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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3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마음의 평화

1043호 · 2020-02-23
겨자씨만한 믿음

현대사회는 누구나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간다.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와 생활이 복잡해지면서 신경 써야 할 곳이 많아지고 스트레스도 많이 늘어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필요를 아주 잘 충족시키는 편리한 제품들이 생산되지만, 그것들은 우리의 욕망을 부추긴다. 이런 사회에서는 자기탐욕이 일어서 평안을 누리기 어렵다. 평안한 마음은 요동하지 않는 마음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음이 쉼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멍에를 메고 배우라고 하셨다. 그 멍에는 온유와 겸손이고, 그 멍에를 메고 배우면 마음이 쉼을 얻을 것이라고.

병에 걸리면 의사가 진단하고 치료라는 멍에를 지어준다. 의사가 지어주는 멍에를 메고 살아야 병이 치유된다. 환자가 의사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좋은 대로 한다면 병은 고쳐지지 않고, 이는 환자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무거운 짐 때문에 수고로워 쉼을 얻고 싶다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신의 짐은 내려놓고 예수님께 맡겨야 한다. 그리고 온유와 겸손이라는 멍에를 메고 배운다면 예수님이 주시는 마음의 쉼을 얻을 수 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모든 짐을 다 어깨 위에 메고 있을 필요가 없다. 이미 비행기를 타고 있는데 짐을 어깨 위에 메고 있을 필요는 없듯이.

이제 십자가 밑에 짐을 풀고 순종으로 예수님의 멍에를 함께 메자.

김성일 집사

진리의 학당

가인의 세계 (창세기 4:1~7)

영이신 하나님은 본체의 형상을 가지신 영생하시는 신으로서 유일하시다(히1:3).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의 모양을 따라 호흡하는 남자와 여자를 흙으로 지으셨고, 생육하는 한 남자에게 생기를 부어 생령이 되게 하셨으니(창2:7), 모양은 수한을 다하면 흙으로 복귀하여 소멸되지만, 생령은 선악 간에 심판을 받아 영생과 영멸로 구별하심이 하나님의 의이다.

아담은 인자의 출생과 죽음의 노정에 부름 받았다(롬5:14). 그러나 음부에서 유일하게 하나님과 교통하던 아담이 생명의 계명에 불순종하여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권리를 마귀에게 빼앗김으로써 영에는 사망이 왔고, 저주는 육체가 짊어지게 되었다. 몸은 흙이요 마귀에게는 종신토록 흙을 먹으라 하셨으니(창3:14), 이때부터 마귀는 세상 임금이 되어 흙으로 된 인간의 육체를 먹이 삼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예수의 은혜가 필요하다.

근본 된 토지로 돌아온 아담은(창3:23) 신령한 복이 단절되었고 가시 엉겅퀴와 싸우는 고달픈 인생고 속에서 당초 육체에 허락받은 생육번성의 하나님의 명령대로 두 아들을 낳았고(창4:1~2), 아들들은 각각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는데 하나님은 아벨이 드린 믿음의 제사는 의로 인정하셨으나(히11:4) 가인의 의식적 제사는 하나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제사를 실패한 가인은 세상 신의 유혹과(요일12) 죄의 소원을 다스리지 못하고(창4:7) 동생을 죽인 후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일 것’이라며 두려워했고, 하나님은 가인을 만나는 그 누구도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표를 주셨다(창4:14~15). 가인은 에덴 동편 놋 땅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사는 한 여자를 아내로 맞아 아들을 얻었다.

이처럼 에덴의 동서쪽에는 아담 가족 3명 외에 다수의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었음에도 왜 이들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고 생령인 아담과 그 후예들의 이름과 연대만을 기록할까?

창세기 1장은 물질계와 사람을 비롯한 생물의 생육번성의 물리적 복을 기록했고, 2장은 신령한 복을 기록했으니 생령과 영적처소인 에덴에 대해서다. 성경은 이렇게 물질계와 영계, 세상과 에덴, 생령과 사람들에 대하여 순차를 따라 명백한 구분을 하고 있으나, 우리는 지금 물질계와 영계의 두 상황이 뒤얽혀있음으로 혹 성경이 난해하여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거나, 또는 성경에 모순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그냥 덮어둘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직면해있다. 창세기 3장은 에덴에서 뱀이 생령을 접수하는 과정과 심판에 대하여, 4장은 성경 최초로 가인의 세계를 기록했다(창4:16~24). 이어지는 5장에서는 먼저 1장에서 ‘생육 번성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통칭하셨음을 회고한 후(5:1~2), 비로소 BC 4,100년경에 시작되는 아담의 계보는 가인에게 죽임당한 아벨을 대신하여 주신 셋으로 이어지고 이후 노아 홍수까지 10대를 기록한다(창5:3~32).

하나님께서 사람이라 통칭하신 개별이름이 없는 인류는 단순한 육적 존재로서, 아담이 생기를 받아 생령이 될 때 ‘탈락된 자들’이라는 뜻으로 ‘네피림’ 이라 부른다(창6:4). 이들 영이 없는 존재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니 하나님과 영적 교류도, 신령한 계명도 없으므로 죄나 심판의 개념 또한 없고 따라서 이들에게는 생명책에 기록될 개별의 이름이 없으니 물속에 넣으면 동물과 같이 그 존재의 소멸을 맞는 시한적 존재들이다. 그러나 영을 부어 생령이 된 아담부터 시작된 인류의 연대는 인자가 나실 때까지 기록된다(눅3:23~38).

가인은 부모로부터 생령을 받은 영적 존재이지만 부인은 사람의 딸(창6:1), 곧 네피림임으로 그들에게서는 육적 사람만 출생했고 홍수 심판으로서 종말을 맞게 되었으니 ‘가인의 세계’에서 영생 얻은 자가 있는가(창6:1~4)? 우리 세대가 지나고 다음 세대가 와도 후손들이 교회밖에 유리하지 않도록 생명 진리를 상속해야 하고 영적 생활을 독려해야 할 이유이다. 네피림 은 단순한 혼적 존재로서, 생령으로 선택된 아담을 제외한 사람을 가리킨다. ‘떨어지다’의 히브리어 동사 나팔 에서 유래한 복수명사로 ‘떨어진 자들’, ‘탈락한 자들’이라는 뜻이다.

고고학에서 밝혀내고 있는 찬란한 고대 문명은 이들 네피림의 작품일 터이다. 그러므로 아담을 수십만 년 전에 있었던 사람으로 본다면 창세기의 많은 기록들은 신화로 취급될 수 있다. 성경은 아담의 연대를 BC 4,100년경으로 기록한다.

박덕규 목사

에덴으로 귀환

행복한 결혼의 조건

대학교 2학년이 갓 넘어서야 처음 연애를 하게 된 저는 연애기간을 3~4개월 이상 넘긴 적이 없었는데, 이는 어머니께 이성 친구를 보여드릴 때마다 매번 헤어질 것을 권면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도 어머니께서 싫다 하시면 그렇게 멋지게 보였던 남자친구가 날이 거듭될수록 점점 끌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남자친구에게 이별의 이유가 어머니께서 반대하시기 때문이라고 하면 매번 다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곤 했습니다. 이성 친구에 대한 생각만이 아니라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부모님의 의견이 정말 많이 중요했습니다. 저보다 더 많은 지혜와 식견이 있으신 인생의 선배이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저를 제일 사랑해주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가장 좋은 길로 안내해주실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죠.

28살 봄,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가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도 흔쾌히 허락해주셨고, 예식장도 예약하고 양가 부모님들께도 정식으로 인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남자친구 부모님께 인사하기로 한 바로 전날, 어머니께서는 한 꿈을 꾸셨고, 저는 그 친구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꿈속에서 제가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와 행복해하며 신혼집으로 향해 가는데 어머니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쯤 갑자기 남자친구가 엄청 큰 프라이팬으로 제 뒤통수를 쳤고, 저는 그 자리에서 바로 기절해버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하셨고, 저는 어머니의 만류에 어쩔 수 없이 그 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하였습니다. 결혼까지 약속했던 터라 정말 크게 상심했었고, 회복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의 남편은 동생의 소개로 2010년 여름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남편을 보자마자 단번에 반하셨습니다. 당장 결혼할 생각도 없었는데, 갑자기 남편보고 빨리 결혼하라고 하시더니 번갯불에 콩 굽는 듯 결혼을 밀어붙이셨습니다. 교제한 지 한 달 만에 청혼을 받고, 두 달 만에 상견례를 하고, 석 달 만에 혼인신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직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이렇게 얼렁뚱땅 결혼을 해도 되는 건가 의구심이 들 때 즈음, 저와 남편, 어머니, 동생은 전부 꿈으로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결혼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결혼한 지 9년이 지난 지금, 하나님께서는 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하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항상 이해해주고, 어떤 상황에서도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귀한 남편을 주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점점 커가는 남편의 신앙을 가장 흐뭇하게 생각하시고, 어머니께서는 매번 변덕이 심한 저를 한결같이 감싸주는 남편에게 항상 고맙다고 하시며, 누나의 힘든 성격을 너무 잘 아는 동생들도 매형이 최고라고 합니다.

행복한 결혼의 첫 번째 조건은 당연히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 우선된 조건도 있고, 그와 동일한 중요한 조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그보다 우선된 조건은 바로 ‘하나님의 허락하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그 남자를 혹은 그 여자를 사랑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과연 그 결혼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두 번째, 남녀 간의 사랑과 쌍벽을 이루는 중요한 조건은 ‘양가 부모님의 허락’입니다. 자녀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고 싶은 부모님의 사랑은 그 어떠한 남녀 간의 사랑보다 더 크고 깊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결혼을 가족과 가족의 만남이라고 여겨왔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고리타분한 생각, 혹은 시대에 뒤처진 생각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는 이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 부모님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에베소서 6장 1~3절).

김온유 집사

부르심의 소망

내 하나님 우릴 들으소서

1992년 한중수교를 계기로 중국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초반에 한국 선교사들은 문화의 차이로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2003년 사스가 발생하면서 잠자고 있던 중국 교회를 깨웠습니다. 전염병의 위협에도, 한국 선교사들은 중국을 떠나지 않고 중국교인들과 제자들과 함께 했습니다. 사스를 통해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보며 크게 각성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후로 중국의 기독교 인구는 매년 평균 10%씩 가파르게 성장했습니다. 정부가 공식 인정한 삼자교회에 등록한 기독교인은 2,800만 명 정도였고, 공인받지 못한 가정교회까지 합치면 1억 명이 넘는다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시진핑 정권이 들어서면서 1960년 문화혁명 이후로 가장 강력한 종교탄압을 시행하였습니다. 2016년 4월, 단둥지역 등 북중 국경지역에 있는 선교사들을 무더기로 추방했고, 2017년까지 1,000여명의 선교사들이 추방되었습니다. 2018년에는 중국의 기독교 인구가 가장 많은 허난성에서 4,000여 곳의 교회 십자가가 강제철거 되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로 십자가를 폭파하고 불태웠으며, 바닥에 내동댕이쳤습니다. 이에 어떤 교인들은 맨몸으로 십자가를 감싸며 철거에 저항했고, 어떤 교인들은 길바닥에 버려진 십자가를 예수님 끌어안듯이 끌어안으며 통곡했습니다. 2019년에는 우한을 종교정책 시범지로 지정하여, 49개 교회를 강제 폐쇄했습니다.

이 와중에 중국 공산당 정부의 인가를 받은 국영교회들은 중국 정부를 찬양하는 노래를 하고, 십자가 대신 시진핑의 사진을 걸어놓고, 중국 공산당이 그리스도보다 더 우월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 중국 학교에서는 공산주의 사상을 세뇌시키고 기독교인 부모를 의심하고 고발하도록 하는 등 자녀세대가 기독교 신앙을 갖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고 있습니다.

2020년 1월, 중국 우한에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발병하여, 중국 위건위 2월 11일 0시 기준, 전국 누적 확진자는 4만2천638명, 사망자는 1천16명입니다. 사스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전염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중국 내에는 소수의 한국 선교사들만 남아있고, 이들마저 떠나버리면 중국 기독교인들은 이 극한에서 스스로 일어서야 합니다. 이들을 위한 중보기도가 절실합니다.

일제 식민지 시절, 한국교회 역시 엄청난 핍박을 당했습니다. 1919년 3·1만세운동 때 교인들을 교회당에 가둔 채 불을 지르고 총을 쏘고 칼로 찌르는 등 무차별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승만 박사는 미국의 200여 교회를 돌며 한국교회의 핍박을 알렸는데, 위 사건은 미국인들이 한국의 독립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1919~1920년 한국 독립과 관련해 8,000건의 기사가 미국 신문에 실렸으며, 연인원 20만 명이 그의 강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1945년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일본이 항복을 하면서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이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첫 국회를 이윤영 목사의 기도로 시작하게 되기까지 한국 기독교인들의 저항과 미국 기독교인들의 중보기도가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지금 중국 우한에 있는 교회들이 금식기도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도 기도로 돕는다면 남아있는 중국인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이들이 또한 복음 전파자로 파송될 것입니다. 한국이 미국의 도움으로 재건되고 미국 다음으로 해외선교사를 많이 파송하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박영신

rubyday0@naver.com

울림 있는 삶

퍼주는 장사

한식과 분식을 경영하는 나의 식당은 분식(라면)만 주문해도 푸짐한 반찬과 공기밥을 서비스로 드린다. 거기다 커피까지 제공하는 모습에 딸아이는 기겁을 한다. 뭐가 남느냐고. 나는 빙그레 웃으며 당장은 아니라도 장기적으로 그 손님은 동료들을 데리고 올 것이고, 가끔은 고가의 음식도 주문하는 단골이 된다며 어느 고객을 예로 들어 친절히 대하라고 설득한다.

어플 광고를 오래 해온 나는 날마다 신규 오픈으로 등장하는 업체와 수많은 음식점들이 경쟁에 밀려 문을 닫는 모습을 보고 있다. 그러기에 고객이 선호하는 음식들을 주기적으로 분석하고 각종 이벤트로 서비스를 하며 꾸준히 단골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인다. 목사님께서 ‘단골고객은 고정수입이다’, ‘고객은 서비스나 음식 맛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하셨다. 많은 업주들이 재료비 구성을 30%~40%로 잡지만, 가끔씩 나는 ‘오늘은 무료로 제공하는 날이다.’하며 고가의 음식을 주 거래처에 배달하며 월말에는 감사 인사와 선물을 빠뜨리지 않는다.

사업에 실패한 대다수의 사업주들은 불경기를 탓하고 ‘내가 왕년에….’를 회상하며 과거의 영광을 다시 재현하려는 조급함만 있지 현실은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대공황 90주년이 되는 시점인 현재까지 불경기가 아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성공자는 있기 마련 아닌가.

장사가 안 되는가? 우물이 깊다고 핑계 대지 말고, 내 두레박이 짧음을 인식하자. 그리고 지속적인 광고와 각종 이벤트로 사활을 걸어 보자. 뚝배기가 좋아도 장맛이 좋아야 하는 법, 맛있고 서비스도 좋다면 거리불문이요, 시간불문이 되거늘…. 아낌없이 1인분을 2인분처럼 퍼주라. 그러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장사가 잘되리라. 퍼주고 망한 놈은 없다.

추성숙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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