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하는 사람
‘하나님의 법궤’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이것을 알기에 다윗은 3만 명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인력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법궤 운반계획을 세웠다. 새 수레를 가져오며 엄청난 규모의 악대를 준비했다. 그런데 사고가 생겼다. 법궤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법궤 호송관 웃사가 하나님의 진노로 죽게 된 것이다.
사실 흔들리는 법궤를 잡아 땅에 떨어지는 것을 막은 웃사의 행동은 칭찬받아야 할 행동이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웃사의 행동에 대해 그토록 진노하셨을까? 그것은 다윗 왕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법궤를 운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궤는 아무나 만질 수 없었고, 오직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운반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다윗은 율법에 명시된 말씀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법궤를 새 수레에 싣고 운반하려다가 사고를 낸 것이다. 율법을 펼쳐보니 웃사의 행동은 인간적인 시각에서 보면 칭찬받아야 할 일 같지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훼손하는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웃사를 죽이시면서 이스라엘 백성 전부의 영혼 속에 있는 옛사람을 죽이셨다.
하나님의 임재는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은 회개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기 원한다면 먼저는 회개라는 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다윗은 오벧에돔의 집이 복을 받는 것을 깨닫고 3개월 뒤에 법궤를 운반했다. 이번에는 레위 족장들을 통해 어깨에 메고 말씀대로 운반했다. 두 번째,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하기 위해서 법궤를 메는 땀 흘리는 수고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배는 땀을 요구한다. 내가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 희생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땀이다. 헌금도 우리가 땀 흘려 일한 것에서 바치는 것이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예배는 우리의 땀과 눈물이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대가도 치르겠다는 희생의 마음, 눈이 시리도록 간절히 울며 간구하는 영적인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 그분의 임재 갈망만이 우리가 회복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정금 전도사
jungkm@nate.com
지혜가 제일이다
애꾸눈에다 외다리이면서 키까지 작은 왕이 있었다. 왕은 외모 콤플렉스가 심했다.
어느 날 그 왕이 그 나라 제일의 화가를 불러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화가는 왕의 의중을 자기 나름대로 추측하여 다리 둘에, 두 눈에, 보통 키의 정상인을 그렸다. 이를 본 왕은 우롱당한 듯한 모욕감을 느끼고 그 화가를 처형해버렸다.
다음날 왕은 다른 화가를 불렀다. 이미 앞의 사건을 다 아는 터라 불려온 화가는 현실의 모습 그대로 왕을 그렸다. 그러나 그 화가도 처형을 당했다. 애꾸눈에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난쟁이인 왕 그대로를 그린 것이다.
세 번째로 불려온 화가는 곰곰이 생각했다. 어떻게 그려야 왕의 마음에 흡족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화가는 왕이 말을 타고 사냥하고 있는 옆모습을 그렸다. 다리 하나는 말의 반대편에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고, 총을 겨냥할 때는 한쪽 눈을 감고 겨냥하기에 이상하지 않았으며, 등을 굽힌 채 말을 타고 있으니 키가 작아 보이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정상인처럼 그려졌다.
왕은 초상화를 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그 화가에게 큰 상을 내렸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찌니라”(잠4:7). 또한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잠3:18)라고 말씀하셨다.
지혜는 하나님이 정직한 자에게 주신다(잠2:7). 그러므로 정직히 행하여 지혜를 얻으라. 지혜는 삶의 지렛대이니 지혜를 얻으라.
예수중심편집실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
세상에 자신보다 위대한 사람은 없다고 자부하는 부자가 있었다. 사람들도 그를 위대하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나그네가 찾아와 물었다. “당신이 위대하다고 자부하는 이유가 뭐요?” 부자는 황당해하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것을 몰라서 묻는 거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단 말이오? 내가 만든 회사에는 2만 명이 넘는 직원들이 있소. 세상에서 사람의 생명을 지켜 주는 일이야말로 위대한 일이 아니오? 나는 이미 이 나라 2만 가정의 생업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오. 그러니 나야말로 위대하지 않소?” 그러자 나그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신의 말이 틀리진 않았소. 그런데 당신의 생명은 누가 지켜주는지 알려줄 수 있소?” 나그네의 말에 부자는 “그야 뭐….” 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밭에 소출이 풍성하여 창고를 크게 짓고 모든 곡식을 쌓아 두리라 하며 평안히 쉬고 즐기려는 어느 부자에게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그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다(눅12:17~21).
두 사례를 듣고 당신은 무엇을 깨닫는가? 나는 내 인생에 있어 제일 잘한 것이 있다면 예수를 믿은 것이요, 나아가 예수중심교단에서 목회하고 있는 것이라 자부한다. 나는 예수중심교회에 오기 전에 타 교회에서 약 8년 동안 신앙생활을 했었다. 거기서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확신은 없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했는지 아니면 들을 귀가 없었는지…. 그러나 지금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전할 수 있는 목사가 되었으니 이보다 큰 복이 있으랴.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신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지 않았는가(요6:38~40). 자기 영혼을 살려야 한다. 비록 거지 나사로처럼 살지라도 죽어 귀신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래서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보다 먼저 영혼을 사랑하여 구원의 인을 맞아야 한다. 우리 항상 사후를 생각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임택함 목사
제자의 편지
안녕하세요, 목사님!
태안예수중심교회 국승봉 목사입니다.
몇 년 전에 받았던 계시입니다만, 목사님을 위해 중보기도 하다가 최근에 목사님께 전해드리고 싶은 감동이 와서 더는 미룰 수가 없기에 이렇게 글로 적어봅니다.
2013년, 제가 광주예수중심교회 전도사로 섬기고 있을 때입니다. 대구전도집회(11월 5일)를 마치고 나서, 주중 저녁기도회 시간에 부산전도집회(11월 12일)를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너무나 애통해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저에게 부어지면서 주체할 수 없는 탄식과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엉엉 울면서 눈물, 콧물을 흘리며 기도하면서도 ‘왜 이렇게 주님이 애통해하실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국 전도사야, 너는 왜 이초석 목사가 부천, 서울, 대구, 부산 등 전국을 다니면서 집회를 하는지 아느냐?”라고 물어보시기로, 저는 “우리나라의 평화통일을 위한 것과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집회가 아닌가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주님께서는 “물론 그것도 맞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단다. 나는 이초석 목사를 가는 곳곳마다 무너져버린 영계를 추스르고 다시 회복시켜서 세우는 역할을 하는 이 나라의 영적 파수꾼으로 세워 놓았단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순간 너무 감사해서 할 말을 잊었고, 오직 주님 앞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부산전도집회를 놓고 기도할 때 주님께서 왜 그렇게 애통해하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부산전도집회가 11월 12일 부산 벡스코 컨벤션홀에서 열렸는데, 그 전에 같은 부산 벡스코에서 10월 30일부터 11월 8일까지 제10회 WCC(세계교회협의회)총회가 열렸던 것입니다. WCC는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혼합주의를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종교다원주의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타 종교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는 사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자신의 문화, 종교, 전통에 따라 신실하고 진실하게 살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가톨릭을 필두로 전 세계 모든 종교, 심지어 아프리카 토속신앙까지 참여하는 단체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그들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순수한 기독교 복음운동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배도의 물결에 휩쓸러가고 있는 것이지요. 인터넷에 공개된 WCC 기도문이나 총회 광경을 보면 참담한 배도의 실상을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습니다.
총회가 열리고 4일 뒤 부산집회가 열렸는데, 이 나라의 수많은 교회들이 참여한 WCC총회로 인해 무너져버린 이 땅의 영계를 보수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총회장 목사님을 부산 벡스코로 보내셨던 것입니다. 총회장 목사님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알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는 우리 성도님들께 감히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총회장 이초석 목사님은 주님께서 이 땅 대한민국의 영계를 이끌고 보수하기 위한 영적 파수꾼으로 세우신 분이시라고요. 또한 우리는 목사님의 사역과 건강을 위해 목숨 걸고 기도로 중보해야 한다고요. 가끔 영적 파수꾼의 모습인 목사님을 떠올려 보곤 합니다. 끝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악한 영들과 귀신들이 물밀 듯이 공격해오는 가운데, 우리들의 최전방에서 성령의 검을 들고 그 공격을 다 막아내고 물리치면서 힘차게 전진하시는 목사님의 모습을요.
오늘도 작정기도 중 목사님과 기도성회를 위해 기도하는데, 또다시 하나님 아버지의 애통하는 마음과 함께 ‘총회장 목사님께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한참을 울었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목사님! 더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힘내세요. 저희가 있잖아요, 목사님! 주님의 명령대로 사역하시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육체를 더욱 돌보아주셔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시고 이 나라의 영계를 이끌어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부족한 종이 두서없이 적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태안예수중심교회
국승봉 목사
이탈리아의 유명한 작가 단테의 작품 ‘신곡’의 지옥편을 보면, 지옥의 대문에는 ‘여기에 들어오는 자여, 모든 소망을 버릴지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7세기의 청교도 작가 토마스 부룩스는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고통과 슬픔, 비참함과 불행을 한꺼번에 다 당한다고 해도 그것은 지옥의 가장 가벼운 고통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지옥은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지옥’이라는 단어가 22번 기록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14번을 언급하셨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에서 고통을 받아야 하는데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고,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갈 탈출구가 없는 곳, 이 지옥만은 절대로 가서는 안 됩니다.
지옥은 어떤 사람이 가는가? 사람들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간다고 피상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땅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죽은 뒤에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허락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인간의 방법과 수단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무시무시한 지옥이냐, 영생복락의 천국이냐? 바로 당신의 선택입니다.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고난을 위로하는 자
살다 보면 종종 어려운 일을 당할 때가 있다. 슬프고 괴로운 일을 당할 때면 욥의 고난을 생각하며,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는 욥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삼고 위로와 힘을 얻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또는 그에게 버림을 받았을 때, 일평생 모아둔 재물이나 쌓아놓은 명예를 잃었을 때, 또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한없이 무너질 때, 그 모든 일을 한꺼번에 당한 욥이 입술로도, 마음으로도 범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힘든 시간을 그렇게 이겨내려 노력한다.
감사하게도 그런 고통의 시간은 결국 지나가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때가 온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을 돌아보면 어느덧 욥에게 본받았던 마음자세로 살아가기보다 어쩌면 욥의 친구들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망각의 축복으로 이전 고통의 깊이를 잊게 돼서일까.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위로라는 이름으로 ‘내 처지가 너보다 나으니 내 옳은 말을 들으라’ 하며 은연중 판단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옳다 주장하며 남의 처지를 쉽게 판단한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신데 네가 그렇게 하지 않아서 그런 일을 당한다고까지 말한다. 문득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욥의 친구들에게 노하신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은 말은 무엇일까? 고난을 당하고 있는 자에게 잘잘못을 분석해주는 말보다 예수님께서 바로 곁에 계셨다면 그에게 해주셨을 아픔을덜어주며 마음을 만져주는 말이 아닐까? 하나님의 위로를 대신 전해주는 입술과 손길이 되어 상한 마음에 쉼을 주는 것 아닐까?
기도한다. 나이가 들수록 머리가 아닌 마음이 점점 커지는 자가 되기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마25:35).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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