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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초석 목사님을 평하라?

1035호 · 2019-12-29
오늘의 메시지

나는 어릴 적 싸리문을 사이에 두고 이초석 목사님의 방배동 집과 연하여 살았다. 나이 차도 있고 워낙 일찍부터 사업을 하시던 분이라 가까이할 기회는 없었지만 예수를 평하던 나사렛 사람처럼 이초석 형님이 목사가 되실 거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너무 의외였던 터라 이시대 목사님과 절친이었던 형과 인천 숭의동 성전을 방문하여 설교를 들어보니 그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 후 3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우여곡절의 시련 끝에 예수중심 교단의 목사가 되었다. 참 신기한 일은 목사님에 대한 나의 의구심을 꿈으로, 음성으로 주님께서 신원해주셨다. 모든 의구심을 떨치고 목사님을 진정 스승으로 받아들이게 하셨다. 그 세월이 무려 50년 가까운 세월이다.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빌립이 청하자 말씀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9).

나는 종종 지인들에게서 총회장 목사님의 세상 평에 대해서 듣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얘기한다. “나를 보라. 알다시피 내가 이단을 추종할 것으로 보이느냐? 나와 이초석 목사님의 신앙의 본질은 같다. 나를 보면 이초석 목사님을 알 수 있지 않느냐?” 나는 그분의 삶을 존경한다.

이제 생각지도 못했던 길을 가게 되었다. 일본 지바교회의 11대 목사로 초빙되었다. 뼈를 그곳에 묻을 각오다. 너무 많은 제자들이 똥칠을 했다고 가슴 아파하는 목사님께 희망과 즐거움을 드리고 싶다. “목사님! 위안과 보람을 드리고 싶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꼭 그리될 겁니다.”

이광주 목사

jungkm@nate.com

신앙논객

자녀를 하나님 손에 맡기라

이번에 성탄절 예배와 부서의 조직개편을 준비하면서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아직 예수를 믿지 않으시는 부모님들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는 부모님들이 오히려 자녀의 교회활동에 미온적이라는 것이다. 이미 자녀들이 겪었던 과정을 먼저 지나오셨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자녀들의 마음과 입장을 잘 아시는 분들이지만, 학부모의 솔직한 심정은 행여나 내 자녀가 교회에서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가 세상의 다른 자녀들에 비해 뒤처지거나 경쟁에서 밀릴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론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주의 일을 하니 너희는 믿고 축복만 받아라!’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객체 구원, 객체 상급, 객체 심판을 이야기한다. 에스겔 14장에 ‘하나님께서 어느 땅을 심판하실 때 노아, 다니엘, 욥 세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 생명만 건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부모가 노아처럼 수십 년을 순종함으로 교회를 섬기고, 다니엘처럼 속세에 물들지 않는 거룩한 삶을 살며, 욥처럼 환난과 시험을 통과하여 갑절의 축복을 받았어도 심판의 날에는 그 의로 자식들을 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총회장 목사님이 아무리 전 세계 72개국에 복음을 전하는 사도라도, 그런 목사님의 가족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다. 우리는 목사님의 포기하지 않으시는 눈물의 기도가 온 가족을 구원하고 그들 가운데 많은 주의 종들이 배출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학생이 공부를 하고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으며, 직장인이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자기 계발과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다. 성경은 청년의 때에 마음 가는 대로 살다가 심판을 받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경고한다(전11:9~12:1). 믿음의 부모라면 하나님을 향한 자녀의 열심을 걱정하지 말고, 오히려 내 자녀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믿음에서 떠날까 걱정하며 자녀를 위해 애통하며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요게벳이 모세에게, 한나가 사무엘에게 그랬듯이 당신의 자녀를 하나님 손에 맡기라. 하나님이 기르신다. 주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신혁주 전도사

소망의 언덕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에게 어느 어머니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넋두리를 합니다. 한참을 듣던 정신과 의사는 “죽어야 할 이유가 그렇게 많은데 죽지 않고 사는 이유가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여인은 자신을 ‘어머니’라고 지칭하며,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아들 때문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프랭클은 아흔아홉 가지 죽을 이유를 찾지 말고, 살아야 할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최근 목사님께서 설교 제목만으로도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내가 이 땅에 존재해야 할 이유’, 그것은 바로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만의 삶의 이유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의 삶의 이유는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지난 토요일 중고등부 예배 때는 2020년 예수중심제자원에 지원하는 한 교사가 설교 중에 이렇게 담대히 외치는 것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목회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주의 종이 되어야만 합니다.”

10대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이 말이 어떻게 들렸을까요? 과연 한 교사가 혼자 충만해서 좀 과한 메시지를 증거한다며 부담스러워 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외침에 예배를 함께 드린 학생, 교사 심지어 장로님조차도 큰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삶에서 주님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그 외침이 곧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요(마6:33, 행1:8), 우리가 목사님을 통해 배운 것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만 주님의 이름을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모두가 그 사명의 배에 승선해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호랑이 새끼는 호랑이입니다. 총회장 목사님을 35년간 따라온 예수중심교회 교인이라면 누구라도 ‘나의 삶의 이유는 예수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고 저는 감히 자부합니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때에 우리 삶의 이유를 다시 한번 마음 판에 다져 ‘예수를 먼저 구할 때 모든 것을 더하시는 축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현승 목사

coollee0817@naver.com

내가 매일 기쁘게

주님과 함께할 2020년

주님과 함께할 2020년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다 지났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항상 이맘때 하는 말 중에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는 듯하다. 그리고 우리는 또,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매년 많은 일이 일어나곤 하지만 개인적으로 2019년은 나에게 특히나 더 특별한 한해였다. 그래서 돌이켜보면 감사함으로 가득한 한해였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빛이 밝으면 그 바로 아래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마련이다.

지난 10월, 부산영화제 참석차 내려갔다 돌아오는 길에 공황발작 증세를 겪었다. 그리고 공황장애 판정을 받았다. 감사하게도 큰 사고나 사건 없이 소소하게 증세를 겪고 있지만, 시시각각 찾아오는 불안과 공포는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한다. 그냥 걷기만 하는데도 롤러코스터가 막 출발하는 것처럼 손에 땀을 쥐고, 일과가 끝나고 나면 두 발은 막 목욕탕에서 나온 것처럼 땀에 젖어 조글조글한 상태로 불어있다. 어느 순간 사람이 많은 곳이 두려워 매일 앉아 있던 도서관 열람실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주일예배를 보고 나면 정신이 아득해져 녹다운이 되기도 했다. 매일이 심장이 쫀쫀한 나날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하루만큼은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혹자는 공황장애를 5년, 10년, 30년을 앓고 있다고도 한다. 어쩌면 나도 그럴 수 있는 일이다. 매일 기도와 결단으로 하루를 다잡고, 매주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고 있다.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 견디기 힘든 어느 주일이었다. 모든 것을 다 놔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휩쓸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그날, 주님의 말씀이 다시금 찾아왔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1~2)

앞뒤 가릴 것 없이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성경의 구절들을 검색해보았다. ‘담대하라,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로 검색한 말씀 구절은 다 합쳐서 366건이나 되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매일 쓰러져도 매일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그렇게 살다 보면 나의 한해가 또 완성될 수 있다는 생각,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에 평강이 찾아왔다. 나는 나를 이겨낼 수 없지만, 나를 구속하시고, 나를 지명하신 하나님과 함께라면 이 상황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새롭게 시작할 2020년은 매일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고 격려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살고 싶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나는 어디서든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전훈지 집사

빛이 되리라

새로운 습관 만들기

어느덧 2019년 한 해도 저물어가고 2020년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이 신년 계획을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해 달려나가려고 의욕을 불태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목표를 향해 끝까지 나가지 못하고 중도하차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없을까?

로버트 마우어의 ‘아주 작은 반복의 힘’이라는 저서에서 경험하지 않았던 어떤 새로운 일이나 큰 변화는 인간의 뇌로 하여금 자연스레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다고 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이 그 두려움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뇌가 변화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작은 실천과 성공을 반복적으로 이룸으로써 차차 습관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제안한다. 뇌를 속이는 것이다.

위 방법을 적용한 예를 보자.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빠진 환자가 그를 찾아왔을 때, 그는 ‘1주일에 2~3번씩 1시간만 걸으세요’라는 방식 대신, ‘매일 저녁 TV 보면서 1분만 꼭 걸으세요’라고 했다. 극히 쉬운 목표량에 환자는 당연히 목표를 완수하였고, 앞으로는 오히려 좀 더 길게 운동하고 싶다고 의사에게 제안하며 걷는 시간을 차츰 늘려나갔다. 이렇게 아주 쉽고 작은 일을 꾸준히 반복하면서 스스로 뇌를 속이고 작은 성공을 거듭하며 성취감을 맛보게 되어 결국은 매일 운동하는 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된다.

2020년 새해, 나의 목표는 무엇인가? 이번엔 새로운 방법으로 작은 것부터 다시 한 번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작은 것부터 실천하고 반복해보자. 목사님께 항상 들어왔듯이 결국 습관이 우리 운명을 만드니까.

장명훈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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