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능력
2010년 칠레의 산호세 광산에서 붕괴사고가 일어났다. 그러나 지하 700미터 흙더미 속에 갇혔던 광부 33명은 67일 만에 전원 구조되었다. 구조된 광부의 말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버틸 수 없었습니다. 어둠의 시간이 지속되자 더 이상 동료들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어요. 혹시라도 ‘내가 인육이 되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에 잠시도 곡괭이를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그때 호세 엔리께스가 소리쳤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이곳에서 서로에 대해 더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간의 본성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고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주관해주세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짧은 기도였지만 우리는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33명 모두는 이 난관을 돌파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예수님은 34번째의 동료이자 우리를 살려준 구원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바꾸기 원하신다. 그 변화의 힘은 바로 ‘감사’에 있다. 오병이어의 기적(요6:11),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사건(요11:41).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살아난 일 모두 감사의 힘이었다(단6:10).
총회장님 또한 감사가 항암제요, 방부제요, 성장 촉진제라고 가르치신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6~7),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한다(살전5:18).
최악의 상황을 최고의 상황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은 오직 감사뿐임을 기억하고, 늘 감사하는 신앙으로 살아가자.
김상욱 목사
ksw9669@hanmail.net
생사화복의 근원, 생각을 지켜라
1900년대 포르투갈에서의 일이다. ‘노동조합 활동은 금지한다, 모든 사회활동은 국가가 조정, 관리한다, 총리 해임은 불가능하다.’는 내용의 헌법개정안에 대해 찬성 58만여 표, 반대 5천, 그리고 기권이 자그마치 42만여 표라는 이해하기 힘든 결과가 나왔다. 왜 그랬을까? 바로 3F(Futbol: 축구, Fatima: 일종의 종교, Fado: 포르투갈 음악)로 대변되는 일종의 우민화정책 때문이다.
당시 살리자르 총리는 3F를 중점으로 국가재정의 상당 부분을 유흥에 투자했다고 한다. 장기집권을 위해 국민의 관심을 국가의 중대 사안이 아닌 여가 활동으로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반면 일체의 교육지원은 하지 않은 결과, 36년의 독재 치하를 지나며 국민의 문맹률은 무려 40%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의 생각을 빼돌린 독재자의 의도대로 온 나라가 휘말린 결과다.
로마제국을 다스렸던 황제이자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인생은 우리의 생각이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디 인생뿐일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생각이 곧 생명의 근원’이라고까지 말씀하신다(잠4:23). 다시 말해 생각에 생사화복이 달려있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왜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었는가? 그 ‘생각’이 뱀의 꾐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가룟 유다도 마귀가 예수를 팔 생각을 집어넣은 결과 단돈 은 삼십 냥에 스승을 팔아넘긴 것이고, 다윗 역시 편안하다, 안일하다 할 때 생각을 빼앗겨 밧세바를 범한 것이다.
반면에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갔으면서도 생각과 마음을 지키고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 전 재산과 자녀도 잃고 건강까지 잃었지만 끝내는 하나님 앞에 순전함을 지킨 욥의 창대한 결과를 보라. 악한 마귀는 우는 사자가 되어 우리의 ‘생각’을 빼앗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감사와 순종, 평강은 가로채고, 원망과 불평, 불순종과 염려의 씨앗을 뿌려 우리의 삶과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그 목적이기에.
내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축복의 통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삼고 기도를 운전대 삼아 육신의 생각을 잘라내고, 바꾸고, 견고케 할 때 내 삶과 영혼에 승리가 있다.
이국진
joyful_jina@hanmail.net
인내하는 자의 축복
인내와 배려심 부족으로 화를 참지 못해 잇달아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여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최근 덥고 습도까지 높아 불쾌감이 높아지면서 사소한 일에도 언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상황을 잘 참고 넘길 수 있는 인내와 배려심이 필요하다.
참을 인(忍)자는 칼 도(刀)자 밑에 마음 심(心)자가 놓여있다. 마음에 칼을 얹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는 참지 못하면 나부터 칼에 찔리게 된다는 뜻으로, 나부터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 마음속에 죽순처럼 솟아오르는 온갖 미움, 분노, 탐욕 등을 마음속에 있는 칼로 잘라버리라는 뜻이기도 하며, 참는다는 것은 칼로 마음을 베어내는 것처럼 아플 수 있다는 뜻도 담겨 있다. 예로부터 천자가 참으면 나라에 해가 없고, 제후가 참으면 큰 나라를 이룩하고, 벼슬아치가 참으면 그 지위가 올라가고, 형제가 참으면 집안이 부귀하고, 부부가 참으면 일생을 해로할 수 있고, 친구끼리 참으면 이름이 더렵혀지지 않고, 자신이 참으면 재앙이 없다고 전해온다.
인생이 잘 나갈 때는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상대와 비교해 좀 나으면 우쭐대며 마음이 높아진다. 그러나 고난이 오고 힘든 일이 오면 그때야 자신을 정확히 보게 된다. 그래서 다윗은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시119:71)고 증거하고 있으며, 바울은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8:18)고 고백하고 있다.
또 욥은 고난을 인내함으로 주변 사람들을 깊이 알게 되었다. 욥이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 형제와 아내, 이웃 모두 등을 돌린다(욥19:13~19). 그래서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요 용서의 대상, 기도의 대상이지 믿음이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고 증언한다.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참고 인내하자. 갖가지 문제들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며 더 기도하여 풍성한 열매 맺기를 축복한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그의 결말을 보았다”(약5:11).
임택함 목사
cjcc1004@hanmail.net
오래 사는데 도움을 주는 운동 ‘달리기’
수명 연장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운동은 ‘달리기’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달리는 횟수나 속도와 상관없이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3년 정도 더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리기만큼 수명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지닌 운동은 없었다. 아이오와 주립 대학 이덕철 교수 연구팀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을 ‘심장병에 관한 진보’ 저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지난 2014년 미국 쿠퍼 연구소가 조사한 ‘운동과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했다. 다른 대규모 연구 결과도 참조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달리기 속도나 거리에 상관없이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약 40%정도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할 위험을 떨어뜨려 준다. 심지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거나 고혈압, 또는 비만이 있는 그룹군도 마찬가지였다. 달리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 달리기를 시작하면 25%정도 심장마비 위험이 줄었다. 매주 2시간 정도 달리면 3.2년 정도 수명을 늘려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1시간 달릴 때마다 수명이 7시간 정도 늘었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이덕철 교수는
“물론 수명 연장이 무한하지는 않다.”며 수명 증가 수준은 아무리 더 달리더라도 3년 정도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어느 수준까지는 달리기 양과 수명 증가량은 비례 관계였다. 일주일에 4시간까지는 수명이 꾸준히 늘었다. 그 후부터는 더 달려도 수명은 더 늘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이 달리더라도 수명이 떨어지지는 않았다고 이 교수는 밝혔다. 달리기를 과하게 하면 수명이 오히려 줄어든다는 일부 주장을 반박한 셈이다. 걷기, 자전거 타기 등 다른 종류의 운동도 수명 연장에 도움을 줬지만 ‘달리기’만큼 많이 늘지는 않았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왜 ‘달리기’가 여러 운동 중에서도 유독 더 효과적일까? 사람의 몸을 자동차에 비유한다면, 심장은 자동차의 엔진에 비유할 수 있다. 심장은 심근으로 이뤄져 있고, 이 심장근육에는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하는 혈관이 뻗어 있다. 달리기는 심근과 혈관을 모두 건강하게 만든다. 또 우리 몸에 산소를 불어 넣어 주는 폐포의 면적을 증가시켜 산소 공급능력을 향상시킨다. 달리기는 개인의 의지만 있으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시작할 수 있다. 특히 비만으로 감량하고 싶으시다면 운동장이나 공원에서 가볍게 달리기를 시작해보자.
Dr. 조희경
pearl9230@naver.com
양심(良心)
조선시대, 가난하지만 청렴하기로 소문난 홍기섭이란 선비가 있었다.
어느 날 홍기섭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그런데 도둑은 황당했다. 훔쳐갈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부엌으로 들어간 도둑은 무쇠로 만든 솥단지를 발견하고는 그거라도 떼어가려고 했다.
한편, 인기척이 나는 것을 알아챈 홍기섭의 아내는 남편에게 도둑이 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홍기섭은 “뭐 가져갈 거나 있소? 우리보다 힘든 사람인가 보오. 그러니 그냥 놔둡시다.” 라고 했다.
반면 도둑은 솥을 떼어내려고 하면서 솥뚜껑을 열어보니 이게 웬 일인가? 밥을 해 먹은 흔적이 없는 것 아닌가. 도둑은 ‘없어도 지지리 없는 집이구나.’ 하고는 되레 솥단지에 주머니에 있던 엽전 일곱 냥을 두고 나왔다.
다음 날 부엌에 간 홍기섭의 아내는 솥단지가 그대로 있는 것을 발견했고, 더욱이 솥단지 안에 돈까지 들어있는 것을 보고는 남편에게 사실을 고했다. 그러자 홍기섭은 집 앞에 ‘우리 집 솥단지에 돈을 잃어버린 사람은 찾아가시오.’ 라는 쪽지를 붙여놓았다. 이 소문이 도둑 귀에까지 들어갔다. 도둑은 과객인 척하며 홍기섭의 집으로 찾아가 말했다. “밖에 써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설마 남의 솥 안에 돈을 잃어버릴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늘이 주신 거라 생각하고 받지 그러십니까?” 그러자 홍기섭은 말했다. “내 것이 아닌데 어찌 주머니에 넣겠습니까?” 그 말이 도둑의 마음을 쳤고, 도둑은 이윽고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용서하십시오. 소인이 어젯밤 솥을 훔치러 왔다가 가세가 딱해 놓고 갔습니다.”
이후 도둑은 홍기섭의 양심에 감복해 그의 제자로 평생 성실하게 잘 살았다.
내 것이 아닌 것을 탐내어 슬쩍 내 주머니에 넣다가 쇠고랑 차는 사람을 많이 본다. 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예를 순간 잃는 사람도 본다. 양심의 소리를 등진 대가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딤전1:19).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