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그릇은 빈 그릇이다
우리가 세상 사람과 달리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오직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믿는 믿음이 있기에 비록 손해 볼 줄 알면서도, 바보,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양보하고 용서하고 배려하려 애쓴다. 세상의 잣대에 비춰 그들의 생각과 달리 세상과 구분된 생각과 말,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내 뒤에 나를 책임지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오리를 같이 가자고 하면 십 리를 동행해주고, 속옷을 달라할 때 겉옷까지 벗어주며, 오른뺨을 치면 왼뺨마저 돌려댈 수 있는 능력은 결코 인간인 내 속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이 아니다. 이는 오로지 하나님께서 그리하라고 명령하셨기에, 원수마저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 하셨기에 나를 누르고 누르며 그 말씀(마5:39~44)에 복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수준이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결코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내 자아가 펄펄 살아있어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정신,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야 가능한 일이다.
지난 수요저녁예배 때 이시대 목사님은
‘능력 있는 자가 용서하며 사랑과 용서에는 생명의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상황에 용서하는 것이야 뭐 내세울 것이 있겠는가마는, 왜냐하면 이는 세상 사람들도 다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에 돌이켜 사랑하려 애쓰고, 용서할 수 없는 억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용서할 때, 생명의 능력이 샘솟는 것이다. 크리스천의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결단에서 비롯된다. 나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나를 변화시키는 결단, 바로 여기에서 크리스천의 능력이 발휘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원망하고 불평하며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누군가의 행동에 서운하고 괘씸하고 억울함을 느끼는 것은 그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나의 자존감이 침해당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분쟁과 갈등, 원망과 분노가 싹트게 되는 시발점이다. 그 옛날의 전쟁은 이런 단순한 판단에서 시작되었고, 그로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명분 없는 싸움에 휘말려 죽어가기도 했다.
나를 비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한다. 목사님은 말씀하셨다. “큰 그릇은 비어있는 그릇이다.” 아무리 커도 거기에 온갖 물건으로 가득 차 있다면 더 이상 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비워야 한다. 내려놓아야 한다. ‘이기려면 버려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나를 비우고 예수로 채우는 삶, 사랑과 용서라는 생명의 능력도 여기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