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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인간사 인과응보, 자업자득이다

1008호 · 2019-06-23

인간사 인과응보(因果應報), 자업자득

(自業自得)입니다. 즉 어떤 일의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그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원인과 이유가 있었다는 말이고, 자기가 저지른 일의 과보(果報)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이 인과응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제 70평생에 무를 심고 배추 거두는 것을 못 보았고, 장미를 심었는데 국화가 나는 것을 못 보았습니다. 어디 농사뿐이겠습니까? 인생사 전반이 다 그렇습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7:16~18). 이 말씀은 과정은 결과를 대변할 수 없지만, 결과는 과정을 대변한다는 말씀입니다. 과정이 나쁘면 결과도 나쁘고 과정이 선하면 결과도 선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결과) 비판하지 말라(과정)고 하셨고, 정죄를 받지 않으려면(결과) 정죄하지 말라(과정)고 누가복음 6장 37절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접을 받으려면(결과) 먼저 대접하라(과정)고도 하셨습니다(눅6:31).

그런데 말입니다. 씨를 하나 심었다고 열매가 한 개만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씨는 하나 심었는데 많은 열매가 열리는 것처럼,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와 함께 또 하나의 진리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는 것입니다. 산에 올라가서 ‘야호’ 한 번 했는데, 메아리는 ‘야호! 야호! 야호!’ 하고 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남을 한 번 비판했는데, 나를 향한 비판의 삿대질은 엄청 많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저주했는데, 저주가 흔들어 눌러 넘치도록 내게 온다는 겁니다. 성경도 말씀합니다.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시109:17~18). 시므이는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달아날 때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저주했습니다(삼하16:5~13). 그러나 다윗이 저주를 받은 게 아니라 시므이는 솔로몬 왕 때 왕명을 어겨 참수형을 받고 죽었습니다(왕상2:36~46). 모르드개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한 하만도 결국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자신이 준비한 장대에 달렸습니다(에7).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판 셈입니다. 또한 히스기야와 여호와 하나님을 저주하고 놀리던 산헤립도 18만 5천명의 군대가 전멸하고, 자신도 그 몸에서 난 자들에게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대하32). 다윗을 저주한 사울의 결국이 비참함도 인과응보요, 자업자득인 셈입니다. 남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내 눈에서는 피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나의 삶은 10년 전, 20년 전에 내가 뿌린 것의 결과입니다. 인생이 가시밭길입니까? 내가 뿌린 겁니다. 아내가 당신을 냉대합니까? 잘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아내에게 어떻게 했었는지. 콩 심은데 콩 나지 팥 나지 않거든요.

이제라도 잘못 뿌린 것은 거둬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나 그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대까지 보응하리라”(출34:6~7).

‘나와 마음이 합한 자’라 칭한 다윗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처를 취하기 위해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인 일을 하나님은 다 보셨습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책망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고, 하나님은 용서하셨지만 죄에 따른 보응은 받게 하셨습니다.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삼하12:10~11). 정말 이것은 사실로 이루어져 큰 아들 암논이 이복형제인 다말을 범하자 이에 분노한 둘째 아들 압살롬이 암논을 죽였고, 그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요압의 손에 죽었으며, 셋째 아들 아도니아는 왕위 계승과 다윗의 첩을 달라고 하다 솔로몬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또한 압살롬이 다윗의 첩을 대낮에 왕궁에서 취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물론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도 다윗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죽었습니다. 씨는 하나 뿌렸는데 열매는 이렇게 여러 개 열린 것입니다.

옛말에도 ‘남을 저주하려면 무덤을 두 개 파야한다’고 했습니다. 내 것도 파야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남에게 좋은 것을 줍시다. 그러면 좋은 것이 흔들어 눌러 넘치도록 옵니다(잠11:25). 요셉은 계속 선을 심었습니다. 그랬더니 선이 흔들어 눌러 넘치도록 왔습니다. 바로의 꿈을 해몽해주고 국무총리 대신의 자리에 올라 애굽과 인근 나라의 백성을 기근에서 구했고, 더욱이 아버지와 형제들과 해후하는 감격을 누리게 됩니다.

축복을 심으면 축복이 흔들어 눌러 넘치도록 옵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이 넘치도록 옵니다. 그래서 성경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하셨고(롬12:17). 악을 선으로 이기라고 하셨으며(롬12:21),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라’고까지 말씀하신 것입니다(마5:44).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미워했습니까? 남편이 돈 못 번다고 ‘나가 죽어라’고 저주했습니까? 자식에게, 시부모에게 어찌했나요? 회개해야 합니다. 잘못 뿌린 것은 뽑아버리고 이제라도 사랑한다고, 축복한다고 뿌리십시오.

여러분, 내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겁니다. 생사화복을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신30:15~16).

그러니 잘 심으세요. 좋은 것을 심으세요. 그러면 사(死)와 화(禍)가 절대 나지 않을 것이고, 생(生)과 복(福)만이 흔들어 눌러 넘쳐날 것입니다. 상사가 사사건건 나를 힘들게 해도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세요. 그러면 내 인생에 축복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 상사를 치워주실 것이고, 내가 승진되게 하실 것입니다. 못된 이웃이 있습니까? 그래도 무조건 축복하는 겁니다. 국가나 기업이나 교회나 개인이나 남에게 좋은 것을 주면 이 땅과 내세에서 좋은 것으로 받게 됩니다.

오늘부터, 지금 당장 아내에게, 남편에게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세요. 자녀에게도 ‘축복한다’고 하세요. 부모님께도 아낌없이 ‘사랑하고 축복합니다.’라고 말하세요. 직장 동료나 이웃에게도, 구역 식구에게, 그리고 이웃나라까지도 사랑하고 축복합시다. 그래야 내게,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우리나라에 축복이 흔들어 눌러 넘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남을 저주하려면

무덤을 두 개 파라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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