨를 돌려서 스트레칭 하는 거였습니다. 물론 그 정도로는 효과가 전혀 없었지요. 찌릿찌릿 저리는 날갯죽지가 신경 쓰여서 일도 제대로 못하고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후다닥 집으로 갔습니다.

날갯죽지 통증, 어깻죽지 결림, 날갯죽지 스트레칭, 어깨 운동 등등 유튜브에 검색해서 트레이너가 하라는 대로 따라했습니다. 사십 여분 정도 스트레칭을 하자 통증이 가라앉았고 편하게 잠자리에 들었지요. 다음 날 아침에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출근길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보는 순간, 또 오른쪽 날갯죽지 아래가 찌릿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팠다가 스트레칭하면 풀렸다가, 또 아팠다가 스트레칭하면 풀렸다가. 일주일 정도 반복된 것 같네요. 한 번에 나았다면 꾸준히 못했을 스트레칭, 덕분에 매일매일 했습니다. 퇴근 후에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일어나자마자 이십 분, 잠자기 전에 이십 분씩 했고, 일하다가 중간 중간 빈 회의실에 가서 짧게 몇 분씩 어깨를 움직여주었지요.

저는 버섯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한번 자리에 앉으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자세까지 구부정했고요. 그로 인해 어깨가 항상 뻐근하고 불편했는데, 현대인의 고질병이라 치부하며 그냥 살았습니다. 하지만 날갯죽지 통증은 무시하고 넘기기엔 너무 아파서 스트레칭을 안 하곤 못 배기겠더라고요. 날갯죽지가 아픈 건 어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조언에, 어깨 위주로 하던 스트레칭을 골반, 허리, 무릎, 허벅지, 전신을 움직이는 스트레칭으로 넓혀갔습니다.

운동을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난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자동으로 요가 매트를 찾아갑니다. 좋은 습관이 몸에 붙은 거죠. 그래서인지 날갯죽지가 다시 아픈 적은 없습니다. 간혹 통증의 조짐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날엔 더 꼼꼼하게 몸을 풀어줍니다. 그 덕에 만성적으로 뻐근하던 어깨도 전보다 나아졌고, 자세가 좋아졌다는 칭찬도 들었습니다.

하루는 도서관 잡지 코너에서 “통증의 세계”라는 헤드라인이 크게 찍힌 잡지를 보았습니다. 평상시라면 관심 없을 주제였지만 그때는 한창 날갯죽지로 고생하던 터라 재빨리 잡지를 꺼내 읽었지요. 통증을 느끼는 능력은 일종의 선물이라고 글쓴이는 말했습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뜨거운 난로를 건드려도 반사적으로 손을 움츠리지 않을 테고, 깨진 유리를 맨발로 밟는 걸 꺼리지 않겠죠. 즉각적으로 통증을 느끼는 감각과 통증을 경험했던 기억을 통해 우리 몸은 다칠 위험을 최소화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통증을 느끼도록 진화한 이유는, 통증이 자기보호에 매우 중요한 경보장치가 되기 때문이라고요. 통증을 느낄 수 있음에 새삼 감사했습니다. 더 큰 화를 당하지 말라고 몸이 보내는 신호니까요.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람을 통해, 꿈을 통해, 말씀을 통해, 때로는 아픔을 통해 전달되는 신호, 무시하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육체도 영혼도 아무 탈 없이 건강하길 소원합니다.

신은혜

dopal0203@naver.com

치우치지 않는 저울

더딜지언정

새로운 군단장님이 부임하면서, 강한 육군을 만들기 위해서는 간부들부터 기본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먼저 20~30대 장교와 부사관들에게 강인한 체력을 키우라고 명령하고, 강도 높은 체력 측정을 예고하며 날짜를 통보했습니다. 합격 기준은 완전군장을 한 채로 장거리를 달려서 정한 시간 안에 통과하는 것인데, 그 기준이 간부들 중 가장 어렸던 저에게도 버거웠습니다. 측정 결과는 부대별로 군단장님께 보고되기 때문에, 부대장님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매일 함께 모여 대열을 갖추고 측정 코스를 따라 연습했습니다. 대열의 맨 뒷자리는 페이스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렵고, 뒤에서 밀어주거나 독려하는 역할까지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제일 힘이 들었습니다. 평소 운동을 즐겨 했고, 가장 어렸기에 제가 늘 그 자리에 섰습니다. 측정일 즈음에는 모두의 체력이 많이 향상되어 있었습니다.

측정일이 되었습니다. 전날 먹은 음식이 잘못되었는지 구토를 하고, 잠을 이루지 못한데다가 식사를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응급실에 가서 수액을 맞고,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크리스천이라고 이미 알려져 있던 터라, 하나님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야 했고, 아프다는 핑계로 불참하여 부대장님께 부담을 주기도 싫었습니다. 연습했던 대로 대열에서 이탈하지만 않으면 되는 일이니 통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출발하자마자 언덕을 넘어가는데, 평소와 다르게 힘겨웠습니다. 3분의 1 지점에 다다르자,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결국 대열에서 제일 먼저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대열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멘탈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평소 체력에는 자신 있었던 터라, 처음 겪는 체력적 한계에 더욱 절망했습니다. ‘이제 끝이구나.’ 다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어깨에 멘 군장과 소총, 허리에 두른 탄띠, 심지어 전투화까지 너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맨 뒷자리에 있다가 이탈한 저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차라리 아프다고 솔직히 얘기하고 시작하지 말걸.’ 하면서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체력 측정이 무슨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장교가 어떤 테스트가 되었든 불합격하는 것은 정말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포기하고 싶으면서도 절박했고 간절했습니다. 너무 숨이 차서 다른 말은 할 수도 없고, 오직 “하나님, 하나님!” 하면서 도움을 구했습니다. 순간 머릿속에 번뜩이듯 총회장 목사님의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왜 포기해! 포기는 자살행위야! 나는 더딜지언정 뒤로 물러간 적이 없어!”

그때부터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홀로 뛰었습니다. 개천을 지나고, 숲길에 다다르자, 저 멀리 동료 3명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마치 안개 속에서 빛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곳까지만 따라붙으면 통과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습니다. 없는 힘까지 다 짜내어 가까스로 따라붙었습니다. 마침내 기준 시간 안에 목표 지점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응급실에 다녀온 것을 알았던 동료들이 그 사실을 여기저기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가장 늦게 통과하고도 수액을 맞고 뛴 군인정신이 투철한 장교라고 생각지 않은 칭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군인정신이 아니라, ‘포기는 자살행위’라고 외치시는 총회장 목사님의 ‘기필코 정신’이 더 맞는 얘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 소망하는 꿈이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바라는 방법으로 평탄하게 이루어지길 소원하며 달려가지만, 더디 이루어짐으로 낙심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날 머릿속에 울렸던 총회장 목사님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다시 일어섭니다. 아브라함이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약속을 받은 것처럼(창15:1~6, 히6:13~15), 더딜지언정 뒤로 물러가지 않고 꿋꿋이 가다 보면, 더딤 속에 한없이 낮아져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습관(신8:2~3)과 인내 끝에 단련된 인격(롬5:4)을 갖추게 하시고, 결국은 제일 좋은 하나님의 때에, 가장 완벽한 하나님의 방법으로 멋진 추억담을 만들어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정명관 집사

vic-777@naver.com

빛이 되리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여호수아 18장 3절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라는 내용이 나온다.

하나님이 이미 너에게 그 땅을 주었으니 더는 지체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 네 땅을 점령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 19장 47절에는 단 자손 지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단 자손의 경계는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셈과 싸워 그것을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하였음이라.”

단 자손은 제비 뽑아 받은 그들의 영토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치고 나가 그의 영토를 더욱 확장했다고 말한다.

인생 살다 보면 새로운 도전 앞에 주저할 때가 있다. 이 일을 언제 시작해야 하는지, 내가 과연 철저히 준비되었는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두려움에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멈춰서 있을 때가 많다.

그러나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언젠간 박차고 일어나 내게 주신 비전, 목표, 사명을 향해 뛰어야 한다. 100% 준비될 때를 기다리지 말고, 7~80% 준비가 되었으면 일어나 도전하자. 부족한 부분은 부딪히며 차차 개선해 나가자.

도전의 두려움은 잠시일 뿐이다. 그 초기 단계만 뛰어넘으면 두려움을 이겨냈다는 만족감과 익숙해짐에 따른 안정감이 곧 찾아온다. 언제까지 지체하겠는가? 하나님이 주신 내 땅이 바로 내 눈앞에 있다. 스스로 자문해보자. 단 자손 지파처럼 그 땅을 정복하고 확장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지 말이다.

장명훈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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