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 자신에게 박수를 보낸 적이 있는가? (창39:1~23)
당신은 당신에게 박수를 보낸 적이 있습니까? “야, 너 참 대단하다. 진짜 멋지다.” 하며 스스로를 대견해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언제 당신에게 박수를 보냈습니까? 아마도 그것은 당신 자신과 싸워 이겼을 때일 것입니다. 영·혼·육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절제하며 자신과 싸워 이긴 자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싸움은 골리앗과 다윗 같은 싸움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는 것을 안 하는 것을 두고 능력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데 통제하고 조절하는 것, 그것이 능력입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은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낸 자입니다. 요셉은 야곱이 늙어서 얻은 아들이고, 더구나 애처였던 라헬의 아들이었으므로 이복형들보다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하여 형들의 시기를 많이 받았습니다. 더욱이 그의 꿈 이야기는 아버지에게는 큰 기대를 갖게 했지만 형들에게는 더 큰 노를 사게 해, 그는 결국 형들에 의해 애굽에 팔려가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이 때 요셉의 나이 17세. 요셉은 애굽 왕 바로의 신하인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타고난 성실과 신심으로 보디발의 신임을 받고 있던 중, 주인의 아내가 젊고 잘 생긴 요셉을 계속 유혹합니다. 동침하자고요. 그 때 요셉은 유명한 일언(一言)을 남겼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39:9). 애정이 애증으로 바뀐 주인의 아내는 요셉에게 누명을 씌웠고, 결국 요셉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눈 한번 질끈 감고 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과 싸워 이겼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잘했어, 요셉.” 요셉이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낼 때 하나님은 요셉을 향하여 기립박수를 보내셨고, 언제 어디서든 그를 형통케 하셨습니다.
사람이 자신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은 피할 수 있지만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이 언제나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충분히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처를 취할 때 완전범죄, 곧 아무도 모르게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다윗이 하나님의 눈을 인식했다면, 그는 우리아의 처 때문에 상사병이 나더라도, 충신 우리아를 죽여 가면서까지 절대 그녀를 취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혼신을 다해 자신과 싸워 이겼을 것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은 일생을 사는 동안 계속됩니다. 오죽하면 대 사도 바울조차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라고 통탄했을까요?
저도 제 자신에게 박수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왜 저라고 유혹이 없겠습니까? 돈을 가지고 와서 유혹하고, 이성으로, 명예로 유혹한 경우가 정말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제 자신과 싸웠고, 결국 이겼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늘 인지했기에 가능했습니다.
교회를 서울로 옮길 때 올림픽공원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헌데 때를 맞추기라도 하듯 그 즈음 땅끝예수전도단 회원 한 분이 300억을 줄 테니 교회를 지으라고 했습니다. 사실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흔들리는 마음, 갈등하는 마음을 잡아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눈이었습니다. 그래서 올림픽공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때도 저는 저 자신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잘했어, 이초석.” 그 후로 예루살렘 교단에 형통한 복이 임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좀 더 오래 전의 일입니다. 제가 믿지 않은 자의 사후의 영이 귀신이라고 하자 교단에서 징계를 받았습니다. 교단 측에서는 그 말만 취소하면, 그 말을 번복하면, 징계를 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죄 많은 인생을 당신의 자녀 삼으시고, 당신의 종으로 세워주신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데 살아보겠다고 진실을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요셉 말대로 하나님 앞에서 득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설득에 불응했더니 교단에서 제명하더군요. 그러나 그날 저는 교회로 들어와 우리 성도들과 함께 파티를 하며 저는 제 자신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아주 잘한 거야. 초석아.”
KGB에 끌려가서 취조를 당하고 나와서도, 가나에서 똥파리가 잔뜩 앉아있는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시장에 전단지를 뿌리고 복음을 전할 때도, 이단이라고 집회장소를 빌려주지 않아 집회가 무산되었을 때, 학교 담벼락에 올라가 복음을 전할 때도 저는 제 자신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다리오 왕 때에 다니엘을 시기하던 바벨론 신하들이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것은 지금부터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기도하는 자를 사자굴에 던져 넣는다는 것이었습니다(단6:7). 그러나 다니엘은 이러한 법이 시행된다는 것을 알고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을 향해 항상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단6:10).
그는 30일 동안만 기도를 멈출 수도 있었습니다. 마음속으로 기도해도 됐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고소되었고, 사자굴에 던질 위기에 처했지만, 끝까지 자신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박수를 보내셨고, 느브갓네살 왕부터 바사의 고레스 왕까지 형통케 하사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을 무색케 했습니다. 끝까지 금신상에 절하지 않은 사드락, 메삭과 아벳느고도, 옥문이 터져도 도망가지 않고 간수에게 예수를 전하고 성을 떠나는 바울과 실라도 스스로에게 한없는 박수를 보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공하고 싶습니까? 자신을 이기십시오. 당장 눈앞의 이익이나 쾌락을 이겨내십시오. 일신의 안일을 꾀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을 추구하는 자신과 싸워 이길 때, 영적으로든, 육적으로든 성공자가 될 것입니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니까요.
담배를 필 수 있지만 안 피는 것, 술을 먹을 수 있지만 안 먹는 것,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 권력남용을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 뇌물을 먹을 수 있지만 먹지 않는 것, 놀 수 있지만 공부하는 것… 이런 것들이 당신을 성공자로 만들 것입니다.
기생 천관녀에 빠져 젊은 날을 허랑방탕하게 보내던 김유신이 훗날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는 신라의 명장이 된 힘은, 바로 어머니의 유언을 가슴으로 받은 후, 자신도 모르게 기생집으로 향하는 말의 목을 자르고 입산수도를 결심했던 그 위대한 결단이 그를 위인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 동안의 삶을 청산하고 산 속으로 들어가는 김유신도 아마 자신에게 박수를 보냈을 것이 분명합니다.
위대한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결단이 위대한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결심합시다. 할 수는 있지만, 해서 안 되는 일은, 하면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기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당신을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쳐서 격려합시다. 분명 하나님도 당신을 박수로 응원하실 것이고, 당신의 앞날을 형통케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도 육신을 가지셨기에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자신과의 싸움에 이기고,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하심은 그 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룬 것이기도 했지만, 스스로에게 ‘애썼다. 너무 잘했다’라고 박수를 보내신 것이기도 합니다. 그 예수님께 하나님은 박수를 보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당신의 보좌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 인류가 예수님께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하나님이 나를 보고 있다고 항상 인식하는 겁니다. 그러면 많은 유혹을 이기고 승리할 것입니다. 그때 스스로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십시오. 할렐루야!
위대한 사람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결단이 위대한 사람을 만든다
큰 자가 되기 전에
깨끗한 자가 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