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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1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오해는 믿음이 떨어질 때 싹튼다(삼상18:5~11)

1051호 · 2020-05-31

심방 길에 어린아이가 사과를 두 개 들고 있길래, 장난삼아 “얘야, 사과 하나 나에게 줄 수 있겠니?” 했더니, 갑자기 아이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더니, 왼손에 들고 있던 사과까지 한 입 베어 먹습니다. 이를 본 엄마가 당황해서 화를 내며 “너 왜 안 하던 짓을 해? 어른이 달라고 하면 드려야지.” 했더니 아이가 ‘으앙’ 하고 울면서 “그게 아니야. 엄마가 남에게 줄 때는 좋은 것으로 주라고 해서 어느 것이 맛있는지 먹어보고 주려고 했지.” 했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오해했네요.

오해(誤解)는 잘못 풀었거나 잘못 알았다는 뜻으로,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자고로 오해가 길어지면 원수가 되니까요. 그렇다면 왜 오해가 생길까요? 한마디로 믿음이 떨어져서입니다. 못 믿으니까 오해가 생기는 겁니다.

어느 날 남편이 와이셔츠에 립스틱을 묻히고 들어왔다고 칩시다. 남편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전철이 복잡했나 보네. 이런 게 다 묻고.’ 하고 세탁하겠지만, 남편을 못 믿거나 시원찮게 믿는다면 “어디 다녀놨어? 어떤 여자야?” 하며 대대적인 부부싸움이 일어날 겁니다. 상대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면 설령 오이밭에서 신발 끈을 묶어도 의심하지 않겠지만, 믿음이 없으면 ‘오이 몇 개 없어졌겠네.’ 하고 오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골리앗을 무찌르고 승리한 다윗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습니다. 여인들은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18:7)라며 다윗을 대대적으로 칭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들은 사울은 불쾌했습니다. 이런 사울의 마음에는 오해가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 이놈이 내 자리를 넘보는 거 아냐?’ 하며 다윗을 오해했습니다.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삼상18:8). 왜 그런 오해가 싹텄을까요? 믿음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고, 결과는 여러분이 아는 대로 비참한 최후로 막을 내립니다.

어느 장로가 제게 와서 “목사님, 누가 그러던데 목사님이 저에 대해 이러 저렇게 안 좋게 말씀하셨다면서요? 굉장히 섭섭합니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이봐. 자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를 못 믿는다는 증거야. 다이너마이트로 바위를 어떻게 깨는 줄 아나? 다이너마이트에 연결된 선에 불을 붙이면 그 선을 타고 들어가 그것이 터져서 바위를 깨는 거야. 자네 안에 의심이나 오해의 소지가 있었으니까 그 말이 곧이곧대로 들린 것 아니겠나. 나를 그렇게 몰라?”라고 따끔한 일침을 놔주었습니다.

열왕기상 22장에도 오해를 해서 비참한 결과를 낳은 사례가 있습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이 길르앗 라못을 놓고 싸움을 하려고 할 때에 시드기야를 비롯한 400명의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전쟁을 하면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러자 여호사밧이 아합에게 더 물어본 선지자가 없느냐고 묻자, 왕은 미가야라는 선지자가 있긴 한데 그 사람은 한 번도 나에게 좋은 말을 안 해준다고 했습니다. 오해한 거죠. 미가야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뿐인데 아합은 미가야가 자기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 그리 한 줄로 오해한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미가야는 아합에게 이번에도 전쟁에 나가면 죽을 것이니 나가지 말라고 합니다. 아합은 ‘거봐라. 지금도 그러지 않느냐?’며 그를 감옥에 가두고 전장에 나갔습니다. 결과요? 당연히 죽었지요.

이렇게 사람에 대한 믿음이 떨어져 오해를 낳기도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떨어져 오해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시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냐?’며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께 따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건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입니다(롬4:17). 또한 그분은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려고 작정하신 분입니다. 그런 분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아브라함이 왜 복을 받았습니까? 바로 하나님에 대해 오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백세가 되어 하나님께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하나님이 다시 내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번제물로 내어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쯤 되면 대부분이 하나님을 무서운 분이나 인정도 없으신 분이라고 오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올랐습니다. 왜 아브라함은 충분히 하나님을 오해할 수 있었을 상황인데도 묵묵히 그 말씀을 따랐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백세에 아들을 주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4:20~22).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두 종류의 짐승이 살고 있습니다. 긍정과 부정이라는 두 짐승, 선과 악이라는 두 짐승, 믿음과 불신이라는 두 짐승입니다. 이 둘은 약육강식의 관계인지라 어느 한쪽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이길까요? 그것은 당신이 어느 쪽에 먹이를 많이 주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긍정에 더 먹이를 주면 긍정이 부정을 이기지만, 부정에 먹이를 더 주면 부정이 이기고, 선에게 먹이를 더 주면 선이 이기게 되나 악에게 먹이를 많이 주면 악이 선을 이게 됩니다. 하나님이 당신 앞에 생사화복을 펼쳐놓으셨습니다(신30:15). 그 선택은 당신이 하는 겁니다. 긍정과 선과 믿음을 택한다면 생명과 복이 오겠지만, 부정과 악과 불신에게 먹이를 주면 죽음과 화가 오게 될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만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선택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의지를 초월하지 않으시는 하나님도 답답하시나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오해하는 일일랑 하지 말고 먼저 당신의 마음을 지키세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제 목회 36년은 그야말로 눈 덮인 산야요, 물 없는 사막 같은 길이었으나 저는 한 번도 하나님을 오해한 적이 없습니다. ‘나를 버렸나봐.’ 이런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이건 나를 강하게 하려는 훈련이야. 이건 과정에 불과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거야.’ 이렇게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하나님이 전 세계에 명성을 드높여주셨고, 오늘의 예수중심교단을 이루어주셨습니다. 믿음과 긍정에 절대적으로 먹이를 준 결과입니다.

우리는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돌감람나무 같은 존재입니다. 자고로 아담의 죄로 인해 우리 속에는 부정과 악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만 이제 예수로 인해 변화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참감람나무에 꼭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의 사람, 긍정적인 사람, 선을 추구하는 사람이 됩니다. 참감람나무이신 예수에게서 떨어지면 바로 예전 습성이 나와 부정과 악과 불신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정말 사랑하십니다.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당신의 아들을 주사 우리를 죄에서 건지셨겠습니까? 얼마나 사랑하시면 성령을 보내사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겠습니까? 그런 분이 지금 당신이 구한 것을 주지 않는 것은 때가 아니기 때문일 거고, 그것이 옳지 않아서이고, 하나님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하나님이 무능해서도,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서도, 당신을 버려서도 아닙니다. 그러니 오해하지 마세요. 당신의 믿음이 확고해지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알게 될 것이고, 반드시 축복과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6). 할렐루야!

남을 탓하지 말고

먼저 나를 탓하라

오해가 길어지면

원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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