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기적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부진하던 우리 대표팀이 6월 28일 새벽 F조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독일을 2대 0으로 꺾으며 1% 확률의 기적을 이뤄냈다. 경기 전 미국의 유명 통계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는 월드컵 F조 조별리그에서 한국이 조1위가 될 확률은 아예 없고, 2위를 차지해 16강에 진출할 확률이 1%라고 전망했다. 사실 세계 랭킹 57위 한국이 1위 독일을 이길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독일은 ‘디펜딩 챔피언’으로 역대 월드컵에서의 화려한 전적을 갖고 있으며, 유력한 우승 후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쏟아 독일을 F조 4위로 밀어냈다. 이 경기는 단순히 월드컵에서의 1승 경기가 아닌 절망적인 상황이어도 0.1%의 빛줄기라도 보인다면,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면 반드시 기적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교훈을 준 경기였다.
1%는 하찮은 것 같지만 너무나 소중하다. ‘1%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이 달라진다. 가끔 어떤 제품이나 사람을 놓고 1%가 부족하다는 말을 한다. 우리는 1%를 찾아내어 그 1%를 개발해야 성공한 완전품이나 인격이 된다. 사람들은 99%의 단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 안에 1%의 빛나는 장점이 있다. 그 1% 때문에 그를 믿어주고 밀어줘야 한다. 그래야 그 빛나는 1%가 다시 숨 쉬고 살아난다. 그 1% 때문에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듯이 말이다.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시며 역전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불가능이 가능하게 되고, 어떤 작은 것에서도 기적이 창조된다.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면서 홍해를 가르시고,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시고, 하늘에서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려주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40년 동안 광야에서도 옷이 낡지 아니하고 신이 해어지지 않게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인생은 끝나기 전까지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 끝난 것 같은 그 곳에서 하나님의 희망이 솟구쳐 오르고 하나님의 기적이 기다리고 있다.
1%를 100%로 만들어 기적을 이끄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노력하자. 반드시 성공의 역사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정금 전도사
jungkm@nate.com
겸손한 자와 교만한 자
춘추시대 제나라에 안영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안영이 시내를 나설 때마다 유난히 기고만장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말고삐를 잡는 경마잡이 종이었다.
어느 날 종의 아내가 심각하게 충고를 하였다. “안영은 비록 재상이지만 겸손한 자세가 역력한데 당신은 일개 종의 신분으로 무엇이 대단하다고 그렇게 오만방자한 자세로 거리를 활보하십니까?”
이 말에 들은 종은 그 다음부터 근본적으로 자세가 변했고, 이를 가상히 여긴 안영의 주선으로 차츰 성장하여 대신의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성경에 하갈이라는 여인이 있다(창16장).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몸종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는 여종의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아브라함의 부인이 되었고, 늙기까지 일점혈육을 두지 못하여 고민하던 아브라함에게 하갈은 아들을 낳아주었다. 그러자 하갈은 오만방자하여 주인 사라를 멸시하기 시작했다. 결국 하갈은 다시 하녀의 신분으로 환원되어 광야로 쫓겨나고 말았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는 원인이 무엇이었던가? 다윗은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고(행13:22), 사울은 하나님 앞에 교만함으로 ‘왕 삼은 것을 후회’(삼상15:11)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8:12)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또한 “겸손과 여호와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22:4)고도 말씀하신다.
우리 모두 하갈이나 사울의 전철을 피하고 다윗과 같이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서자.
김상욱 목사
ksw9669@hanmail.net
Right now
헬스를 시작한지 10년 정도 되니 종종 운동에 관해 질문을 받곤 한다. 언제가 운동의 최적의 시간인지, 최고의 운동은 무엇인지, 최고의 식단은 무엇인지, 최고의 다이어트 운동이 뭔지. 이 질문에 “지금 시간이 되시면 오늘 같이 운동해보자.”라고 한다. 그럼 혹자는 따라오지만, 혹자는 내일부터 하겠다고 한다. 그 순간 이미 그 사람의 미래가 보인다.
어떤 일을 하기에 좋은 시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어떤 일을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가 그 일을 위한 좋은 시간이 되어가는 것이지 좋은 시간, 최적의 때는 평생 찾아오지 않는다. 일의 성취엔 동기부여와 완벽한 계획보다 ‘행함’의 축적이 필요하다. 가슴이 뛰어야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뛰면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얼마 전 한 TV프로그램을 통해 차인표 씨가 하루 일과 중 자기 전 3시간을 ‘Right now’라는 시간으로 배정해 사용한다는 말을 들었다. 가장 사랑했던 막내 동생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동생의 눈을 보고 사랑한다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 동생은 형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고 갔다고. 그 이후로 다시는 꼭 해줘야할 말, 해야 할 일,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절대로 미루지 않고 곧장 하기로 다짐하고 실천해가고 있으며, 그 후로 삶이 풍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경도 중요한 모든 것을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히3:13), ‘해가 지기 전에’
(엡4:26) 하라고 명령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금 전화해야 한다. 부모님께 오늘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 오늘 묶인 문제를 위해 작정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오늘부터 성경을 보면 성경을 1독 할 수 있다. 지금 당장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기억하자. 마귀는 어떻게든 중단하게 만든다. 절망을 주던, 아프게 하든, 시선을 빼앗든 마귀의 목적은 단 하나, ‘중단’이다.
하나님의 시간은 ‘오늘’이고 마귀의 시간은 ‘내일’이다. 하나님의 일, 가치 있는 일, 소중한 일, 미래의 내가 고마워할 일이 있다면 ‘지금 당장’ 시작해라. 바로 그때부터 내 삶의 가장 좋은 시간,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가장 좋은 시간을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은총 전도사
unjena7@hanmail.net
고착상태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 ‘고착’이라는 말이 있다. 엄지손가락을 빠는 어린아이가 그럴 나이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손가락을 빠는 것을 고착된 심리상태라 한다. 어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늘 담요 한 장을 들고 다니는데 이 아이는 그 담요로부터 안정을 찾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부모가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커서 대학에 가면 그 담요를 어떻게 할 셈이냐?”라고. 그러자 아이는 대답했다. “이 담요로 운동복을 만들어 입겠습니다.” 여기에서 끝까지 담요를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고착된 심리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 신앙에도 이러한 고착 심리현상이 있다. 이것을 ‘영적 고착상태’라고 말하면 지나친 표현이 될지 모르겠지만, 과거에 집착하는 우리의 신앙 상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도 버리지 못하는 옛 습관, 그리고 아직도 벗어버리지 못하는 아집,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의 모습들, 예배 분위기는 조용해야지 꼭 손뼉 치며 찬양을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불만의 모습들…. 고착된 사고에서 벗어나야지만 놀라운 영적 변화와 진정한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코 라는 매우 존경 받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일본에게 항복문서를 받기 전에 맥아더 장군이 미주리 함으로 초청하여 자문을 구할 정도로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는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자살을 시도하게 되었는데,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다 깨닫게 되었다. 예수의 십자가는 죽음의 상징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표’라는 사실이었다.
이것을 깨달은 후부터 가가와는 소달구지에 짐을 싣고 빈민굴로 들어가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다. 그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한 번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나방이 나오려면 그 껍질을 깨야하고 병아리가 나오려면 계란껍질을 깨야 나오고, 새가 나오려면 알을 깨고 나와야 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창공을 날기 위해서는 나의 껍질을 깨트리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의 고착된 신앙 상태에서 깨어나야만 할 것이다.
차명선 목사
동네 골목길에서 공놀이를 하던 개구쟁이 소년이 실수로 소문난 호랑이 할아버지의 가게 진열장 유리창을 박살내고 말았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뛰쳐나와 호통을 치며 그 유리 값을 물어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린 소년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손이 발이 될 정도로 빌면서 사정을 했습니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우리 엄마에게 말씀 드려서 갚아드릴게요.” 그 소년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엄마에게 또 혼이 날까봐 말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소년은 호랑이 할아버지가 무서워서 학교도 가지 못하고 뒷동산에 가서 배회하며 불안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더 이상 그렇게는 살 수가 없어서 용기를 내어 울면서 엄마에게 사실 이야기를 했습니다. 혼이 날줄만 알았는데 엄마가 꼭 안아주면서 “아들아 괜찮아! 엄마가 오늘 낮에 유리 값을 다 갚아 주었단다.” 불안해하던 아이에게 마침내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죄를 감당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보혈의 피 값을 지불하고 산 천하보다 귀한 보배 중의 보배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로 나오기만 하면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모든 죄를 사하시며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시고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혹시 하나님을 파시나요?
어린소년과 백만장자 노인의 훈훈한 미담이 미국 사회에 화제가 됐습니다. 20세기 초, 미국 서부의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느 날, 10살 정도인 남자아이가 1달러를 손에 꼭 쥐고 거리에 있는 상점마다 들어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하나님을 파시나요?”
가게 주인들은 안 판다고 말하거나 혹은 아이가 장사를 방해한다고 생각해 매몰차게 내쫓기도 했습니다. 해가 점점 지고 있었지만 아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69번째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안녕하세요? 이 가게에서는 하나님을 파시나요?”
가게 주인은 60이 넘은 머리가 하얀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서 무엇 하려고 그러니?”
자신에게 제대로 말을 걸어주는 사람을 처음 본 아이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고, 자신의 사연을 노인에게 털어놨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오래전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삼촌이 돌봐주고 있는데, 얼마 전 삼촌마저 건축 현장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현재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삼촌을 치료하던 의사가 아이에게 “삼촌을 구해줄 것은 하나님밖에 없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이는 이 말을 듣고 하나님이라는 것이 정말 신기한 물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천진한 아이는 의사에게 “제가 하나님을 사와서 삼촌에게 먹이면 꼭 나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들은 노인은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돈은 얼마나 갖고 있니?” 아이는 대답했습니다. “1달러요.”, “마침 잘 됐구나. 하나님은 딱 1달러거든.”
노인은 아이의 돈을 받아 선반에 있던 ‘하나님의 키스’라는 음료수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여기 있단다. 얘야, 이 하나님을 마시면 삼촌이 금방 나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기뻐하며 음료수를 품에 안고 쏜살같이 병원으로 뛰어갔습니다.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아이는 자랑스럽게 소리쳤습니다.
“삼촌! 제가 하나님을 사왔어요! 이제 곧 나으실 거예요!”
다음날, 세계 최고의 의료전문가들이 전용기를 타고 이 작은 도시에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삼촌이 있는 병원으로 달려와 삼촌의 상태를 진찰했습니다. 아이의 삼촌은 정말로 병이 금방 낫게 되었습니다.
삼촌은 퇴원할 때 천문학적인 병원 고지서를 보고 깜짝 놀라 쓰러질 뻔했습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어떤 억만장자 노인이 이미 비용을 전부 냈다고 말했습니다. 삼촌을 진찰한 의료진도 이 노인이 고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삼촌은 나중에야 아이가 마지막으로 들른 가게의 주인이 억만장자 노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 노인은 할 일이 없을 때 가게에서 적적한 시간을 보내곤 했던 것입니다.
감격한 삼촌은 아이와 함께 노인의 가게로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노인은 여행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가게 점원은 이들에게 이번 도움을 마음에 크게 담아두지 말라는 말과 함께 노인이 쓴 편지를 전했습니다. 삼촌은 그 자리에서 편지를 열어봤습니다.
“젊은이, 내게 고마워할 필요 없네. 사실 모든 비용은 자네의 조카가 다 낸 것이니 말일세. 자네에게 이런 기특한 조카가 있다는 것이 정말로 행운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네. 자네를 위해서 1달러를 쥐고 온 거리를 누비며 하나님을 찾아다녔으니 말이야. 하나님께 감사하게. 자네를 살린 건 그분이니 말일세!”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