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가 어쩌랴!
우리 어머니는 자식 여덟을 나셨고, 그 중 하나를 잃어 일곱을 키우셨다. 나이 터울이라야 두세 살인 자식 일곱을 키우시면서 우리 어머니의 젖은 헤질 지경이었다. 동생은 봤지만 아직은 어린 것들이 쉽사리 젖을 떼지 못해 젖 쟁탈전을 했으니…. 그래도 우리 어머니는 자식들이 가슴을 파고들면 아픔을 무릅쓰고 젖을 물리곤 하셨다.
요즈음 나는 우리 어머니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우리 교단의 모든 교역자와 성도들은 내가 해산의 고통으로 난 내 자식들이다. 그 자식들이 내게 찾아와서 “이것 해 달라, 저것 해 달라.” 한다. “이래서 상처를 받았고, 저래서 시험이 들었다”고 울어댄다. 젖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가슴을 풀어놓고 다닌다. 언제든 먹고 싶으면 젖을 빨라는 것이다. 그런데 엄마 젖이라야 두 개가 전부인데, 자식이 많다보니…. 단추 잠글 새가 없어 체신이 좀 떨어질 때도 있고, 가슴도 다 헐어 사실 좀 아프다. 그러나 어쩌랴 다 내 자식이고, 나는 그들의 어미인 것을.
나는 자식들이 내 젖을 먹고 잘 자라기만을 바란다. 그러나 어미로서 더 큰 소망은 이제 젖을 떼고 이유식 하기를 바라고, 이유식을 지나 고형식, 즉 단단한 음식도 먹을 만큼 자랐으면 좋겠다. 엄마 젖이 좋다고 다 큰 녀석들이 젖만 찾는다면, 덩치 큰 녀석이 “엄마 젖” 한다면 얼마나 한심한 일일까?
나는 우리 교역자와 성도들이 쑥쑥 자라기를 바란다. 젖 주기가 싫어서가 아니다. 장성하면 결혼하고, 자식도 낳아 젖 물리는 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헐도록 젖 먹인 어미의 마음이고, 어미의 기쁨이 아니겠는가. “어서 자라거라. 쑥쑥 자라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