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기다림의 연속
사람이 게임에 빠지는 이유 중에 하나는 게임은 명확한 보상이 수치화되어서 주어지기 때문이다. 조건을 만족시키면 주어진 보상을 얻기에 사람들이 게임에 빠진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 세계는 불확실하다. 무언가를 했다고 해서 적절한 보상이 따르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얻었던 것들을 잃을 수도 있다. 앞날을 정확히 안다면 현재 상황이 좋지 않아도 순간순간을 기대로 채울 수 있지만 불확실하기에 그 기대는 두려움으로 변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하고 5년째가 되어 열매를 먹기까지의 그 기다림,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이삭이 태어나기까지 25년의 기다림. 그 기다림은 어떠했을까? 원하는 것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지루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도종환 시인의 시구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는가. 그 고통을 감내하고 나서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큰 은혜와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으며, 아브라함은 기다림으로 아들을 통한 큰 민족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요는 거저 얻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견디는 인내와 하나님께 순종하며 기다릴 때 삶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기다림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약속에 대한 기다림이다.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어도 인고의 시간을 지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더 단단한 믿음이 되기를 기도하자.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3:25~26).
김성일 집사
믿음의 사람들
우리나라 복음의 역사를 보면 놀랍게도 우리가 잘 아는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가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수만 권의 한글 성경이 제작, 배포되어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선교사들이 이 땅에 들어왔을 당시에는 벌써 수많은 조선인들이 선교사가 와서 세례를 베풀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고, 이렇듯 간절히 사모하는 심령과 미리 뿌려진 말씀의 씨앗을 기반으로 곳곳에 교회가 세워졌으며 그때부터 폭발적인 부흥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반만년의 역사 가운데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암흑의 일제강점기, 가슴 저린 동족상잔의 비극과 외환위기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위기를 겪은 이 나라는 단순한 시각으로 보면 고난과 어둠으로 점철된 듯하다. 그러나 흑암을 이기고 마침내 광복을 맞이하고, 전쟁으로 폐허가 됐음에도 전 세계에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급성장을 이룬 것에서 나아가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치러냈을 뿐 아니라 온 국민이 마음과 힘을 모아 IMF를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며 전 세계는 그 저력을 인내와 끈기로 대변되는 우리 민족성에서 찾기도 했다. 그러나 그 저력은 단연코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하사 선교국가로 사용하시려 이 나라를 더 세밀하게 간섭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금까지의 역사를 통하여 잘 알고 있다. 복음이 들어온 후부터 나라에 위기가 올 때마다 믿음의 선친들의 피눈물 어린 기도와 핍박과 위협을 이겨낸 순교는, 그때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시는 하나님을 움직였고, 그 역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악한 마귀는 지금도 개인과 가정, 교회, 사회 곳곳에서 우리를 속이며 분열과 분쟁을 일으키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파괴하려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가 깨어 진리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악한 마귀의 화전을 소멸해버리고 화평을 이룰 때, 마침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승리를 얻을 것이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눈을 들어 바라보고, 소망하며, 기도하고, 선포한다. 이 나라 이 민족이 하나님의 손에 들린 복음의 도구로 우뚝 서기를, 우리와 우리 후손들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행복한 나팔수로 이 땅에 살아가기를!
이국진 사모
Only believe
얼마 전 딸아이가 위인전 ‘베토벤’을 읽다 말고 책을 덮더니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이제 베토벤은 완전히 망했어요. 귀가 안 들리거든요.” 당황한 나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들려주며 다시 읽어보라고 격려해줬다. 웃으며 지나친 일이지만, 한숨을 쉬며 책을 덮는 모습이 혹시 나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때때로 닥쳐오는 인생의 어둠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회당장 야이로는 죽어가는 딸을 살리기 위해 믿음으로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간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과 동행하는 동안 드라마틱한 사건이 벌어진다. 오랫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만을 만지고도 깨끗함을 받은 것이다. 그 장면을 목격한 야이로의 마음속엔 기대감이 가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붙들고 있던 희망의 빛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나였다면 극도의 두려움과 절망감에 휩싸여 공황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혈루증 여인은 고치셨는데 내 딸은 왜….’라는 원망이 먼저 튀어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막5:36). 야이로가 할 수 있는 일은 믿음으로 절망의 발을 힘겹게 들어 올려 예수님과 함께 집을 향해 걷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달리다굼’ 하시는 명령과 함께 그의 딸이 살아났을 때, 그는 분명 이전과는 전혀 다른 수준의 믿음의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처절한 십자가 죽음만 보고 성경을 덮어서는 안 된다. 진짜 하이라이트는 그분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제자들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친히 그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
모든 희망의 빛이 사라졌을 때에도 하나님은 계획하신 대로 움직이고 계신다! 우리의 믿음은 절망의 어둠을 생명의 빛으로 반전시키시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우리는 깊은 어둠 속에도 두려움을 이기고 오직 부활의 능력을 믿으며 묵묵히 나아가야 한다. “Only Believe!”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11:40).
이호은 사모
암 걸려서 좋아요?
“암 걸려서 좋아요?” 항암치료 중 지인이 내게 물은 말이다.
말기암 진단부터 수술 두 차례와 계속되는 항암치료 중에 항상 웃음과 평강과 감사가 떠나지 않는 것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답을 하자면, 암 걸려서 정말 좋았다. 올 3월 초 말기 대장암을 선고받고 종합병원에서 두 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종양의 크기는 인터넷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크고 형상은 끔찍했다. 아마 회사가 어려워지던 십 년 전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암의 씨가 된 모양이다. 그 큰 덩어리를 넣고 살았으니 뿜어내는 독소에 몸이 정상일 리가 없었을 것인데, 회사 파산 후 예수중심신학교에 입학하여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세상과 절연하고 살았으니 치료받을 처지도, 돈도 없었다. 좋지 않은 몸 상태로 신학생의 의무적인 봉사활동 때문에 힘든 상황이 계속 되었다. 당연히 눈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힘이 드는 봉사에서는 빠지게 되어 주로 인천교회의 밤 근무를 도맡아 하며 그 시절 신학과 성경공부를 원 없이 하였으니 그 또한 은혜였다.
졸업 후 종로기도처에서 목회 4년 차, 밥을 넘기기가 힘든 고통 속에 인근 병원을 찾아 내시경검사를 하니 꼭 보호자와 같이 오라고 한다. ‘말기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평강은 다소 생뚱맞게 느껴졌다. 내가 현실감이 없어서일까. 가까운 종합병원을 찾아가서 내시경으로 검사하니 마찬가지 결과였다. 암이 너무 크게 퍼져있어서 수술하기가 힘드니 항암치료로 병소를 줄이고 난 후 수술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PET/CT의 결과는 전이가 없는 상태였다. 암세포가 있는 곳이 밝게 빛나는 형상인데 내 사진은 아랫배에 크게 뭉쳐있는 빛이 감사하고 경이로웠다. 그 큰 암 덩어리가 전이 없이 한군데 뭉쳐있는 것이 기적이다. 암의 크기에 수술을 주저하던 의사가 수술을 결정하여 시행했다. 소심하던 내가 어찌 그리 평안히 수술을 받을 수 있는지 신기했다. 수술을 마치고 하루 만에 봉합했던 장이 터져서 7시간의 대수술을 겪었다. 불과 일주일 만에 내시경 세 번, 수술 두 번을 감내해야 했다. 목사님께서 올 초에 지나시면서 ‘이제 너를 버려라’ 하셨는데 그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 이런 죽음을 넘나드는 과정을 겪게 하신 모양이다.
30년 전 ‘너는 목자의 길을 가라’ 하심이 뒤늦게 회사가 파산하며 30년 후에 이루어지니 내 회사의 파산은 목사님 기도 때문이다. 이시대 목사님이 내 기도를 쉬지 않으셨다는데 내용은 참으로 바닥까지 내려와 자아가 완전히 부서지기를 기도하셨다니 내가 겪는 수술과 항암치료는 이시대 목사님 덕분이다. 기도처에 한 성도분이 내가 눈이 맑아지고 겸손해지셨다고 한다. 나귀를 들어서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이 또한 하나님께서 인증하신 것 아닌가. 총회장 목사님께서 나의 거듭남을 축하하시고 이시대 목사님도 ‘이제 되었다’ 하시니 진정 고난이 유익이다. 매일 매일이 감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 병원의 의료진은 말할 것도 없고 한의원 원장님부터 여러 간호사들을 만나게 하시고 극진한 치료를 겸하게 하셨다. 물질에 부족함 없게 하시고, 약초를 취급하는 심마니까지 만나게 하셨다. 항암에 좋다는 겨우살이, 말굽버섯 등 귀한 약재들을 무상으로 주어 냉장고를 꽉 채워놓고 먹고 있다. 그저 하나님의 배려는 놀라울 뿐이다. 내 운동을 도와주고 세심하게 나를 살펴주었다. 몇 주일 전에 산삼을 캐 와서 내게 가장 큰 산삼을 주었다. 성의는 고마우나 먹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 대신 내가 신세 진 목사님이 있으니 갚아야 될 빚이 있는 은인에게 먼저 갚게 해달라고 했다. 심마니가 놀래하면서 산삼을 앞에 두고 남 생각부터 하는 분은 처음이라고 한다. 산삼 한 뿌리를 포장하면서 새끼 삼 한 뿌리를 더 넣었다고 한다. 나중에 개봉해보니 거의 같은 크기의 산삼이 들어있었다. 만나 물으니 왠지 그래야 될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한다. 마침 지인이 감동이 와서 봉투를 주었는데 산삼 값으로는 터무니없지만 내 처지를 아는 심마니는 기꺼이 받았다.
밤늦게 총회장 목사님께서 전화하셨다.
“야, 이놈아. 이걸 네가 먹어야지 내게 주면 어떡하냐?” 하시며 고마워하셨다. 문득 생각해보니 나와 직접적 연관이 깊은 이시대 목사님이 마음에 걸렸다. 응답일까. 심마니가 일주일 만에 또 산삼을 캐왔다. 이번에는 보는 앞에서 드시라고 가장 큰 산삼을 꺼낸다. “아직 신세 못 갚은 사람이 있으니 이번에도 성의껏 돈을 마련할 테니 산삼 세 뿌리를 더 주시오.” 부탁했다. 이시대 목사님과 어려울 때 생활을 도와주던 친구 집사람, 집세를 지원해주는 전 직원 출신 사장에게 줄 산삼을 배달하는데 심마니가 차를 가지고 동행해주었다. 삼을 배달하는 중에 전 직원이 봉투를 마련해주었는데 참 기가 막히게도 심마니에게 내가 주겠노라 약속했던 금액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봉투째 전해주고 나니 마음이 어찌나 개운하던지.
주님, 감사합니다. 내 마음속에 조그만 부담마저도 덜어주시니 앞으로 주님께서 배려하신 그 길을 더욱 기쁘게 갈 수 있겠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처, 자식 걱정 없이 인도하시니 이까짓 세상살이 뭐 그리 힘들겠습니까? 그저 인도하심대로 아니오 없이 가겠습니다. 의사와의 진료를 앞두고 이 간증을 쓰면서 진료 호출에 면담하니 ‘최종 CT와 피검사 결과가 너무 깨끗하고 다른 모든 장기가 아무 이상 없으니 12차로 예정된 항암치료를 8차로 종료하겠습니다.’ 한다. 오 주여,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던 8차 종료를 현실로 이루게 하셨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암 진단부터 항암 종료까지 5개월도 걸리지 않았으니 놀라울 뿐이다.
이제 무슨 망설임이 있으리오. 사람에게 진 빚을 다소나마 갚았으니 앞으로의 길은 주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에 보답하는 보은의 길을 걷도록 인도하소서. 내가 부족할 때 주님이 더욱 드러나시니 약한 나를 보게 하시고 주님의 겸손한 종으로 거듭나게 하시니 무엇이 두렵고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주님 뵈올 그곳에 이를 때까지 그저 돌아보지 아니하고 종의 길을 묵묵히 순종하며 걷게 하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이광주 전도사
토기장이의 꿈
나이가 들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돈이 있든, 돈이 없든, 똑똑하든, 그렇지 않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과 각자 가지고 태어난 기질과 성품이 다르다는 것. 그래서 남을 크게 부러워할 것도, 부끄러워할 것도 없으며 나만이 지닌 고유한 매력이 무엇일까, 주어진 나의 그릇 모양을 찾아가며 잘 갈고 닦으면 된다는 것이다.
정말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실까? 당신은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믿고 있는가? 우리들의 삶에는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난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하나님한테 버림받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혹은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면 ‘하나님 뜻’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IMF 이후 우리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던 중 대구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나는 어느 한 곳 다치지 않았지만 몰았던 차를 폐차할 만큼 큰 사고였다. 사고 소식을 전해들은 부모님께서는
“차는 중요하지 않다. 네가 다치지 않아 감사하지! 사고는 보험처리하면 되니 걱정 말아라.”하며 나를 안심시키셨다. 허나 부모님의 말씀과는 달리 모든 상황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경찰 조사결과 100% 나의 과실로 결정되어 난 가해자가 되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입해두었던 자동차보험마저 설계사의 실수로 인해 운전자범위특약에 따른 문제가 발생하여 무용지물, 그런데 이 사실을 안 피해자는 TV에서만 봐왔던 악덕한 사람으로 돌변해 터무니없는 위로금과 합의금을 요구해왔다. 나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보험회사, 경찰서, 변호사, 금융감독원에 분쟁조정 신청 등 쫓아다니며 애써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결국 우리 가정은 또 다시 나락으로 떨어져 단칸방으로 이사해야 했다.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난 이 모든 화살을 하나님께 쏘기 시작했다. “하나님, 도대체 뭐 하자는 겁니까?”라고 따지고, “나는 그렇다 치고 부모님과 동생은 왜? 이렇게 내 가족들 힘들게 할 거면 그냥 나 데려가요.”라고 협박하고, 심지어 “이런 게 무슨 사랑이야, 웃기시네!”하며 하나님을 비난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몇 주간을 하나님과 전투태세로 지내던 중 직장인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도예공방으로 견학을 가게 되었다.
흔하고 흔한 흙이 단단하고 아름다운 빛을 내는 도자기로 변신하는 것이 참으로 신기해 도예가에게 도자기를 만드는 흙이 따로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일반인이 보기에는 차이가 없는 흙이지만, 흙마다 들어있는 성분이 다르기 때문에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며, “청자를 만들 때는 철성분이 든 흙으로 빚고, 도자기는 구리성분이 든 흙으로 빚는다.”고 했다. 또한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어떤 용도의 그릇을 만들지 계획을 세운 후, 그에 맞는 흙을 고르고, 원하는 자기를 만들기 위해 유약을 입히고 불가마에 넣어 불의 온도를 조절해가며 계획했던 용도의 도자기, 그릇, 다기 등을 만들어낸단다. 물론 흙으로 빚을 땐 계획했던 모양이 만들어질 때까지 빚어대고 때론 의도하여 표면을 눌러 자국을 만들고 흠집을 낸다고 했다. 문득 성격 속 이야기 중 ‘토기장이 비유’가 생각났다.
매일같이 하나님과 전투태세였던 나는 퇴근 후, 예레미야 18장 1~12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계획과 진흙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다 조르듯 “찌그러져있는 진흙인 나,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대로 최선의 것으로 만들어주실 거죠?”하며 기도했다. 나의 삶에 상처가 나고 금이 생기고 무너져 내려앉은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무너져 내린 내 삶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회복시키시는 뜻과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밑거름이라는 것을 믿기 시작할 때 나를 만드신 토기장이를 고백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수많은 환경 속에서 내 삶에 허물을 보게 하시고, 약함을 보게 하시고, 나를 찌그러트리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내가 어떻게 순종하고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을 끊임없이 물어보게 만드셨다. 왜?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토기장이의 의견이 내 삶의 ‘베스트(best of best)’다. 토기장이가 낸 흠집은 흠집이 아니라 예술의 혼을 불어넣은 포인트임을 잊지 않기를 소망한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기 23:10).
Dr. 권정미 성도
jmgood77@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