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다운됐다고 K.O 된 것이냐? ( 롬 8:1,2 )
어느 성도 하나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제게 상담을 왔습니다. “왜 그래요?” 하고 물었더니, 그는 울먹이며 “목사님, 부도났습니다. 기사가 신문에도 나서 모든 사람이 다 알게 되었고… 저는 이제 끝장났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래요? 근데 나는 그 기사 못 봤는데? 다른 사람한테도 물어봅시다. 그 기사 봤는지.” 하며 곁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도 물어보니 그런 기사를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봐요, 집사님. 사람이 살다보면 넘어질 수도 있지요. 사업하다보면 부도 맞을 때도 있지요. 그렇다고 인생이 끝장나는 건 아닙니다. 여기서 인생이 종치는 건 아니란 말입니다. 집사님은 모든 사람들이 그 기사를 읽었기 때문에 자신을 멀리하고 도와주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도 모르지 않습니까? 집사님의 생각이 여기서 끝장났다고 생각하면 정말 끝장나는 겁니다. 그러나 ‘이건 과정이다’라고 생각하고 다시 일어나면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겁니다. 그래도 계속 인생이 끝났다고 하시겠습니까?” 하고 격려했더니 그의 축 늘어졌던 어깨가 펴지고, 얼굴에 화색이 돌더군요.
인생을 링 위에서 벌어지는 12라운드 권투시합이라고 생각해봅시다. 시합을 하다보면 맞을 수도 있고, 맞고 다운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운당했다고 거기서 시합이 끝나는 게 아닙니다. 열까지 셀 동안에 일어나기만 하면 경기는 계속되는 것입니다. 70년대 세계 챔피언이었던 홍수환 선수가 지금까지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게 왜 그렇습니까? 그가 바로 4전 5기의 신화를 낳은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지옥에서 온 악마’라는 살인적인 펀치를 자랑하던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싸우면서 2회에 자그마치 4번이나 다운을 당했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코치 석에서 수건을 던졌거나 스스로 일어나기를 포기했었겠지만, 홍수환 선수는 피범벅이 되어서도 다시 일어나 3회에 좌우 스트레이트와 훅으로 상대 선수를 몰아치더니, 결국 그 선수를 K.O 시켰습니다. 시합이 끝난 뒤 홍수환 선수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맞고 쓰러져도 준비한 게 아까워서 다시 일어났다. 노력한 사람은 절대 포기 못한다.” 참 멋있는 말입니다.
길을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십시오. ‘살면서 실패한 경험이 한 번도 없냐?’고. ‘평생 승승장구(乘勝長驅)만 했냐?’고.
그런 자를 찾는 것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걸음마 배운 자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 일겁니다. 말인즉 없다는 것입니다. 한 시대의 맥을 그은 명장이나 명인도 다 한 두 차례 다운의 경험이 있고,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친들조차도 다운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은 땅에 비를 내리게 한 엘리야, 제단에 하늘의 불을 끌어내린 엘리야도 시퍼런 이세벨의 칼날에 도망하여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간구한 적이 있습니다.
이세벨의 기세에 다운된 겁니다. “스스로 광야에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왕상19:4). 그럼 과연 거기서 엘리야가 생을 마감했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그는 다시 일어나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불로 군병들을 불사르는 등 많은 일을 한 후에 승천했습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라는 다윗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는 밧세바에게 정신이 팔려 죄를 범했고, 그 대가로 아들인 압살롬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데 저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서 해하고 칼로 성을 칠까 하노라.”(삼하15:14). 이보다 심한 펀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K.O로 인정하지 않았고 다시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저도 23년 목회생활에 다운당한 경험이 적지 않습니다.
9개월 만에 500명의 성도가 되었는데 그만 분란이 일어나 교회가 깨진 적도 있고, 타교회 목사님을 초빙하여 집회를 했더니 많은 성도들이 그 목사님을 따라 가버린 적도 있으며, 교단으로부터 제명을 당한 적도 있습니다. 또 수없이 매스컴에서도 저에게 강펀치를 날렸습니다. 사실 맞고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센 펀치 맞고 다운 안 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저도 많이 아파 울었고, 넘어져 기운을 못 차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어났습니다. “그래, 이제 초반 라운드인데 여기서 K.O 당할 수는 없다.” 하고 이를 물고 일어났더니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아이들 장난감 중에 오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눕혀놔도 다시 비틀비틀 거리다가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말입니다. 그 오뚝이가 왜 다시 일어나는 줄 압니까? 그것은 무게중심이 받침점 바로 위에 있기 때문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겁니다. 우리가 오뚝이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려면, 즉 오뚝이 인생으로 살려면 우리 삶의 무게중심이 바로 하나님 위에 서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거하고, 하나님의 뜻 위에 바로 서면 혹 넘어졌다 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24:16).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고 시름에 잠겨 있을 때 스스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찾아가서 그에게 말씀을 전하셨고, 그 말씀 위에 서자 겁쟁이 베드로가 사도로 대변신한 것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9). ‘일어나라’는 말씀입니다. 어서 일어나십시오.
당신의 인생은 이제 3라운드, 혹은 7라운드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다운되었다고 포기하실 겁니까? 아직 반전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는 많은데요? 당신이 포기하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하나님도 흰 수건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일어나고자 하면 하나님이 돕는 천사와 사람을 붙여주실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과부처럼 펀치를 맞고도 다시 일어나는 자가 되십시오. 마가복음 7장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다시 일어나 뜻을 이루십시오.
혹 “나는 맞아도 싸다. 죄가 너무 커서 맞은 거야.” 하며 누워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가 의인으로 다시 살았으니 힘을 내세요. 아무도 당신을 정죄하지 않을 것입니다. 알아야 할 것은 죄가 당신을 다운시킨 것이 아니라 당신의 뿌리내리지 못한 믿음이 당신을 넘어뜨린 것입니다.
대학에 실패했습니까? 대학이 한 번 실패하면 못 들어가는 곳도 아닐진대 왜 좌절하고 포기하려고 합니까? 다시 도전하십시오. 결혼에 실패했습니까? 경험한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 분명히 더 좋은 배필이 예비 되어 있을 것이고, 부도가 나셨다고요? 당신은 실패하지 않는 방법을 배운 것이니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분명히 돕는 손길이 있을 것입니다.
성공자와 실패자의 차이는 다운을 당했느냐 당하지 않았느냐의 차이가 아니라, 다운을 당하고 다시 일어났느냐 그 자리에 누워버렸느냐의 차이입니다. 성공자들은 도전을 일삼기에 더 많이 다운을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어났고, 다시 달려가서 성공을, 승리를거머쥔 것입니다. 당신도 어서 일어나 다시 도전하고 달리십시오. 그래서 성공자의 반열에, 한 시대의 맥을 그은 자의 반열에 들어가십시오. 하나님이 박수치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결과만이
과정을 대변할 수 있다
안주는 곧 포기요
포기는 자살행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