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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남을 사랑하면 내가 사랑을 받는다(요15:1~12)

1050호 · 2020-05-24

우리 교회에는 건설업을 하는 장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어느 장로는 하청업자에게 일을 줄 때 절대 가격을 많이 깎지 않을뿐더러 하청업체 사장이 와서 점심을 사겠다고 하면 “여러분들 덕분에 내가 돈을 벌었는데 밥은 내가 사야죠. 우리 함께 잘 살아봅시다.” 하며 그들을 격려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청업체 사장들이 감동해서 모든 일에 하자 없이 더 잘해준다고 합니다. 또 어느 장로도 분양이 다 끝나자 협력업체 사장들을 불러 식사를 대접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고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잘 가르쳤구나.” 하며 뿌듯함을 느낍니다.

성경 말씀 중 황금률(黃金律)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라는 말씀입니다. 남에게 악을 주면 내가 악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남에게 사랑을 주면 나에게도 사랑이 온다는 말씀이지요. 하청업체를 제대로 대우해주니까 불량품이 안 나오는 겁니다. ‘하청업체는 죽거나 말거나 나만 잘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사업을 하면 그 대가는 자기에게로 고스란히 돌아오게 됩니다. 어떻게 돌아오느냐 하면,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는 말씀에 근거해서 옵니다. 하청업체에게 10을 손해 보게 하면 나에게는 100 이상의 손해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청업체에게 10만큼 이익을 주면 그들로 인해 나에게 100 이상의 이익이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겁니다. 그래서 하청업체가 아니라 협력업체라는 표현이 옳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도 손과 발도 몸의 일부분이요, 손이나 발 어느 한 곳만 아파도 온 몸이 아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 지체가 하나라는 뜻입니다.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고전12:19~20).

나는 노사관계나 협력업체와의 관계를 가마를 탄 사람과 가마꾼에 비교합니다. 가마를 타는 사람이 갑이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을이라고 생각한 가마꾼이 가마를 뒤집어버리면 갑은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황들이 요즘 매스컴을 통해 자주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서로는 갑을의 관계가 아니라 협력하는 사이요, 상생하는 관계여야 할 것입니다. 가마 타는 사람이 가마꾼을 생각하고 받들어주는 것이 곧 자기를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주위 사람이 행복하면 내가 행복해지는 거잖아요. 내 이웃이 잘 되면 떡이라고 얻어먹게 되잖아요. 그러면 그곳이 천국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노사 간의 상생, 협력업체와의 상생, 고객과의 상생, 투자자와의 상생을 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이웃 간에도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내가 편하게 잘 살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3:34).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합니다. 성경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는 말씀으로 압축됩니다. 먼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요, 내가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도 직접적으로 말씀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면 끝난 것 아닙니까? 솔로몬 왕의 사랑을 입은 게달의 장막 같은 여인도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데요. 그리고 또 말씀하시길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고전3:21)고 하셨습니다.

‘돈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 힘 좋은 사람을 먼저 의지하면 나도 너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돈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 힘 좋은 사람, 학벌 좋은 사람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의 생명을 한순간에 취할 수 있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누굴 먼저 의지하고, 누굴 더 사랑해야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146:

1~5)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다윗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마저 하고 가겠습니다. 다윗은 어디를 가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하며 그분이 자기 인생의 전부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윗을 향하여 ‘그가 내 마음에 합한 자’(행13:22)라고 하셨고, 그가 늙도록 존귀하게 하셨으며, 그 계보를 따라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어땠습니까? 자신의 명예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지 않았습니까?

저는 ‘예수님 찬양’이라는 찬송곡 하나 가지고 전 세계를 다닙니다. 그리고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하며 그분을 먼저 찬양합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성령으로 저와 함께 역사하사 따르는 표적을 나타내시며, 저를 유명한 자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럼요, 하나님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자랑하고, 내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당당히 밝힐 때 하나님도 나를 천사 앞에서도 자랑하십니다(마10:32~33). 그러나 하나님을 부끄러워할 때는 하나님도 그런 자를 부끄러워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눅9:26). 부끄러워할 뿐 아니라 그런 자가 재앙을 만날 때에 웃으실 것이며, 그들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비웃으실 것이며, 그들이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찾아도 만나주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잠1:25~29).

얼마 전, 어느 장로의 기공 예배에서 저는 동석한 장로의 아들에게 “어딜 가든 하나님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한다고 시인해라. 코로나19 때문에 잘 안 되면 어떡하나 걱정하지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라.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너의 출입은 물론 폐부까지 꿰뚫고 계시단다(시139:1~4).”라고 말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며 하나님을 높이고 전적으로 의지하면 어찌 하나님이 감동하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주일에 쉬거나 놀러 가지 않고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봉사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심하게 보일 겁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지력자나 재력가를 찾지 않고 골방에 앉아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우리가 답답할 겁니다. 더러 그들은 “~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시22:7~8)하며 우리를 비웃을 겁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하나님 우선이요,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자는 신명기 28장의 나가도 들어가도 복이요, 만지는 것이 다 복이요, 만물과 만인 위에 뛰어난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세상 풍조를 따라 살지 말고,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들이 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잠11:25)는 말씀을 붙잡고, 남을 사랑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임을 알고, 다윗이 그의 용사를 사랑한 것 같이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는 자가 됩시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할렐루야!

인생은 만드는 것이다

선택은 너에게 달려 있다

샘의 근원을 파면

절대 목마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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