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門)은 두드리는 자에게 열린다
대구 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회에 젖는다. 대구 목요철야와 대구 예수중심교회의 설립을 지켜본 필자로서는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눈물과 기도가 있었는지 잘 안다. 더구나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대구교회를 지키고 있는 한송이 전도사의 모습은 그 치열함에 절로 숙연해진다.
늘 잔뜩 쉬어있는 목소리, 바짝 말라있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갖게 하지만, 그러나 대구 교회의 오늘이 있는 것은 바로 그 여종의 기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로지 목사님께 배운 대로 기도의 무릎으로 대구 교회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목사님은 예정된 스케줄과 달리 대구에 오시게 된 이유를 설명하시며 기도의 위력에 대해 설교하셨다.
“나는 원래 지금쯤이면 필리핀에 가 있어야할 사람입니다. 지난 필리핀 집회를 마치고 나는 신민호 목사에게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부지를 알아보라고 지시하고, 우크라이나 집회를 마치는 대로 필리핀을 방문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한송이 전도사는 대구 집회를 해달라고 졸라댔지만, 내 마음은 필리핀에 가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내가 오늘 여기에 있는 것은 기도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케 해주는 사건입니다.
아마 신민호 목사는 당연히 내가 올 줄 알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한송이 전도사를 비롯한 대구 교회의 성도들이 얼마나 절실히 기도했는지, 필리핀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습니다. 가타부타 아무런 보고가 없어 필리핀 스케줄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차에 결국 대구 집회 날짜가 되었고, 나는 꼼짝 없이 이곳으로 끌려오게 된 셈입니다. ”
잘 익은 열매는 손만 톡 하고 갖다 대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정말 이날 대구 집회는 그들이 얼마나 기도로 준비했는지 알기에 충분했다. 목사님은 외치는 목소리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믿음에 대해 역설하셨다. 늦은 시간에 찾아가 보리떡을 강청한 친구의 이야기, 교만한 재판관을 귀찮을 만큼 찾아가 억울한 소송을 이겨낸 과부의 이야기 등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역사는 천국을 침노하는 자가 천국의 기쁨을 끌어내리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음을 이야기해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려고 모든 것을 예비하셨지만, 거저 주었다가는 에덴동산을 빼앗긴 아담처럼 될까봐,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시고 응답을 향한 우리의 절실함을 체크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만큼 갈망하며 절실하게 간구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응답은 정비례한다. 이는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어미의 심정과 같다.
설교 후, 목사님은 강청하며 부르짖어 기도할 것을 촉구하시고 병자들을 단상으로 불러올리셨다. 성전을 가득 메운 성도들이 너도 나도 단상으로 올라왔다. 목사님은 용신할 틈이 없이 사람이 몰리자, “병자들만 올라 오랬더니 왜 이렇게 병자들이 많아? 다 병자야?” 하시며 안수에 몰두하셨다. 그런데 단상 앞으로 가보니 대구 담임인 한송이 전도사가 모든 성도들이 단상으로 올라갈 것을 종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필자가 물었다.
“아니, 다 올려 보내시려는 겁니까?”
그러자 한송이 전도사는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답했다.
“우리 성도들 다 고침 받고 복을 받아야 해요. 그러니 다 올라가야 해요.”
양떼를 이끄는 목자의 심정이 바로 저런 건가 싶었다. 수많은 귀신들이 드러나 소리를 지르고 떠나가며 영계의 비밀을 드러냈다. 각색 병이 예수 이름으로 고침을 받았다.
안수를 마치시고 단을 내려오시는 목사님은 파김치가 된 모습이었지만, 성도들이 달려들자 또다시 일일이 기도해주시고 상담에 응해주시는 것이었다. 자식 많은 어미의 젖가슴이 남아나지 않는다더니, 저것이 바로 초죽음이 되다시피 한 순간에도 성도를 품어야하는 목자의 자세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