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탓하냐, 다 네 잘못이다(창3:1~19)
실패자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가 남 탓을 하는 겁니다. 잘되면 자기 덕이고, 안 되면 남 탓을 하는 겁니다. 이건 첫 사람 아담 때부터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그의 아내인 하와를 만들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 후 하나님은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안쓰러워 그에게 돕는 배필인 하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와에게 뱀이 찾아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꼬드겼습니다. 그 꼬임에 넘어간 하와가 먼저 선악과를 먹었고, 하와의 꼬임에 아담도 먹었습니다.
이런 일을 하나님이 모르실 리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를 아시고 아담에게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고 묻자 아담의 답이 걸작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 “하나님, 저를 죄짓게 한 것은 당신이 주신 여자 때문입니다.” 이런 겁니다. 하와 때문이요,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 탓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하와에게 물었습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더니 하와 역시 뱀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선악과에 대한 말씀을 직접 들은 사람은 아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아담은 하와의 꼬임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그래놓고 하와 탓, 하와를 주신 하나님 탓을 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 탓입니다’ 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만일 회개했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다시 쓰였을지 모릅니다.
가인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 받으시느라 정신이 팔려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가인의 제사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열납하지 않으신 거지요. 그런데 가인은 자신의 제사가 열납되지 않는 이유는 아벨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동생을 죽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방법과 뜻대로 제사를 지내지 못했구나.’ 하고 회개했어야 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가서 시간이 지체되자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리를 위하여 신을 만들자며 금을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 뛰며 노래합니다. 이를 본 모세가 어찌하여 이리했느냐고 아론에게 추궁하니 아론 왈,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어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출32:22~24)라고 합니다. 자기가 주도해놓고 백성 탓을 했습니다.
사울도 보겠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분명히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모든 사람과 육축까지 죽이라고 하셨건만(삼상15:3), 아각을 사로잡고 양과 소 중에 좋은 것을 죽이지 않고 남겼습니다. 그래놓고 그를 책망하는 사무엘에게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삼상15:15)라고 했습니다. 21절에도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라고 변명했습니다. 백성 탓을 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다섯 처녀는 혼인 잔치에 들어갔지만, 다섯 처녀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못 들어간 것이 누구 때문입니까? 기름을 나눠주지 않은 처녀들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기름을 넉넉히 준비 못한 어리석은 다섯 처녀, 즉 자기들 탓입니다.
여러분, 가장 복된 사람은 시작보다 끝이 좋은 사람입니다. 젊어서 고생해도 늙어서 풍요로운 자들이 복된 자들이지 않습니까? 앞에 기술한 자들은 다들 끝이 안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기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린 것입니다. 아담의 인생은 처음 에덴에서 아름다웠으나 에덴에서 쫓겨난 신세로 결국 흙으로 돌아갈 인생이 되었고, 사는 동안 인생고를 짊어져야 했으며, 가인도 동생 아벨을 죽인 역사상 첫 살인자로 유리하는 자가 되었고,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으나 마지막은 비참한 죽음으로 생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볼까요? 다윗도 완전무결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었습니다. 충신인 우리아의 처를 범하고, 우리아의 처인 밧세바가 수태하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 수를 쓰다가 그게 먹히지 않자 우리아를 전장의 최전선에 보내어 죽게 합니다. 이를 하나님이 다 보시고 선지자 나단을 보내어 다윗을 책망합니다. 그때 다윗이 사울과 다른 점이 이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처럼 남을 탓하지 않고, 바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12:13)고 고백합니다. 씨를 뿌리면 싹은 나는 법인지라 죄의 열매를 거두는 고통은 치렀지만,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향하여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13:22)고 하셨습니다.
이제 아셨습니까? 시작보다 끝이 좋으려면, 시작은 미약하나 끝이 창대하려면 남을 탓하지 않고 모든 것이 내 탓, 내 잘못이라고 인정하고, 회개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만 탓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 식당 음식 맛이 없거나 서비스가 안 좋거나 환경이 안 좋거나 주차장이 불편해서 식당이 안 되는 것이지 옆집 식당 때문이 아닙니다. 내 식당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빨리 인지할수록 회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쪽박날 수밖에 없습니다.
지교회의 어느 목사는 교회가 부흥이 안 되는 이유가 이초석 목사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단이라는 소리 때문에 성도들이 정착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초석 목사 때문에 잘 되는 교회는 뭡니까? 자기가 능력이 없고, 설교를 못하고, 기도를 안 해서 부흥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런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고쳐야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 집에 초상이 났는데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조차 조문하러 오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내 탓입니다. 평소 대인관계가 어떠했는지, 내 처신이 어떠했는지 살펴야 합니다.
내가 부도난 것, 내가 사기당한 것, 내가 건강치 못한 것, 다 누구 탓도 아닙니다. 다 내 탓입니다. 지금 내가 할 일은 남을 탓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반성해야 합니다. 남을 탓하는 것은 책임 전가요, 핑계일 뿐입니다.
가장 불쌍한 인생이 누구인 줄 압니까? 수리형 인생을 사는 자들입니다. 누군가를 탓했다는 것은 벌써 낭패를 당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기 전에 수시로 나를 돌아봐야 합니다. 점검형 인생이 되라는 겁니다. 사람인지라 매번 정도만 걸을 수는 없지요. 그러나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쁜 길임을 알았다면 누굴 탓하지 말고, 얼른 회개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남 탓하는 자 치고 회개하는 자 못 봤고, 노선 변경하는 자를 못 봤습니다. 다윗처럼 잘못했으면 회개하고 다시 그 길로 안 가야 합니다. 밧세바를 범한 후로 죄를 깨달은 다윗은 늙어 신하들이 동녀로 시중들게 했으나 절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왕상1:4).
저도 목회 9개월 만에 교회가 깨진 것은 전적인 제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교만해서 그리 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인회가 어째서, 장로회가, 청년회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돌아보고 눈물로 회개했더니 지금 예수중심교단과 교회가 일궈졌습니다.
끝이 좋고 싶습니까? 오늘보다 내일이 낫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부디 남 탓하지 마세요. 자기가 잘못해놓고 ‘하나님, 나에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하지 마세요.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관용은 없습니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잠19:3). 할렐루야!
핑계는 살아남기 위한
아주 조잡한 수단이다
문제는 죄가 아니라
회개치 못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