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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6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카타콤 사람들처럼…

1046호 · 2020-03-15
세상을 보는 창

기독교가 로마에 처음 들어갔을 때 수많은 핍박과 박해를 받았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기독교인들이 사람의 피를 먹는다는 것이다. 성찬식 때 포도주를 먹는 것을 보고 반대자들이 피를 먹는다는 이유를 달아 박해의 도구로 이용한 것이다. 이로 인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당했다. 그래서 성도들은 로마 시내의 한복판에 땅굴을 파고 들어가 숨었다. 그 굴이 바로 로마의 지하 공동묘지 카타콤이다.

그 무렵 로마시에 염병이라는 전염병이 돌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로마 시내 길거리 곳곳에 죽은 시체로 너부러져 있었으나 누구도 그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시체에 손을 대면 전염되어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 시내는 시체가 거리마다 쌓여있었고 시체 썩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한밤중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하고 아침이면 사라지는 것이다. 곧 로마 시내는 시체가 모두 치워지고 깨끗하게 되자 로마는 고관으로부터 일반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궁금증이 더해갔다. 도대체 검정 옷을 입은 저들은 누구일까? 로마 정부에서 자세히 알아보니 카타콤으로 숨어 들어갔던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래서 기독교에 대한 오해가 풀렸고, 기독교를 핍박하는 대신에 칭송하기 시작했다. 그 후에 기독교가 로마의 종교로 공인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시신을 수습한 성도들 중에 단 한 사람도 염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경에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라는 말씀이 기독인들에게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은 그리스도인의 행함에서 나타나야 한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세상에 염병이 돌거든, 이 전에 와서 기도하면 들어 갚아주시옵소서”(왕상8:37~40).

지금 대한민국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무차별 공격으로 총체적 몸살을 앓고 있다. 재난이 찾아오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은 어두워지고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고난과 어려움의 시대일수록 기독인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는 기회다.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와 세상에 빛을 발할 때이다.

이정금 전도사

jungkm@nate.com

오늘의 메시지

이것도 다 지나가리라

다윗 왕이 어느 날 궁중의 세공장을 불러 자신을 기리는 아름다운 반지 하나를 만들라고 지시하며 “반지에는 내가 승리를 거두고 너무 기쁠 때에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절망에 빠지고 시련에 처했을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넣어라.”고 주문했다. 글귀 때문에 며칠을 끙끙대던 세공장은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갔다. 세공장의 말을 들은 솔로몬은 대답했다. “이것도 곧 지나가리라.”

지금 전국과 전 세계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다. 그러나 이 사태도 곧 지나갈 것이다. 극도의 공포나 두려움은 면역력을 떨어뜨린다고 의사들도 말한다. 내가 해야 하는 조심스런 행동들은 철저히 지키겠지만, 근본 마음에는 하나님의 평강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란 주님이 내 안에 영원히 살아계심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그러니 이제 불안에 떨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자. 하나님은 재앙과 온역, 질병 등의 상황에서 기도하면 들으시고 사유하신다고 약속하신다(대하6:28~30). 또한 극한 염병에서 건지시며(시91:3),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으며(막16:18), 모든 질병에서 치료하는 하나님(출15:26)이시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말라(시23:4)고 하신다.

지금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를 생각하며 신앙인으로서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눅13:1~5).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마침내, 기필코 깨닫는 자에게 화가 복이 되는 역사를 이루실 것이다.

김상욱 목사

ksw9669@hanmail.net

낮은 울타리

기름을 준비해야 할 때

코로나19 사태가 생활의 많은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학교는 개강을 미뤘고, 직장인들은 재택근무를 실행했습니다. 우리 교단도 지혜롭게 재난을 비켜가기 위해 영상예배를 드리고 다중 모임을 자제하는 등 정부 지침에 따르고 있습니다. 성전 안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드리던 예배는 소규모로, 혹은 가족 단위로 드려지고, 공식적인 기도 모임은 잠시 자유화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도를 하지 않아도, 예배시간에 다른 행동을 해도 저를 지켜볼 사람이 없어진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우리를 지켜보시는 상황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공식모임이 없는 한 주 동안 기도시간이 평소보다 줄었습니다. 코로나를 핑계로 기도처에 가지 않고 집에서 기도한다고 하면서 게으름에 진 것입니다. 이런 제 모습을 보고 지금이야말로 진짜 나의 신앙을 체크하는 때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들의 시선 없이 하나님과 얼마나 소통하고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지 제 민낯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처음으로 주일예배를 영상예배로 대체했을 때 목사님은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태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메시지뿐만이 아니라 예배를 드릴 수 없고, 함께 모여 기도할 수 없을 때야말로 기도로 무장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을 넉넉히 준비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넉넉히 준비하지 못해 결국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항상 모이기에 힘쓰고 예배를 드리며 기름을 넉넉히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가진 기름조차도 도둑맞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더 붙잡으며 기도함으로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배의 환경이 바뀌었다고 해서, 나의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서 기도의 분량이 변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던 모습까지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없어도 기도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함으로 넉넉한 기름을 준비하길 소망합니다.

장수정

sjjang50@gmail.com

Good News

예수님을 영접한 중국인이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충만하여 만나는 사람들마다 전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서양인을 만나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말씀을 들은 서양인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중국에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유교가 있는데 기독교를 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도자는 기억에 남을만한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공자는 훌륭한 선생님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십니다. 지식으로는 천국에 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공자는 죽었지만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언젠가는 공자도 그리스도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심판자로 만나기 전에 구세주로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유교가 아니라 기독교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인간이 사상이나 철학, 아니면 선행의 방법 등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지킴으로 위안을 얻는 것이고, 그로부터 인간은 죽은 뒤 세상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찾아오셨고 구원의 유일한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예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빛이 되리라

어느 때까지 지체하랴

여호수아 18장 3절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라는 내용이 나온다.

하나님이 이미 너에게 그 땅을 주었으니 더는 지체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 네 땅을 점령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 19장 47절에는 단 자손 지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단 자손의 경계는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셈과 싸워 그것을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하였음이라”

단 자손은 제비 뽑아 받은 그들의 영토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치고 나가 그의 영토를 더욱 확장했다고 말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새로운 도전 앞에 주저할 때가 있다. 이 일을 언제 시작해야 하는지, 내가 과연 철저히 준비되었는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두려움에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멈춰서 있을 때가 많다.

그러나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언젠간 박차고 일어나 내게 주신 비전, 목표, 사명을 향해 뛰어야 한다. 100% 준비될 때를 기다리지 말고, 7~80% 준비가 되었으면 일어나 도전하자. 부족한 부분은 부딪치며 차차 개선해 나가자.

도전의 두려움은 잠시일 뿐이다. 그 초기 단계만 뛰어넘으면 두려움을 이겨냈다는 만족감과 익숙해짐에 따른 안정감이 곧 찾아온다. 언제까지 지체하겠는가? 하나님이 주신 내 땅이 바로 내 눈앞에 있다. 스스로 자문해보자. 단 자손 지파처럼 그 땅을 정복하고 확장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지 말이다.

장명훈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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