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 안경을 끼고 성경을 봐라(창1:1)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왜 하나님은 이렇게 성경을 보라고 강조하셨을까요? 그것은 그 안에 모든 영·혼·육의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다독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데, 다독하는 것도 좋지만, 성경 한 구절을 봐도 ‘왜’라는 안경을 끼고 봐야 합니다. ‘왜’를 알면 ‘어떻게’라는 길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원인을 알면 문제가 해결되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는 성경 첫 장인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너희가 거하고 누리는 이 세상을 만든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전지전능한 분이다’ 이겁니다. 또한 같은 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분이니 조물주 앞에 피조물인 인생은 ‘아니요’가 아니라 오직 ‘예’ 하며 순종하라는 것(고후1:18)이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만드셨다’는 것은 ‘너희에게도 잠재된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지을 때 이미 능력을 부여해놨으니 그것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입니다(창1:28).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를 보내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마귀의 일을 진멸하기 위함입니다(요일3:8). 우리에게 갑자기 닥친 멸망, 병, 저주, 가난의 배후에는 우리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마귀의 계획이 숨겨있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사망을 두려워하고 마귀의 종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씨를 마리아의 밭에 떨어뜨려 우리와 똑같이 혈육을 입은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본이 되게 하기 위해 배고프게도 하시고, 울게도 하시고, 시험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죄와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세상과 마귀로부터 우리를 완전히 해방시키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을까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받았던 성령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신 것은 예수님처럼 성령을 힘입어 장래 일을 알고 귀신을 내쫓으며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하여 죽음 다음에 부활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게 하기 위함입니다(행1:8).
왜 엄마는 나만 보면 공부하라고 할까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잘 되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이렇듯 ‘왜’라는 안경을 끼면 오해가 풀리고 진실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볼까요? 왜 예수님이 당신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포도나무가지에 비유하셨을까요(요15:5)? 이는 포도나무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면 죽듯이, 너희도 예수에게서 떨어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가룟 유다가, 사울이 떨어지니 죽었지 않습니까? 예수 안에 거해야 축복의 열매, 생명의 열매, 건강의 열매, 영생의 열매가 맺힙니다.
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을까요(살전5:17)?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는 말씀이 답입니다. 재판장을 찾아간 과부처럼 두드리면 때가 되면 열린다는 말씀입니다(눅18). 그런데 조용히 기도도 하지만, 부르짖으라고 하셨습니다. 왜요? 아이가 자지러지면 엄마가 급히 달려가듯, 하나님도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고 하십니다.
또한 방언기도 하라 하셨는데 그것도 까닭이 있습니다. 방언은 악한 것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준 자와 받은 자만이 알 수 있는 비밀대화이기 때문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고전14:2). 또한 방언은 마음의 곤고함에서 해방시켜 주기에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사28:11~12). 제가 오늘에 있었던 것은 방언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감사할 뿐입니다(고전14:18).
왜 하나님은 고난이 유익하다고 하셨을까요? 이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시119:71), 고난을 통해서 정금으로 변화되고(욥23:10), 고난을 통해 강인한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을, 요셉을, 다니엘을 고난 속에 넣으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십일조를 하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만물의 주인이심을, 하나님이 축복의 원천이심을 시인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십일조를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말3:11~12)고 하십니다. 록펠러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나옵니다. 왜 하나님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성경에 실었을까요?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고, 그 후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게 됨을 알게 함이요(히9:27), 천국은 돈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길은 오직 ‘예수’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14:6).
왜 4명의 친구가 중풍병자를 지붕을 뚫고 예수님 앞에 달아 내린 이야기를 하셨을까요(막2)? 이는 어떤 위기 앞에서도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이고(히10:39), 급란지붕(急難之朋), 곧 힘들고 급할 때 찾을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야곱도 볼까요? 야곱을 통해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보다 당장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을 사모하라고 말씀하셨고, 고난 뒤에 오는 영광을 말씀하십니다. 임금착취와 사기결혼 등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고난 중에도 낙심하지 않고 거기에 적응하여 성공한 야곱을 통해 고난 중에 있는 자를 위로하시고, 또한 격려하신 것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는요? 꿈을 가진 자는 지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고, 하나님 앞에 득죄하지 않는 자의 결과를 보여주심으로 죄악과 싸워 이기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자신을 애굽의 종으로 팔아넘긴 형제들을 용서하고 그들의 살길을 마련해준 것을 보여줌으로 우리도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입니다(롬12:21).
입다를 통해서는 환경에 굴하지 말라는 말씀과 더불어 서원은 해로울지라도 반드시 갚을 것을 가르치셨고, 에스더를 통해서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 금식기도의 위력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삼손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자의 결말이 무엇인지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거울입니다(고전10:11).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짝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사34:16). 그러므로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 하고 생각하고, 거기에 자신을 접목해보면 모든 문제가 풀리고, 답이 나올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순종의 삶의 결과를, 다윗을 통해 죄보다 회개가 중요함을, 한나를 통해 애통하는 기도의 위력을, 다니엘을 통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신앙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크나큰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니 매일 성경을 묵상하고, 하나님 말씀을 상고합시다. 그것이 최고의 지식입니다. 할렐루야!
노란색 안경을 끼면
노랗게 보이는 법이다
고난을 피하기보다
적응력을 키워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