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는 것과 내가 잘하는 것(욥39:13~18)
행복하길 원하십니까? 그러려면 남이 가진 것, 내게 없는 것만 보며 불평할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가 잘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내 생각에 비록 작은 것이고,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그것을 찾아 내 삶에 활용할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엘리사를 따르던 생도 하나가 죽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신학생이 죽은 겁니다. 그러니 무슨 돈이 있었겠습니까. 빚만 남기고 죽은 겁니다. 어느 날 채주가 와서 빚 대신 아들을 데려가겠다고 했습니다. 생도의 아내는 화급히 스승이었던 엘리사를 찾아와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묻자 엘리사는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왕하4:2)고 말합니다. 생도의 아내는 기름 한 병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게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이었지요. 그러나 엘리사는 이웃에 가서 그릇을 있는 대로 빌리고, 아들과 방에 들어가 문을 건 채 기름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생도의 아내와 아들이 엘리사가 지시한 대로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름을 따르는데 빌려온 그릇이 다 차도록 기름을 따르고 따라도 줄지 않았습니다. 빈 그릇이 하나도 없었을 때야 기름이 그쳤습니다. 이 사실을 엘리사에게 말하니 엘리사는 그것으로 빚을 갚고, 나머지로는 생활에 보태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생도의 아내에게 ‘네게 없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습니다.
마가복음 6장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빈들에서 말씀을 전하시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이 배고플 것을 염려하여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당연하지요. 그 많은 사람을, 그것도 빈들에서 어떻게 먹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막6:38)라고 하셨습니다. ‘있는 게 뭐냐?’ 이러신 겁니다. 안드레가 보니 어린아이가 도시락을 싸서 왔는데, 그 안에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안드레는 ‘이걸로 뭘 하시겠습니까?’ 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예수님 앞에 내어놓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것을 축사하신 후에 나눠주라 하셨는데, 글쎄 5천 명이 다 먹고 부스러기가 열두 광주리나 남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시고, 마른 막대기에서 싹이 나게 하시는 분이시지만, 우리가 가진 것, 건강과 재능과 재물을 통해 역사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가시떨기나무 아래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삼으리라” 하자 모세는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출4:13). 나는 늙은 양치기에 불과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가진 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출4:2)고 물으셨습니다. 모세가 가지고 있던 것은 40년 동안 양칠 때 사용한 손때 묻은 지팡이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지팡이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탈출시키는 큰일을 이루셨습니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찌니라”(출4:17). 그 지팡이로 바로 앞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심을 증거했고, 그 지팡이로 홍해를 갈랐으며, 그 지팡이로 반석에서 물이 나게 했습니다. 또한 모세가 입이 둔하여 못한다고 했을 때 하나님은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출4:14)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 잘 아시죠? 주인에게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나 두 달란트를 받은 자는 나가 즉시 장사를 했으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대로 땅에 묻어두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마도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이걸로는 아무것도 못한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배움이 짧아서, 돈이 없어서, 건강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름 한 병,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 낡아 반질반질한 지팡이 같은 별 쓸모없는 것들도 당신이 뭔가 이루는데 디딤돌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도 없다, 저것도 없다’ 하지 말고 빈약한 것일지라도 내게 있는 것을 찾아 사용하세요. 분명히 역사는 이뤄집니다.
그리고 인생을 신바람 나게 살려면 잘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것을 해야 결실도 있고 신이 난다 이 말입니다. 좋아는 하는데 잘하지 못한다면 스트레스만 쌓이거든요.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더 잘하는 과학 쪽을 선택하여 위대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조류나 어류나 포유류나 할 것 없이 대부분은 알을 나면 흙으로 덮거나 안전한 곳에서 부화할 때까지 품거나 합니다. 그런데 타조는 알을 낳아놓고는 그게 뜨거운 모래에 삶아지던지, 발에 밟히든지 상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알에서 새끼가 부화해도 이게 내 새낀가 한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런 지혜와 총명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타조가 잘하는 것이 있는데, 달리기입니다. 타조는 시속 90km까지 달릴 수 있다고 하니 말을 탄 자를 우습게 여긴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욥39:13~18). 만일 타조가 할 줄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자식 기르는데 신경을 쓰고 산다고 가정해봅시다. 괜히 덩치가 커서 난리만 칠 뿐, 새끼 건사도 제대로 못하고, 타조 삶도 죽을 맛일 겁니다. 어련히 하나님이 타조 알은 밟혀도 잘 안 깨지도록 이미 만드셨으니 아무데나 쑴뿡 알 낳고는 그저 달리기만 잘하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타조가 새끼 돌보는 것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할 줄도 모르면서 남들이 하니까, 돈이 된다니까, 아니면 좋아하니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이 고달픈 겁니다. 그래서 결과가 없는 겁니다. 잘하는 일을 하셔야지요.
토기장이인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실 때 성격, 재능, 인물 등을 가장 적합하게 하나하나 만드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잠16:4). 어떤 사람은 공부를 잘하게, 어떤 사람은 운동을 잘하게 만드셨습니다. 김연아는 운동 중에서도 피겨스케이팅을, 손흥민은 축구를 잘하게 만드셨다는 겁니다. 운명이나 팔자니 하라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그 씌움에 적당하게’ 만드셨으니 잘하는 것을 찾으라는 겁니다. 다 사도가 될 수 없고, 다 교사가 될 수 없듯이(고전12:29), 신체에도 눈이 있고, 발이 있듯이(고전12:17)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대로 행하면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고, 그래서 신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사기 9장에 이런 우화가 나옵니다. 하루는 나무들이 나가서 누군가로 왕을 삼으려고 합니다. 먼저 감람나무에게 왕이 되라 하니 감람나무가 말하길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왕이 되리오.”라고 했습니다. 다시 무화과나무에게 왕이 되라 하니, 그 왈, “나의 단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라고 했고, 포도나무에게 왕이 되라 했더니 그도 역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버릴 수 없노라.”고 했습니다. 다들 아무리 좋은 자리요, 좋은 일이라도 자기에게 맞지 않은 것을 할 수 없고,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을 버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어리석은 가시나무만 할 줄 모르면서 ‘왕이 되겠노라’ 한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벗어나면 고달픕니다. 여자가 남자가 될 수 없고, 무화과나무가 감람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을 수 없습니다(약3:12). 그러니 없는 것 탓하며 살지 마세요. 못하는 것 하면서 진 빼지 마세요. 내게 있는 것과 내가 잘하는 것을 찾아 그것을 삶 속에, 신앙생활 속에 활용하세요. 장담컨대 인생이 신바람날 겁니다.
할렐루야!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남의 억만금보다
내 백만 원이 낫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