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죄악과 이혼하라(히12:1~14)
우리는 지난 주일에 2017년 송구영신예배 영상을 같이 봤습니다. 제가 왜 2017년을 마무리하는 주간에 연말결산을 제쳐두고 그것을 다시 보여드렸을까요? 자신을 돌아보라는 뜻에서였습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있나,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았나’ 돌아보고 반성하고 깨달으라고 그리 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회사 사장에게만 인정받아도 팔자가 피거늘, 대통령에게 인정만 받아도 한 권세 하거늘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인정(認定)’이란 한문을 보면 말씀 언(言)변에 참을 인(忍)으로 이루어진 알 인(認)자와 집 면 (?)변에 바를 정(正)이 합쳐 정할 정(定)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말뜻을 헤아려보면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환난과 고통이 와도 참고 바르게 행하여 가정에서부터 그것을 알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인정받는 것의 출발이 가족, 가정 안에 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사실 가족에게 먼저 인정을 받은 자가 사회에서 인정을 받게 되고, 하나님께도 인정을 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집에서 인정받은 이삭, 다윗이나 요셉이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가 된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인정받는다’는 말과 상통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신뢰입니다. 신뢰(信賴)는 사람 인(人)변에 말씀 언(言)이 합쳐서 신(信)이고, 뢰(賴)는 묶을 속(束)변에 질 부(負)가 합해서 된 것입니다. 즉
‘내 말을 사람의 등에 실어 보낼 만큼 믿을 수 있는 것’이 신뢰입니다. 내 모든 것을 맡겨도 걱정되지 않는 사람, 의심되지 않는 사람, 안심되는 사람이 신뢰받는 자요, 세상의 어떤 유혹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그 목적을 이루는 자가 신뢰받는 자입니다.
백세에 얻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등에 지고 아브라함은 조금의 흔들림이나 갈등 없이 사흘 길을 갔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산에 올라 아들에게 칼을 대려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급히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칼을 거두게 한 뒤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신뢰한다고, 인정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창22:17~18)는 복을 주셨습니다. 다니엘이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등에 지고 가다 죽음에까지 이르지만 흔들림 없이 끝까지 완주했더니 하나님은 그들을 인정하시어 높이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신뢰받고 인정받으려면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죄악과 이혼해야 합니다. 이별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이별과 이혼은 전혀 다릅니다. 이별은 다시 만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안 됩니다. 아예 죄와는 갈라서야 합니다. 얼마나 잔인하게 갈라서야 하는가 하면,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성경은 이렇게도 설명합니다. 오른 눈이 죄를 지었거든 오른 눈을 빼버리고, 오른 손이 죄를 범하거든 찍어버리라고 했습니다(마5:29~30). 그래서 요한복음 5장에서 베데스다 연못 근처에 기거하는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후에 예수님은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5:14)고 하셨고,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하다 현장에 붙들려온 여인에게도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고 하신 것입니다. 죄악과 이혼하고 다시 재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한 여자가 두 남자를 섬기다 들키면 안 죽을 만큼 맞고 쫓겨날 겁니다. 이처럼 사람이 하나님보다 돈, 쾌락, 명예를 좇으면 하나님의 징계가 있음을 물론이고 지옥으로 내몰릴 것입니다. 그러니 죄악과 당장 이혼하십시오.
둘째는 악연과 이혼하십시오. 죄의 연을 잘라내라는 것입니다. 엉킨 실타래는 풀기 어렵습니다. 그럴 때는 실이 아깝다 말고 과감히 잘라내는 것이 상책입니다.
삼손과 들릴라는 악연이었습니다. 삼손이 그 연을 잘라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나실인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눈이 빠진 채로 연자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연도 그랬고, 여호사밧도 아합과 악연을 맺었다가 겨우 죽음만을 면한 비참한 지경까지 이르게 됩니다. 성경은 그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6:14~16).
성경 느헤미야 13장에서 느헤미야는 ‘이방여인과 혼인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악연을 맺을 때 어찌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저는 열국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저로 왕을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저로 범죄케 하였나니 너희가 이방 여인을 취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느13:26~27). 솔로몬이 이방여인들을 첩으로 맞아 그로 인해 우상숭배가 만연하게 되었고,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은 일이 있지 않습니까?
사무엘이 하나님께 범죄한 사울과의 연을 끊지 못해 애달파할 때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삼상16:1)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잘라내라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1:1). 다윗은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요,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검은 깨와 흰 깨를 섞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그것을 골라내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연을 맺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연을 끊어내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니 처음 연을 잘 맺어야 합니다.
이제 2018년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되자’는 말씀은 2017년 슬로건만이 아닙니다. 평생 우리의 숙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죄악과 이혼하고, 죄악의 고리를 끊어내야 합니다. 여러분, 신용불량자란 은행에서 돈을 빌린 후에 갚지 못한 자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기 관리, 자기 경영을 못해서 죄악에 가담하고 물들어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야말로 구제 못할 신용불량자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고 신뢰받지 못해 신용이 떨어지면 버림받습니다. 그러니 어서 깨닫고 과감히 죄악과 이혼하고, 잘못된 연을 끊고 돌아오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내가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119:162~165). 이 말씀대로 죄악과 거짓을 멀리하여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됩시다. 또한 하나님 제일중심으로 살아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됩시다. 그러면 새해에 범이 날개를 다는 축복이 당신에게 임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자기관리에 실패하면
신용불량자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