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르치는 곳(히6:4~20)
하나님은 32,500가지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약속이 기록된 것이 성경이며, 교회는 이 성경을 근거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교회는 어떤 이념이나 사상, 또는 도덕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잔소리로 간주하여 귀찮아합니다. ‘교회 가면 이것 하라, 저것 하지 말라’고 해서 교회에 안 간다고 합니다. 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잔소리로 들리느냐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는 전제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6:3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 이렇게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기에 잔소리처럼 들리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이 까다로워서가 아닙니다. 약속을 안 지키려고 일부러 그러신 게 아닙니다. 이는 우리의 영·혼·육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 잘되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부모가 ‘성적 오르면 자전거 사줄게’, ‘매일 운동해서 살 빼면 옷 사줄게.’ 하는 것은 나 잘되라고, 나 건강하라고 하는 말 아닙니까? 동일합니다. 이 선행 조건을 이룰 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은 우리 것이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실천했습니다. 그들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3~6)는 약속의 말씀을 힘겨운 중에도 실천했습니다. 잠시 사자굴에 들어가고, 잠시 풀무불에 던져지기는 했지만 그들은 결국 승리했고, 하나님은 그들을 만천하에 높이셨습니다.
신앙의 기본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는 약속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어야’ 멸망치 않고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안 믿으면,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평생 봉사하고 살아도 영생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용서에 대한 약속의 말씀도 동일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1:9).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 ‘죄를 자백하면’, ‘남의 과실을 용서하면’이라는 단서가 붙습니다. 이게 잔소리입니까? 원수로 살지 말고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 아닙니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라는 말씀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할 때’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약속으로 주셨는데,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는 말씀입니다. ‘부르짖으라’는 조건이 성립할 때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10월 1일, 서울시청광장에 모여 ‘국가와 민족의 평화를 위한 기도성회’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약속의 말씀을 믿습니다. 분명히 우리나라의 대내외적인 모든 문제가 부르짖는 우리의 기도로 해결될 것입니다.
축복을 받는 약속의 말씀도 있습니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6~7). ‘십일조’와 ‘헌물’이 드려질 때 물질의 축복이 넘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요, 자연의 법칙이 바로 하나님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모든 것을 철저하게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6:17~18), “내 언약을 파하지 아니하며 내 입술에서 낸 것도 변치 아니하리로다”(시89:34). 거짓말을 못하시는 하나님이, 변개함이 없으신 하나님이 약속을 꼭 지키신다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실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행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즉 빌린 돈의 이자를 내지 않거나 갚을 날짜를 어기거나 하면 어찌 됩니까? 신용불량자가 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신용불량자가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고, 되는 게 없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병과 저주와 가난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을 보세요. 아담은 하나님과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 신용불량자가 되어 에덴동산에 쫓겨났고, 힘들고 어려운 세상살이를 했습니다. 사울 역시 하나님과의 약속을 파기해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삼손도 동일하게 그랬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예’만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어려운 선행조건을 감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낳은 아이를 통해 열국의 아비가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침내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열국의 아비가 되는 일에 앞서 행해져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에 황망해하지 않고 그를 데리고 모리아 산에 올라가 제물로 바치려고 했습니다. 그런 그를 말리신 하나님은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22:16~18)고 말씀하셨습니다. 맹세로 보증까지 서시며 축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인 신뢰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되어봅시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천 대의 복을 비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제조건으로 내미신 것은 아주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행될 때 하나님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하지 못한 축복을 우리에게 쏟아 부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원하여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