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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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8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창조의 능력

1048호 · 2020-04-26
아름다운 인생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7).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믿지만, 반대로 흙으로 사람을 지었다는 말씀은 잘 믿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흙을 준다면 흙장난으로 끝나겠지만, 손재주가 좋은 사람에게 준다면 그릇도 만들어낼 수 있다. 전문가들에게 준다면 반도체를 만들어낼 수 있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다.

과학자들이 분석한 결과 우리 몸의 성분과 흙의 성분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같은 흙이지만 만든 사람의 지혜와 능력에 따라 결과는 다르다. 하나님만이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야만 우리가 하나님이 전지전능한 하나님임을 생각할 수 있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우리의 상식 밖에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창2:21). 이 말씀을 보고 독실한 크리스천인 제임스 심슨(James Young Simpson)이라는 의사가 연구하여 1853년 처음으로 마취 기술을 개발하게 되었고, 성형외과 수술 중 갈비뼈를 이용한 아담의 수술(Adam’s Operation)이 있다. 실제로 사람의 206개의 뼈 중 재생능력을 가지고 있는 뼈는 극히 일부인데, 그중에서도 갈비뼈가 재생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으심을 받았다(창1:27). 고로 우리에게 내재 되어있는 하나님의 형상, 창조의 능력을 개발시켜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창조력을 주셨지 한계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은성

신앙논객

모를 줄 알았지?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것은, 바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다. 텔레그램은 익명으로 비밀대화가 가능한 메신저 프로그램인데, 그런 특징을 이용하여 미성년자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을 속이고 그들을 협박하여 성적착취를 일삼은 범인이 검거된 것이다. 그와 더불어 그 일에 공조했거나 거액의 돈을 내고 회원으로 가입했던 사람들의 실명과 직업을 비롯한 정체가 수사기관과 언론을 통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놀라운 점은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삶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공범 중에는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주범이라는 사람은 대학시절 학보사 편집국장을 했었고, 한 NGO단체에서 팀장으로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살인자요, 폭행자요, 잔학무도한 범죄자였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던 걸까. 익명으로 이뤄지는 비밀대화니까, 가상화폐로 거래했으니까 흔적이 남지 않고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다.

시편 139편은 우리의 모든 말과 생각과 행동을 감찰(監察)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한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노래한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시139:7).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범했을 때,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나무 사이로 숨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르셨을까. 선악과를 따먹은 것도, 당신의 낯을 피해 숨은 것도 이미 다 알고 계셨다.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한 일을 다 알고 계신다. 정말 소름 끼치는 일 아닌가? 우리의 추악한 어둠 속 모습들을 다 아신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참으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푸심에 감사할 뿐이다.

우리는 그날 그 시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심판대 위에 서야 한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든 일생을 비디오처럼 돌려보게 될 것이다. 혹시라도 지금 아무도 모르고 보는 사람 없다고 죄악 가운데 머물러 있다면, 속히 회개하고 돌이키라. 하나님은 다 아신다.

신혁주 전도사

오늘의 메시지

외롭고 고독한 길

목사 안수식 때 목사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너희들 이제 좋은 시절 다 갔다.’ 하셨다. 고생길이 열렸다는 뜻일 텐데, 속으로는 ‘가시밭길만 있겠습니까? 꽃길도 있겠죠.’ 생각했다. 나는 그리되길 원했다. 그러나 웬걸.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천리 타국 임지에 와서 생각지 못한 처음 겪게 되는 어려움들을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 기도와 말씀, 찬양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저 응답하심을 기다리며 힘든 시간을 버텨내었다.

그 와중에도 손님들이 서울에서 방문하였다. 이초석 목사님을 따른다는 타 교단 목사와 성도들이었다. 교회에서 숙식을 제공하며 같이 기도하고 예배드리니 은혜로웠다. 사건이 터진 후에나 안 사실이지만, 30년 된 정신병 환자를 두고 한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한국에서는 어디에 버리든 찾아오니 일본 땅에 버린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지체가 불편한 맹인 성도 집에 맡긴 것이다. 가위를 들고 맹인 성도를 죽인다고 난동을 부려 일본 경찰 셋이 출동했다. 맹인 성도 집에 정신병 환자를 두고 간 것이 이해할 수 없었지만 더 이상 머물 곳이 없으니 교회로 데려왔다. 낮 시간에는 돌봐주는 집사님이 계셔서 조금 낫지만, 저녁 시간에는 텅 빈 교회에 나와 둘이 남게 되니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밤새 괴성을 지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니 멀쩡한 내 머리도 이상해질 정도다. 오죽하면 버리고 갔을까. 혼잣말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이 환자가 결혼을 못하고 남자로 인해 큰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과 남자를 극히 혐오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밤에 온전히 잠이 들 수가 없었다. 언제 칼을 들고 설칠지. 문을 열고 나가버리면 찾기도 힘드니 초긴장 상태였다. 한번은 지바역 인근에서 발견하여 데려오려 하자 주먹과 지팡이를 휘둘러 얻어맞았다. 예전에 자살하려 했는지 3층에서 뛰어내려 오른쪽 다리가 골절된 상태라 걷기도 힘들어한다. 간신히 데려와도 걱정은 가시지 않는다. 도무지 제정신을 차려야 귀신을 쫓든지 할 텐데 폭력적이기까지 하니 감당불가다. 나보고 회개하란다. 무엇 때문이냐 하니 강간 폭행 살인한 죄를 회개하라는 것이다. 한이 맺힌 대상이 그런 남자였는지 나에 대한 적개심이 사라지지 않으니 부딪힘을 피하는 수밖에. 이래저래 기도로 풀어야 할 일이 쌓인다. 내가 쳐다보기만 해도 싸우려고 덤빈다. 귀신을 쫓으려고 째려본다고 한다. 하긴 30년 동안 어딘 안 가봤을까. 얼마나 많은 의사, 무당, 목사를 만났을까. 내 방문 앞에서 계속 중얼거려 방에 들어가라 하니 주먹으로 가슴팍을 친다. 손등도 얻어맞았는데 야무지다. 목사라는 게 정신병자 하나 컨트롤 못하냐 비웃는다. 대학도 못 나오고 신학 공부도 제대로 못한 게 목사라고 폼 잡냐고 한다. 일일이 말대답하기도 우스운 일이니 어쩔 수가 없다. 서울대 지리학과 출신이란다. 재색을 겸비한 인재였을 텐데. 참 안쓰러운 일이다. 기도밖에는. 24시간 찬양과 영상으로 누그러뜨리고자 했다. 자극을 주지 않으려 조심했다. 저녁 시간에는 내 방문을 잠그고 참고 지냈다. 슈퍼에서 장보고 돌아오는데 초콜릿을 그 여자에게 선물로 주라는 내면의 음성이 있었다. 고급이라 아까운 마음이 있었지만 돌아와 초콜릿을 건네주니 얼굴이 온통 환희에 찼다. ‘내가 그렇게 나쁘게 했는데 이런 걸 주세요?’ 감격해했다. 더 이상 나는 강간범 살인자가 아니다. 마음의 빗장을 푼 것이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 마주 앉아 밥도 잘 먹는다. 뭐라 중얼대는지 즐겁다. 코로나 때문에 심각한데 침을 튀기며 밥을 먹는다. ‘주님. 이러다 코로나로 죽어도 순교지요?’ 웃으며 같이 식사했다.

53세 몸과 마음이 다 망가진 여자가 어린아이처럼 귀엽게 보인다. 주님, 감사합니다.

어제 저녁엔 성경책을 들고 내 앞에 앉았다. ‘나는 서울대는 못 나왔어도 성경은 너보다 잘 아니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했다. “지금 저를 위해 어떤 성경 구절이 떠오르세요?” 한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고 하니 좋아한다.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내 책에 축복의 글을 써서 주었다. 프로필을 훑어보더니 ‘어? 공부도 했네?’ 하며 즐거워한다. 둘이서 목사님 영상을 보며 예배드렸다. 찬송을 따라 하며 춤을 춘다. 감격이다. 자잘한 어려움, 시험 따위는 기억나지도 않는다. 이런 감격 때문에 외롭고 고독한 길 갈 수 있겠지.

나중에 주의 종을 돕게 치유하여 주소서. 간증하며 주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온전하게 하여 주소서. 기도 쉬지 않게 하여 주소서. 그저 푯대만을 향해 달려갈 뿐. 뒤돌아보지 않겠습니다. 저를 받아 주소서. 눈앞에 천국이 있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당할 만한 시련만을 허락하심을 알게 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함께해 주시니 외롭지도 고독하지도 않습니다.

내일은 또 뭐를 사다주면 이 아이가 좋아할까. 퇴근길 딸을 둔 아빠의 마음으로 즐겁다.

이광주 목사

leekjlkj@naver.com

생활 속의 잠언

주님께서 주신 인생의 과제

한국예루살렘교회(현 예수중심교회)에 첫발을 딛고 삼십여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인생의 과제가 있다. 그건 가족의 구원이다.

가족들이 온전한 주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참으로 긴긴 시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했다. 그러나 가족의 구원은 여전히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다. 왜 가족구원의 과제는 이토록 긴 세월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후 사십 년의 광야 생활을 한 것처럼, 가족을 위한 나의 기도도 광야 기도로 비고 돌고 비고 돌고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라면 전심과 진심의 부족으로 주님을 부르는 나의 기도 소리가 주님께 닿지 않는 것인지, 또 그것이 아니라면 자고할까 봐 주님께서 주신 아픔의 과제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태껏 살면서 주님께 받은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응답과 은혜를 기억하면 지금 고통 속에 부르짖는 기도도 주님께서는 반드시 듣고 답을 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맹인 바디매오가 마음을 다해 주님을 불러 세웠던 것처럼 처절하게 주님께서 돌아봐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는 기도를 하고 있다. 다시 무릎에 힘을 올리고 주님께 인생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내와 지혜와 진실됨과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성령의 충만함을 위한 간구의 기도를 드려봐야 할 것 같다.

요즘 깨달은 것은 기도도 계속해야 하겠지만, 나의 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마음의 높이를 맞추고 시선의 높이를 맞추면서 그들의 곳으로 낮아지고 낮아져야 할 것 같다. 내세울 수 있는 권위나 가르치는 손짓보다는 함께 한자리에서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키를 낮추고 조절하면 될 것 같다. 진실로 어려운 일이지만 그 길고 긴 시간 과제를 해결 못한 건 순전히 하늘만 바라보는 나의 교만함 때문임을 고백한다.

“주님, 제게 그들과 같은 높이의 사람이 되어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낮은 자 되기를 먼저 기도하겠습니다. 오늘도 기도로 다시 한 번 인생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심에 모든 영광과 감사를 주님께 드립니다.”

오자유 집사

lovelyactor@naver.com

울림있는 삶

욕구 충족

올해 1월에 신정과 구정이 맞물려 있어서 고객들이 외식업체에 지갑을 좀처럼 열지 않는 을씨년스런 달이었다. 많은 음식점들이 저조한 주문 수를 보였고, 우리 가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매년 명절 특수를 누렸던지라 올해도 설 연휴를 통해 매출 대역전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배달 대행업체들이 연합하여 설날 당일 긴 시간 휴무를 설정하는 바람에 많은 업소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일제히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다. 평소 예의 바르고 성실한 배달기사들을 눈여겨보았던 터라 그들에게 욕구충족을 시켜주는 고액의 임금을 제시하며 베테랑 기사를 영입했다. 그러자 앞 다퉈 서로 하려는 웃지 못 할 양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드디어 설날 당일 어플 프로그램에 노출된 2%의 업소가 되어 거의 모든 음식 주문을 독점할 수 있었다. 쏟아질 주문량에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였고 떨려오는 마음을 다잡으며 ‘할 수 있다’를 되뇌며 10분당 주문 1건씩 배달완료를 시키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리고 한때 큰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취업이 어렵다’, ‘직원 구하기가 힘들다’며 최저 임금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어오지만 나는 항상 최저 임금을 웃도는 급여로 직원들을 관리하였었다. 그러면 그들은 열과 성을 다해 맡은 자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전7:28).

상대의 장점을 칭찬하고 욕구를 충족시켜주자. 그러면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을 것이며 나 또한 곧 그 일천 여인 중에 하나가 되어 있지 않을까.

추성숙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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