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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 인생을 좌우한다

1032호 · 2019-12-08
겨자씨만한 믿음

공자는 ‘성상근야 습상원야(性相近也 習相遠也)’라고 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후천적으로 늘 행해서 익숙해진 버릇, 즉 습관은 차이가 크다는 말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의 탁월함은 한 차례 행동이 아니라 반복된 습관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습관이 그만큼 중요해서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가 된다. 같은 꽃씨를 뿌려도 비옥한 토양에서는 크고 예쁜 꽃이 나오지만 척박한 토양에서는 꽃은커녕 제대로 살기조차 힘들다.

습관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의 90% 이상이 전부 습관으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반복된 행동으로 습관이 생기고 대부분의 경우에 힘들여 생각하지 않고 이 익숙한 길을 답습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 익숙한 길이 좋은 길(환경)이라면 그 사람 인생은 성공할 것이고, 나쁜 길이라면 결국 실패할 것이다. 꽃씨는 자신이 뿌려질 곳을 결정할 수 없지만,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의지로 바꿀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습관을 갖고 있다면 이를 버리고 새로운 좋은 습관을 선택할 수 있다. 그 과정은 아주 힘들 수는 있지만 꾸준하게 행한다면 나쁜 습관은 없어질 수 있다. 굽어져서 자란 식물을 펼 때 한 번에 곧게 펴려고 하면 줄기가 끊어질 수도 있다. 점차적으로 펴고 고정시켜야 곧게 펴진다.

예수님의 기도는 일상의 습관이었다(눅22:39).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인도를 받으시고 지혜와 능력을 얻으셨다. 인생에 성령이 앞서고 기도가 앞서야 한다는 말은 교회에서 항상 듣는 말이다. 무언가 하기에 앞서 기도로 준비하고 성령을 사모하는 습관을 가진다면 인생이 얼마나 달라질까?

김성일

To Be Succeeded

주 앞에서 설 때까지

어느 날 거리를 지나며 본 가을 하늘과 단풍잎, 그리고 도심의 반듯한 건물들이 보기에 참 좋았다. 그런데 곧바로 드는 생각은 ‘아, 지금 내가 보는 것은 천국의 모형일 뿐이구나!’였다. 우리가 보고 누리는 모든 것은 아무리 좋고 아름다운 것일지라도 때가 되면 퇴색되고 없어지지만, 영원한 천국의 그것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에는 지금의 하늘과 땅, 바다는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성이 도래한다고 성경은 요한 사도를 통해 기록하고 있다(계21:1~2). 또한 사도 바울이 성령에 감동되어 확언한 것처럼, 그날이 되면 우리의 썩을 몸은 썩지 아니할 영광스러운 형체로 홀연히 변화하여 영원히 살 것이다(고전15:51~52).

이처럼 기독교는 세상의 다른 종교들이 주는 막연한 소망과 잠깐의 위로와는 철저히 구별되는 약속 있는 참 소망, 부활의 신앙공동체이다. 또한 정성과 노력만으로 복을 비는 세상의 것과 달리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값없이 받는 것이다. 그렇기에 천성을 향하여 달음질하는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그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대속함 받은 것을 믿을 것이요, 나아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성령의 불로 태워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믿음의 경주를 다해야 할 것이다.

악한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으며 믿는 자들의 가는 길을 더욱 옥죄지만, 이 전쟁의 끝은 이미 정해져있는 이긴 싸움이기에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우리가 드릴 것은 찬송과 감사뿐이다. 믿음의 전당에 기록된 수많은 믿음의 선친들이 그렇게 이 길을 통과하여 영생을 취했고,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없는 성도들이 순교의 피를 뿌려가면서 그 믿음의 전당을 빛내고 있다. 우리 삶의 목적은 환경과 처지를 뛰어넘어서 하나님을 닮아 우리의 영혼이 티나 주름 잡힌 것 없이 거룩해지는 것이요, 그 결국은 영원한 영광이다.

우리를 사랑하사 각자의 자리로 불러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며 내게 주신 부름의 자리에서 힘껏 섬기고 인내로 완주하는 그 날이 오면, 이 길 끝에 두 팔 벌려 안아주실 영광의 주님을 뵙게 될 것이다.

이국진 사모

낮은 울타리

하나님 눈치를 봐라

대학교에서 북한 인권동아리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학교에는 많은 인권동아리가 있었고, 그 동아리들을 모은 인권동아리연합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연합회가 하는 일은 동아리들이 행사를 할 때 함께 도와주고, 학교 내 인권활동을 활성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동아리도 학교 중앙동아리로서 당연히 연합회에 소속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와 회장은 쉽게 답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연합회에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성소수자 인권동아리도 포함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연합회에 들어가면 동성애를 옹호하는 행사에 준비위원으로 참여해야 했고, 우리 동아리 이름으로 이 행사와 동아리를 지지한다는 글을 올려야 했습니다.

크리스천인 저와 회장은 당연히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동아리 내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부원들도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 옳은 일인지 알았고, 하나님이 저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연합회에 소속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원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떡할까, 우리 동아리가 불이익을 당하진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연합회가 만들어진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학교 커뮤니티에 인권연합회의 사과문과 해명문이 올라왔습니다. 글을 보니 그들이 주최한 행사에서 큰 말실수가 있었고, 그로 인해 연합회 안에서 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일은 학교 안에서 꽤나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결국 연합회는 해체되고 그 안에 있던 모든 동아리들은 질타를 받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사람 눈치 보지 말고 하나님 눈치를 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무엇이 맞는지 분명 알고 있는데 사람 눈치가 보여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선택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의 눈치가 조금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결국엔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옳았다고 시인해주십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하나님이 책임져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장수정

부르심의 소망

달콤한 지혜

아침에 일어나서 창밖을 보니 소풍 가기에 딱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피자를 포장해서 가까운 습지 공원에 가서 먹고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준비해서 나갑니다. 이때가 오전 11시쯤이었습니다. 차에 타기 전에 잠깐 하늘을 보니 왠지 비가 올 것 같지만 우산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점심만 먹고 집으로 돌아올 예정이기에 잠깐 비를 맞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화창한 날씨일 거라고 상상하셨나요? 저는 비 오기 직전의 구름 가득 낀 하늘과 비를 좋아해요. 어쨌든, 출발합니다. 따뜻한 피자를 먹기 위해 습지 공원 근처에 있는 피자가게로 가고 있습니다. 습지 공원에는 초록의 싱그러움이 넓게 펼쳐져 있기에 가는 내내 콧노래가 나옵니다. 이제 2km만 더 가면 피자가게에 도착합니다. 큰 사거리를 지날 때였습니다. 차가 덜컹덜컹하더니 계기판에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황급히 갓길에 차를 정차하고 시동을 껐습니다. 그리고 5분 후쯤 다시 켜보니 시동이 걸리지 않습니다. 보험사에 전화하니 렉카가 도착하기까지 30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순간 짜증이 났지만, 저는 편의점으로 향합니다. 이럴 때는 역시 달달한 간식이 최곱니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문제를 웃음으로 잘 넘길 수 있게 도와주는 이것을, 저는 달콤한 지혜라고 부릅니다.

마음을 잘 다스렸다는 생각에 이것이 바로 훈련의 결과인가 하며 하늘을 보고 뿌듯해하던 그때,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아… 우산! 편의점까지는 500여 미터를 걸어가야 하는데 말이지요. 순간 바뀌는 마음을 보며 역시 방심은 금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허기를 채울 간식거리를 사와서 먹고 있는데 렉카 기사님이 도착하셨고, 다시 10km나 떨어진 정비소로 향했습니다. 간단히 점심만 먹으려고 했을 뿐인데 소풍 가는 길이 멀고멉니다. 정비소에 가보니 차 수리하는데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비는 아까보다 더 세차게 내리는데 우산은 없고, 갈 데라곤 바로 옆 편의점밖에 없습니다. 이때 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네 달달한 간식, 달콤한 지혜입니다.

편의점 파라솔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여러분, 우산이 없을 뿐이지 제가 비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지요? 비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니 나름 운치 있고 기분이 괜찮습니다. ‘언제 또 이런 여유를 느껴보겠어.’ 생각하니 그 시간이 즐거워졌습니다.

차가 다 수리되고 보니 벌써 오후 3시입니다. 비도 서서히 그쳐가고, 다시 피자를 사러 갑니다. 피자를 주문하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와~ 전통시장이 섰네요.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우연히 필요했던 물건을 구매하고, 뜻밖에 만난 재미에 기분이 유쾌해집니다. 피자를 포장한 후, 근처에서 먹을까 하다가 3km만 더 가면 습지 공원이기에 처음 정한 대로 습지 공원으로 갑니다.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초록이 한창인 습지를 바라보며 피자를 크게 한입 먹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늦긴 했지만 아침에 내가 계획한 대로 됐구나. 어쩌면 오늘 하루 동안 나는 인생의 모형을 경험한 건 아닐까. 계획을 이뤄가는 동안 여러 가지 당황스러운 일들이 생기지만, 내가 세운 계획을 잊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다 보면 결국 원하고 바라는 대로 될 거라고, 그러니 포기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메시지였을까?’

인생의 마라톤을 달리면서 사소한, 그러나 넘어지기 쉬운 문제가 생겼을 때, 달콤한 지혜를 활용해보시는 건 어떨까 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나’를 알아야합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해야 기분이 전환되는지 말이지요. 그렇게 크고 작은 문제들을 뛰어넘고 어느 순간 꿈꾸던 그곳에 다다랐을 때, 내 지난 고생을 돌아보며 ‘그래도 즐거웠구나. 하나님께서는 매순간 나를 격려하고 계셨구나.’라고 생각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힘내자고요!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가 2:10).

박영신

치우치지 않는 저울

친구여, 그대를 잊지 않았노라

“아저씨, 간식 가져왔어요!” 몇 차례 외치자, 강 건너편 수풀 사이로 까맣게 그을린 북한 군인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건너오라 말하며 손짓합니다. 두만강 상류, 강이라고 하기보다는 작은 실개천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강을 경계로 우리 일행은 중국 영토에, 건너편 군인은 북한 영토에 서 있었습니다. 일행 중 한 선배가 간식 뭉치를 들고 물속으로 들어갔는데, 중간쯤 다다르자 갑자기 허우적거리기 시작합니다. 급박한 순간, 건너편 북한 군인은 웃옷을 벗어던지고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군인은 물에 빠진 선배를 구해서 우리 일행이 서있는 중국 땅으로 건너왔습니다. 놀란 우리들과 달리, 선교사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그 군인과 반갑게 인사하며 안부를 묻습니다. 선교사님은 그렇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생 시절, 탈북자선교단체를 통해 중국 단기선교여행을 하던 중 겪었던 일입니다.

며칠 뒤, 중국에 머물고 있는 탈북형제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선교사님은 우리 일행을 두 명씩 짝지어 탈북형제자매들이 머무는 거처로 보내서 하룻밤을 함께 지내며 교제하도록 했습니다. 제가 방문한 곳에는 2명의 스무 살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남한에서 말씀을 전해줄 선생님들이 왔다며 비슷한 또래의 우리를 예수님 맞이하듯 반겼습니다. 둘러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중국 공안에게 발각되기라도 하면 북송될 처지이니 소리가 새어 나갈까봐 찬송가 한 곡도 맘껏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날 처음 만난 사이였으나 우리는 뜨거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작은 목소리로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찬양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김일성, 김정일을 신으로 여기며 속아서 살아왔던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며, 목숨을 걸고 탈북한 후 중국에서 숨어 지내던 당시의 상황까지도 감사하던 그 친구들의 고백을 듣고, 언제든지 하나님을 마음껏 예배하고 찬양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저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더 놀라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사선을 넘어 겨우 탈북한 사람이 죽음을 무릅쓰고 다시 북한으로 들어간다고 하니 숙연한 마음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훈련된 탈북형제자매들이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 지하교회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이산가족’, ‘북한’, ‘평화통일’이라는 단어는 여느 젊은이들처럼 거리감 있는 주제였으나 같은 언어로 우정을 나눴던 탈북형제들을 만난 이후, 저에게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친구들의 생사는 알 수 없으나 여전히 마음 한편에 늘 그 친구들이 있습니다.

수차례 시도한 북진통일이 좌절되고,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조인되던 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북한 동포들에게 외칩니다. “동포여! 희망을 버리지 마시오. 우리는 여러분을 잊지 않을 것이며 모른 체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한국 민족의 기본목표, 즉 ‘북쪽에 있는 우리의 강토와 동포를 다시 찾고 구해내리라’는 목표는 계속 남아있으며, 결국 성취되고 말 것입니다.” 비록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이 약속은 아직도 유효하며 우리와 무관치 않습니다. 우리 안에 소원을 주시고 이루시는 하나님(빌2:13)께서 총회장 목사님을 통해 10차에 걸쳐 국가와 민족의 평화를 위한 기도성회를 지시하셨고,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한 대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전쟁 없는 평화통일의 길로 인도하여 굶주림과 압제 속에서 고통받는 북한의 형제자매들을 구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애절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그 땅을 잊지 않고 계십니다. 평화통일된 조국에서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나 뜨겁게 부둥켜안고 감격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그날을 고대합니다.

“친구여, 나 또한 그대를 잊지 않았노라.”

정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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