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바꾸려면 생각과 언어를 바꿔라 (잠18:20~2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
성경을 펴면 첫 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천지만물은 다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 그대로 되니라”(창1:6~7). 그런데 이 말씀을 잘 보면 ‘가라사대’라는 말씀이 꼭 나옵니다. 이는
‘말씀하시되’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은 천지를 말씀으로 명령하셨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요1:1~4). 이사야 55장 11절에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며 하나님 말씀의 능력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말씀으로 귀신을 쫓고 만물을 명령하셨음을 사복음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곧 우리의 구원도 말에 있으며, 우리의 간구도 기도, 곧 말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자로(창1:27), 말의 권세도 닮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언어를 허락하셨고, 그 말에 능력을 주셨는데, 우리의 말하는 것을 듣고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신다고 하셨습니다(민14:28).
사람들도 ‘말이 씨’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씨 속에 생명이 있듯 말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씨를 심듯 좋은 말을 삶 속에 심어야 합니다.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약3:12).
민수기 14장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12명의 정탐꾼을 파견합니다. 그런데 40일간 정탐을 마친 그들의 평은 너무 달랐습니다. 똑같은 곳을 똑같이 보고 왔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가나안 땅이 좋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와 같아서 거기 가면 다 잡혀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 부정적인 보고에 백성들은 원망을 합니다. 10명의 정탐꾼이 나쁜 씨를 뿌렸는데, 백성들이 거기에 물을 준 것입니다. 당연히 나쁜 결과를 주렁주렁 맺을 수밖에요. 그 결과입니다.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으로 모세를 원망케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민14:36~37). 부정적인 말에 동조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결과는요?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수 사십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찌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
(민14:
32~34). 이는 “마음이 사특한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잠17:20)는 말씀이 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10명과 달리 보고한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겠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은 너무 아름답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능히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겁내지 말라’
(민14:6~9)고 했습니다. 아주 좋은 씨를 뿌린 겁니다. 당연히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되지요.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민14:38).
여러분, 좋은 말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잠12:14)는 말씀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위인들은 상황이 어떠하든 그 입술을 지켰습니다. 다윗은 처참한 지경에서도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23:6)라고 말하더니 그의 말년이 부하고 존귀했고, 욥은 자식이 다 죽고 재산이 다 날아간 상황에서도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라고 말해 갑절의 축복을 받았으며, 사도 바울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고백했습니다.
인생은 말(言)을 타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말(言)과 말(馬)은 다스리기 나름입니다. 야생마는 그야말로 천방지축입니다. 아무것이나 걷어차고 부수고 날뜁니다. 말
(言)도 그렇습니다. 자고로 터진 입이라고 말을 막 하는 것을 보면 참 가관입니다. 상스러운 말, 부정적인 말, 남 상처 주는 말…, 건질 말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들의 75%가 부정적이고 나쁜 말이라고 어느 연구소에서 연구 보고한 적이 있습니다. 다스리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3:8).
그런데 말을 다스리기 전에 먼저 다스릴 것이 있으니, 그것은 마음입니다. 자고로 말이란 생각이란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생각이 설계사와 같다면, 말은 설계대로 집을 짓는 건축가와 같습니다. 마음속에 불평불만이 가득한데 감사의 말이 나옵디까? 마음에 온갖 추한 것이 가득한데 경건한 말이 나옵디까? 병 속에 오렌지 주스가 들어있으면 오렌지 주스가 나오지 토마토 주스가 나오지 않습니다. 병에 오물이 가득하면 오물이 나오는 겁니다. 곧 말이란 생각의 외형이라는 것이죠.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에 떨어졌을 때도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3:17~18)라고 당차게 말한 것은, 그들 마음속에 굳은 신앙이 자리하고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를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아이고, 못 살겠다.’, ‘이놈의 팔자야.’, ‘죽는 게 낫지.’ 이렇게 뿌리면 정말 그대로 됩니다. 그대로 되어야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아니겠습니까?
언젠가 제가 초소형 녹음기를 차고 목사인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자가 진단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날 밤에 집에 돌아와 녹음된 제 말을 들어보니 정말이지 부정적인 말 하나 없이 다 긍정적인 말, 남을 살리는 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녹음되어 있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사실 저는 야생마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실수도 많이 하고, 손해도 많이 보고, 수치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런 제가 성령을 받고 저의 내면이 달라지니 말이 달라졌고, 말이 달라지니 행동이 달라졌고, 그것이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뿌리가 썩은 나무에 물을 주면 더 썩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더러운 것들을 쏟아내고 긍정과 감사와 사랑으로 채워보세요. 그러면 말이 예뻐집니다. 말이 고와지고, 말이 긍정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것이 당신의 삶을 아름답게, 곱게, 긍정적으로 만들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고 하셨습니다. 온전하게 되는 길이요? 말, 말조심하면 됩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약3:2).
잘못 뿌린 씨가 있거든 싹이 나기 전에 기도로 뽑아버리고, 이제부터는 좋은 씨를 뿌립시다. 좋은 말, 긍정적인 말, 감사의 말, 칭찬의 말, 남을 살리는 말, 믿음의 말을 하며 삽시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벧전3:10~11). 할렐루야!
생사화복이
네 혀에 달려있다
인생은
말로 채색되는 예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