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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호 목차 › 붕우칼럼

뒤에는 눈이 없다

503호 · 2009-10-16

어느 농부가 일을 하다가 잠시 쉬려고 나무그늘 아래에 몸을 눕혔다. 누워보니 그것은 밤나무였다. 농부는 혼자 중얼거렸다.

“하나님도 참, 밤도 참 작게 만드셨지. 이런 나무에는 밤을 크게 만들어 달리게 하셨어야지. 호박만 하게 만드셨으면 보기에도 얼마나 좋을까.” 그러다 그는 살포시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의 얼굴에 딱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아야!” 그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밤송이 하나가 얼굴로 떨어진 것이다. 그는 얼른 회개했다. “하나님, 아까 한 말 취소입니다. 밤은 딱 이 사이즈가 좋습니다. 호박만 했더라면 저 오늘 초상 치렀습니다.”

사람들은 가끔 “왜 하나님은 뒤에는 눈을 안 만들어 놓으신 거야? 뒤에 눈이 있으면 편할 거 아냐?”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깊은 뜻을 어찌 알랴! 만일 뒤에 눈이 있다면 어떨까? 내 생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지나칠 정도로 과거에 집착하게 될 것이다.

지나간 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그것에 연연하여 결국 미래를 계획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잖아도 사람들 중에는 과거의 노예로 사는 자들이 허다한데 뒤에 눈이 있으면 더욱 그렇지 아니할까. 오죽하면 전도서에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라고 하셨을까.

우리에게 앞을 볼 수 있는 두 눈만 있음이 족하다. 우리가 많이 보지 못하는 것은 눈이 부족해서도, 뒤에 눈이 없어서도 아니다. 우리가 보지 못함은 보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이고, 관심이 없기 때문이며, 주인의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디 과거에 연연해 하지 말고 내일을 보는 혜안을 가진 자들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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