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멈춤은 자동차가 멈춤과 같다 (막 2:1~12)
자동차는 왜 멈추는 것입니까? 이 단순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바로 운전자가 차에서 내릴 때거나 차에 고장이 났거나, 아니면 사고로 인하여 차체가 움직일 수 없는 경우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차는 아무 쓸모가 없는 고철에 불과합니다. 차는 달려야 그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각이 멈춘다는 것은 마치 차가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즉 생각이 멈춘 자는 육은 살았으나 죽은 생명인 것입니다.
이번 집회를 떠나기 전, 저에게 불미스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건강을 챙기지 못한 탓에 그만 과로로 쓰러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살아야한다’는 생각으로 일어나 길고 긴 선교 여정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벌써 나의 생각을 읽고 계셨고, 놀라운 일을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힘든 몸을 이끌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임했는데 회교권 국가이다 보니 복음을 전하는데 제한이 많아 KGB에 소환되어 조사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역시 긍정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생각은 항시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내 손을 잡는 자마다 나를 돕는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대로 그들은 나중 생각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눈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재앙에 이른 것은 너희 생각의 결과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생각이 결과를 낳습니다. 빛이 1초 동안 지구를 7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엄청난 속도라지만 그 빛의 속도를 능가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생각의 속도입니다. 생각은 순간 우주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왔다 갔다 합니다. 생각은 속도뿐만 아니라 그 파괴력도 엄청나서 생각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곤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보듯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갔던 친구들은 생각이 남달랐습니다. 사람이 용신할 틈도 없이 몰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보통사람들 같았으면 ‘들어갈 수 없으니 다음에 오지’ 하며 돌아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지붕을 뚫고 내려가더니, 기어이 그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아 침상을 들고 걷는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았습니다. 바로 그들의 생각이 낳은 결과입니다.
생각이란 이렇듯 중요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안 된다’라는 생각이 있으면 만사가 안 되게 되어 있고, ‘두렵다’라는 생각이 들면 제 발자국 소리에 놀랄 만큼 만사가 두렵게 됩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면 불가능 속에서도 길이 보이고, 담대함으로 뭉쳐 있으면 호랑이 굴에서도 살아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KGB의 조사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같이 있던 나빈 선교사는 동행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생각이 이미 두려움으로 차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통역자 슬라바 목사와 저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담대히 조사관 앞에 섰습니다.
그들은 “할렐루야!”하고 악수를 청하는 저의 담대함에 기선을 제압당한 듯 해 보였고, 슬라바 목사가 보여주는 홍보책자와 설명을 듣고는 저의 세계적인 활약상에 태도를 바꾸더니 오히려 우리 일행의 안위를 염려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왔습니다. 제가 만일 거기서 두려움에 떨었더라면 하나님은 저를 도우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유럽을 뒤엎는 대역사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앞에 대적할 자 없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담대하게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었습니다. 왜 두려워합니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당신은 지금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회의적이며,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생각이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시나무를 심고서 장미덤불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나쁜 가지에서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좋은 씨를 심어야 좋은 열매가 나오는 법입니다.
생각이 긍정적이고, 창조적일 때 아름답고 실한 결과가 열리는 것입니다. 사업도 시작하기 전에 왜 ‘사업이 안 되면 어떻게 하나?’ 하고 두려워합니까? ‘사업이 잘되면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까? 지금 ‘불황이니 어려워’라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불황이니 기도해서 남보다 앞서 가겠다’고 생각을 바꾸세요. 위기가 곧 기회 아닙니까? 징검다리가 커야 멀리 갑니다.
생각은 마치 자동차와 같아서 생각이 멈춘다는 것은 곧 자동차가 멈추는 것과 같습니다. 자동차가 멈추면 어느 곳에도 갈 수 없습니다. 생각이 멈추면 미래는 없습니다. 발전도 없습니다. 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좌절과 절망뿐입니다. 그러나 차에 시동을 걸 듯 생각에 시동을 걸면 위기를 타개할 길이 보이고, 기대가 생겨나고, 비전이 샘솟아 미래의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세요. 생각을 바꾸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는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결단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생각의 틀을 깨지 못하고 그 고정관념의 틀 속에 갇혀있는 자는 절대로 그 틀을 벗어나 창조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없습니다.
생각하는데 돈이 듭니까? 누가 제한합니까? 좀 남보다 큰 생각, 큰 꿈을 가지면 안 되겠습니까? 매일 간장종지만한 틀에 갇혀 토닥거리며 인생을 소비하며 살아가려합니까? 클린턴은 학창시절 케네디를 만나 악수한 후 대통령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고, 마침내 30년 후 그는 백악관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처칠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그를 다우닝가(家)로 데려가 그에게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처칠은 영국의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렸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어떤 생각을 심어주고 있습니까?
우리의 생각을 빼내고 하나님의 생각을 주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에는 부정적인 것이 없고, 불가능이 없으며, 회의적인 것이 없습니다. 그의 생각에는 소망과 창조적인 것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으로 당신을 채우십시오.
사람의 염려로 머리털을 희게 할 수 없으며, 사람의 근심으로 사람의 키를 한 자도 자라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과 담력, 그리고 긍정적인 사고만이 역경을 이길 수 있으며, 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염려나 부정적인 생각은 다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악한 마귀는 “너는 안 돼. 할 수 없어.”하며 우리를 좌절시키려고 합니다. 우리의 현실을 들이대며 부정을 입증해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하지 않아서 못하는 것입니다. 생각하지 않아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요, 생각이 부정적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넣으면 무엇이든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 사면초가(四面楚歌)가운데 있습니까? 생각여하에 따라서 이는 사면을 다 공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세요.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미래가 바뀝니다. 그러나 그 파급은 대단한 것이며, 엄청난 것입니다. 썩은 씨에서는 열매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오늘 생각의 시동을 걸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불가능이란 우리에게 없다 불가능이란 생각이 있을 뿐이다
감람나무에서 포도를 취할 수 없다 씨가 좋아야 열매도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