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가야할 길이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을 온 천하에 전하는 일은 멈출 수 없는 우리의 사명이다
목사님이 하신 말씀 중에 생각나는 것이 있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다.”
맞다. 인류 역사의 진보는 중도에 포기한 사람들이 아니라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정신으로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정진해간 사람들로 인해 이루어진 것 아니겠는가. 목사님의 35년 목회를 보아도 이런저런 일들에 휘둘려 하나님께서 목사님에게 맡긴 사역을 중도에 포기했더라면 오늘의 목사님도, 예수중심교단도 없다. 목사님과 함께 일을 시작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중도에 포기한 사람들은 지금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다. 목사님이 “시작을 함께 하는 사람보다 끝을 함께 하는 사람을 원한다.”고 강조하시는 이유다.
우리는 분명히 가야할 길이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지상명령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목사님은 35년 목회노정에 단 한 번도 이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고, 이 일을 수행하는데 최우선의 가치를 두고 달려오신 분이다. 이러한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에 핍박과 환난이 몰아치는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초지일관, 항구여일하게 이 길로 정진해 오신 것이다.
지난주일 3부 예배를 마치며 ‘비바람이 갈 길 막아도 나는 가리라’는 찬양을 부를 때, 목사님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선포하셨다.
“나를 원망하든 비판하든 헐뜯든 나는 내 길을 갈 것입니다!”
목사님의 오늘을 있게 한 정신을 단 한 문장으로 압축한 말씀이라 생각된다. ‘병사는 죽어도 전쟁은 이겨야 하고 핍박과 순교가 와도 예수는 증거되어야 한다’는 목사님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문장이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원망불평하며 인생사의 갖가지 희로애락이 삶을 어지럽힐지라도, 거센 비바람에 흔들리는 돛대를 바로잡아 기어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려는 고군분투의 정신이 뚝뚝 흘러내리는 말씀이다.
2000년 겨울, 아르헨티나(Argentina)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에서 집회를 마치고 이동 중에 있었다. 도심 거리에 작은 조각상이 있었는데 마상(馬上)에서 칼을 높이 빼들고 진격을 명령하는 장군의 모습을 조각한 것으로 기억한다. 목사님은 갑자기 그 위로 올라타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야, 우리 복음이나 전하자.”
당시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신 연유를 이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는 우리 삶의 방향과 대오를 일순간에 정리해주는 말씀이었다.
목사님은 해외집회 영상을 편집하실 때도 반복해서 하시는 말씀이 있다.
“그래, 내가 할 일은 이거야!”
인생의 온 방향을 오직 하나님이 맡기신 사역을 수행하는 일,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부도내지 않으려는 책임감으로 정신을 조직화해 오신 목사님의 철학이 문뜩 문뜩 단문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라 생각된다.
사노라면 여러 가지로 번민하며 고통스러울 수 있고, 기쁨과 슬픔, 성공, 좌절, 인간관계의 번잡한 고민들로 숨쉬기조차 힘겨울 때도 오리라. 이 땅의 삶을 사는데 당연히 따르는 일들이다. 특별할 것도 없다. 악한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생의 암초들은 늘 다가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화만이 답이다. 복잡다단한 일들로 휘둘릴 때 목사님처럼, 자신의 분명한 목표를 자각하고 단일대오를 이루며 달려 나가는 자세로 스스로를 곧추세우는 일은 매우 지혜로운 처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가야할 길이 있다. 우리가 하늘의 부르심을 받아 이생과 작별하는 그날까지 가야할 길이다. 교회의 존재목적,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이루는 길, 곧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복음전파의 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비바람이 갈 길 막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도 바울을 본받아, 목사님을 본받아 이 길을 가는 것이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
한은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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