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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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2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고난은 삶의 파트너

972호 · 2018-10-14
아름다운 인생

목사님은 ‘~덕분에’와 ‘~때문에’라는 설교를 종종 하신다. ‘~덕분에’는 긍정적인 마인드요, ‘~ 때문에’는 부정적인 마인드로 말씀하신다.

내가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사람들은 ‘좀 더 안정적이고 돈을 잘 벌 수 있는 다른 일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분명 하나님이 감동을 주신 일이었지만, 타인들로 인해 나는 갈등했다. 그래서 다른 분야의 일들을 알아보고 취득한 자격증만 10개가 넘는다.

하루는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게 어른들이 나에게, “너는 아버지도 안계시고, 누가 도와줄 상황도 아니니까 남들보다 수십 수백 배 노력해야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정말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 서럽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맞아, 내 주변에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어.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잖아.”라고 마음을 다잡았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다.

이 시점에서 나를 돌아보니 감사한 일 뿐이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 덕분에 자격증을 10개나 따게 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강사로 활동하게 되었고 활동범위도 넓어졌다. 또한 도와줄 사람이 없는 덕분에 더욱 기도하고 피나는 노력으로 지금은 잠 잘 시간이 없을 정도로 사업이 번창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고난이나 역경은 인생의 적이나 원수가 아니라 함께 가는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고난과 역경을 통해 깨닫고, 강해지고, 지혜와 감사를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바람과 뜨거운 태양을 맞으며 나무의 나이테가 굵어지는 것처럼. 그래서 고난이 유익이라고 하셨나보다.

이은성 성도

es2563@naver.com

신앙논객

진짜는 모두가 알아보는 법

얼마 전, 충북 음성의 한 쿠키 제과 전문점에 대한 소식으로 언론이 떠들썩한 일이 있었다. 내용인즉슨 대형마트에서 파는 제품을 겉포장만 새로 하여 유기농 수제(手製) 쿠키라고 속여 팔고, 롤 케이크 역시 대형 제빵회사의 제품을 재포장해 판매한 것이 소비자들에게 발각된 것이다. 인터넷 사이트와 SNS를 통해 명성을 얻고 매장 앞에 줄을 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이 가게는 결국 폐업하고 말았고, 음식 가지고 장난친데 대한 법적인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사건을 뉴스를 통해 접하면서, 아무리 포장을 새롭게 하고 진짜인 것처럼 속여도 내용물이 진짜가 아니면 결국에는 가짜인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도 그렇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을 듬뿍 부어주신다고 느낄 때는 모두가 진짜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기도하고 소원한 대로 응답이 오지 않고, 믿음으로 인해 작은 고난이나 핍박이 오면, 그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신앙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쿠키와 롤 케이크가 겉포장을 까서 먹어보면 알듯이, 우리의 신앙도 ‘교회 안에서의 모습’ 내지는 ‘잘 나갈 때’라는 포장지를 뜯어보면 안다.

예수님도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다.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으로 인해 환난이나 핍박이 있을 때 넘어지면 돌밭, 세상의 염려와 물질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서 삶에 열매가 없으면 가시밭이라고. 우리가 욥이나 다니엘의 신앙이 ‘진짜’라고 하는 이유가 모든 것을 빼앗긴 상황 속에서도 순전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뜻을 정하여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이 옥토가 되어 100배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실천하려는 영성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짜 하나님의 자녀, 진짜 천국 백성,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나의 믿음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만일 가짜라고 생각된다면 지금 즉시 포장지를 뜯어버리고 예수의 피로 새로운 믿음의 반죽을 시작하라. 진짜는 모두가 알아보는 법이니까.

신혁주 전도사

blessedmic@naver.com

생명의 말씀

예수가 중심이 된 교회

얼마 전 우리 교단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지인이 대뜸 하는 말, “교회 이름이 예수중심교회인데, 어떻게 이단입니까? 그거 본질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동안을, 어쩌면 늘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그 말이 내 귓전에서 계속 맴돌았다.

때를 거슬러 2002년을 회상해 보았다. 해외선교의 전환점이 되는 남아공 집회 현지에서, ‘예수중심교회’라는 새로운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성령의 역사가 더없이 뜨거웠던 현장에 있었던 나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이름과 현상이 일치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 모든 성령의 역사의 주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한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라, 그리스도 없이는 성령의 역사가 설명이 안 된다. 신앙의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만 설명이 된다. 우리가 처음 예수를 믿을 때에도 구속주로서의 예수를 믿고 난 뒤, 그분이 바로 창조주이심도 알게 되며, 그분의 영이신 성령의 일하심을 경험하며 살게 된다.

그런데, 교회사 가운데 그리스도교 전파를 막는 마귀의 전략이 있어왔다. 딱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집중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를 인간 선지자 중의 하나로, 혹은 예수 없는 구원의 길을 제시하며 예수를 깎아내렸다. 육체 안에 계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지 않으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성립되지 않는다. 우리 신앙의 중심에서 예수를 밀어내는 것이 마귀의 전략이다. 그래서, ‘모든 신학의 참과 거짓의 여부는 그리스도에 의해 판정된다’는 말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참 하나님으로 믿는가, 아닌가에 따라 그 열매의 진위여부도 결정된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참 하나님으로 믿을 때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성경이 말씀해주신다. 하나님의 성전 된 우리 안에 의와 불법이, 빛과 어두움이, 그리스도와 벨리알

(사탄)은 서로 조화되어 일할 수 없다

(고후6:14~15). 예수 이름으로 행하는 귀신축사의 진위여부를 놓고 소모적으로 논쟁하는 것은 누구를 기쁘게 하는 일인가 생각해볼 일이다.

송직화 목사

jesus_allinall@hanmail.net

::::에덴으로의 귀환

부지런한 자의 경영

우리 아버지께서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십니다. 가장 먼저 1시간 기도를 하시고, 사우나를 다녀오시면 새벽 6시 정도 되는데, 이 시간부터 우리 집은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정신이 없어집니다. 남동생 둘은 회사에서 새벽까지 야근을 하거나 늦은 밤까지 회식을 해도 어김없이 6시에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나지 않거나 꾸물대면 아버지께서는 작은 바가지에 찬물을 담아와 손가락으로 물을 튕겨 동생들을 깨우십니다. 어머니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에 더 재우고 싶어 하시지만 아버지께는 어림도 없는 생각입니다.

저도 회사를 운영하면서 밤늦게까지 일을 하거나 밤을 꼴딱 새는 일이 자주 있는데, 아침에 늦게 출근을 하면 어머니께서는 피곤한 제 모습을 안쓰러워하시지만, 아버지께서는 초췌한 제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되레 심하게 나무라십니다.

“대표이사가 직원들이 먼저 출근하고 나오면 회사가 잘 돌아가겠냐? 그렇게 게을러서 회사가 성공할 것 같으냐? 부지런히 기도하고, 부지런히 회사에 일찍 나와 직원들을 잘 관리해야지. 너 그렇게 사업하다가 망할까 겁난다.” 아침부터 이렇게 말씀하시는 아버지를 대면할 때면 귀를 막고 싶기도 했고, 짜증도 심하게 나서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빴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낮에는 바쁘게 움직이고, 밤새도록 쌓여 있는 수많은 일들을 처리하면서 부지런하게 경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자꾸 게으르다고 하시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루 종일 어떻게 일하고 얼마나 바쁜 일상을 보내는지 눈으로 보시면 그런 말씀을 못 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고, 업무의 특성상 체력을 요하는 일들이 많다 보니 가끔씩 숨이 턱턱 막혀올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의 심한 꾸중을 들으면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제 자신이 한없이 가엽고 불쌍하다 생각이 들고, 섭섭하고 속상한 마음이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제게 한 말씀을 주셨는데, 바로 잠언 12장 24절이었습니다.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이 말씀을 받고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저는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고 있는데, 직원들이 해야 할 일들도 제 몫이 되어 마치 제가 부림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는 스스로가 부지런하다고 생각했던 것뿐이지 경영자의 입장에서 부지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언젠가 말씀하시길 손이 할 일이 있고, 눈이 할 일이 있고, 머리가 할 일이 있어, 각자 맡은 본분에 맞게 일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머리가 할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조급한 마음에 손이 바쁘고 발이 바빠서 머리로서의 부지런함을 갖추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일찍 일어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이른 새벽에 몸을 청결하게 하고, 직원들보다 2시간 먼저 출근하셔서 아침 예배와 업무 계획을 준비하십니다. 그 말씀을 받은 이후로 사업에 성공한 아버지의 하루를 조금씩 모방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기도로 아침을 열고, 하루 일과를 계획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 출근 전 아버지 회사에서 드리는 예배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드릴 수 있게 되었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침을 여유롭게 시작하니, 하루 일과가 머릿속에 그려졌고, 효율적인 업무 분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 처리가 능숙한 직원들에겐 하루 동안 해야 할 업무를 정확하게 지시하고, 업무가 미숙한 직원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더욱 많아질 수 있도록 부지런히 가르쳤습니다. 이전엔 조급한 마음에 직원들이 해야 할 일들도 도맡아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제가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을 근무 시간 동안 다 처리할 수 있어 더 이상 밤을 새거나 과로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전엔 바쁘게 움직이고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부지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시간에 쫓겨 궁핍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제 비로소 진정 부지런한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부지런함이란 시간을 다스릴 수 있는 여유로움이 아닐까요?

김온유 집사

ceo@edenique.co.kr

From Internet

산삼도둑

나무꾼 박 씨는 걱정이 태산이다. 혼기를 한참이나 넘긴 딸이 올해는 가겠지 했는데 또 한해가 속절없이 흘러 딸애는 벌써 스물아홉이 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딸년 탓이 아니라 가난 탓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산에 올라 나무를 베서 장에 내다 팔지만 세 식구 입에 풀칠하기도 바쁘다. 가끔씩 매파가 와서 중매를 서지만 혼수 흉내 낼 돈도 없어 한숨만 토하다 보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세상에 법 없어도 살아갈 착한 박 씨는 한평생 배운 것이라고는 나무장사뿐인데, 요즘은 몸도 젊은 시절과 달라 나뭇짐도 점점 작아진다.

눈이 펄펄 오는 어느 날, 그는 지게에 도끼와 톱을 얹고 산으로 갔다. 그런 박 씨가 갑자기 털썩 주저앉았다. 새하얀 눈 위로 새빨간 산삼 열매가 보석처럼 반짝이는 것 아닌가. 그 산삼은 자그마치 일백 이십년 묵은 동자삼!!

박 씨가 일백 이십년 묵은 산삼 한 뿌리를 캤다는 소문은 금방 퍼져 저잣거리의 약재상이 찾아왔다. “박 씨, 산삼을 들고 주막으로 가세. 천석꾼 부자 황참봉이 기다리고 있네.”

박 씨는 이끼로 싼 산삼을 보자기에 싸들고 약재상을 따라 저잣거리 주막으로 갔다. 황참봉과 그의 수하들이 술상을 차려놓고 박 씨를 기다리는데 주막을 제집처럼 여기는 노름꾼들, 껄렁패들도 산삼을 구경하려고 몰려들었다.

마침내 박 씨가 보자기를 풀자 일백이십 년생 동자산삼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와~ 모두가 탄성을 지를 때 누군가 번개처럼 산삼을 낚아챘다. 일백 이십년 묵은 동자삼을 개뼉따귀 같은 노름꾼 놈이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는 것이 아닌가.

주막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런데 그 놈을 잡고보니 폐병으로 콜록콜록 하는 놀음쟁이 허골이었다. 제대로 놀음판에 끼지도 못하고 뒷전에서 심부름이나 하고 고리나 뜯는, 집도 절도 없는 젊은 놈팡이 허골은 코피가 터지고 입술은 당나발처럼 부어오른 채 황참봉 수하들에 의해 방바닥에 구겨져 있었다.

“이놈을 포박해서 우리 집으로 끌고 가렸다. 이놈의 배를 갈라 산삼을 끄집어낼 테다.”

황참봉의 일갈에 허골은 사색이 되었다. 바로 그 때 박 씨가 나섰다.

“참봉어른, 아직까지 허골의 뱃속에 있는 그 산삼은 제 것입니다요. 이놈의 배를 째든지 통째로 삶든지 제가 하겠습니다.”

듣고 보니 황참봉 할 말이 없다. 박 씨는 허골을 데리고 나와 언덕마루에서 그를 풀어줬다. 눈발 속으로 허골이 사라진 후 아무도 그를 본 사람은 없었다.

박 씨는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며 크게 한숨을 토했다.

“그걸 팔아 딸애 시집보내려 했는데…. 배를 짼들 산삼이 멀쩡할까, 내 팔자에 웬 그런 복이….”

3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봄날, 예나 다름없이 박 씨가 나뭇짐을 지고 산을 내려와 집 마당으로 들어오니, 갓을 쓰고 비단 두루마기를 입은 젊은이가 넙죽 절을 하는 게 아닌가.

“소인, 허골입니다.”

피골이 상접했던 모습은 어디 가고 얼굴에 살이 오르고 어깨가 떡 벌어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허골은 산삼을 먹고 폐병이 완치돼 마포나루터에 진을 치고 장사판에 뛰어들어 거상이 되었다.

꽃 피고 새 우는 화창한 봄날, 허골과 박 씨 딸이 혼례를 올렸다. 박 씨는 더 이상 나무지게를 지지 않고 저잣거리 대궐 같은 기와집에 하인을 두고 살았다.

세상에 제일 값진 것은 사랑이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용서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장 보배롭고 아름다운 이름인 것이다.

박덕규

빛이 되리라

존대어의 위력

남편이나 아내와 불화하십니까? 혹은 자녀와 소원하십니까? 물꼬를 트는 한 가지 방법은 존대어입니다.

한 생명의 탄생과 성장하는 모습은 부모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나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성년이 되면 관계가 소원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끈끈한 정을 토대로 바른 인성이 형성되길 원하신다면 부모가 자녀에게, 가족에게 존대어를 써보세요.

저는 전라도 최남단 제주도 바로 위 완도라는 섬, 아름다운 지리적 환경에서 낳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뜻도 모를 육두문자에 가까운 속어와 비어, 욕설이 난무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기에 삶에 염증을 느낀 저는 서울깍쟁이 바른 말씨, 예의 바른 사람들이 산다는 서울을 동경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 욕설들이 희미한 추억이 되어 미소를 머금게 하지만, 어린 시절, 특히 주위 분들에게 듣는 욕은 몸서리쳐지게 싫었고 적잖은 심리적 내상까지 입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억센 사투리일지라도 아버지는(국졸) 어머니께(무학), 어머니는 아버지께 서로 존대어를 쓰셨고, 동네 어르신들은 저희 가정을 평생 큰소리 한번 나지 않고 부부금실이 좋다는 평판을 어깨너머로 몇 번씩 듣곤 했습니다. 저도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고, 곧 존대어를 써주었습니다. 이 존대어는 자연스럽게 온 몸을 적시고 영혼까지 파고들어 지금은 어디를 가든 그 존대어가 가족의 자존감을 당당하게 업그레이드 시켜준답니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엄마가 메모를 하면 자식도 메모하고, 엄마가 항상 미소 지으면 자식도 항상 미소 지으며, 먼저 인사하면 자식도 인사 잘하고…, 여백이 부족할 것입니다. 제일 큰 농사가 자식농사라고 목사님이 설교하신 적이 있었는데, 백년대계, 만년대계를 내다보는 당신에게 특별한 가정교육 운운하며 열거하기보다 존대어의 참된 위력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노년에 깊은 주름살 속에서 장탄식을 토하지 않길 바래봅니다.

추성숙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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