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을 잡는 자는 나를 돕게 되어 있다
내가 만나는 자마다, 내가 손을 잡는 자마다 나를 돕게 된다는 믿음, 하나님이 나에게 붙여준 자라는 믿음은 바로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확실히 믿기 때문이다.
이번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집회는 많은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정말 하나님의 영광이 한없이 드러난 집회였다. 집회를 앞두고 정신을 잃고 쓰러져 이마와 코가 깨지는 상황 속에서도 나는 이 집회를 취소할 수 없었다. 마치 벧세메스로 가는 소의 심정으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비행기에 올랐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새로운 인생을 사는 느낌이었다. 집회 스케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빡빡했다. 나를 인도하는 나빈 선교사는 비록 아직 어리고 미숙하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너무 정부의 단속에 주눅이 들어있었던지 내가 그토록 가르친 담대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목사님, 여기는 이것이 안 됩니다. 이것이 어렵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그의 입술에서 이 말들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이 잘못된 생각을 뜯어고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무리 말로 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 이상 더 좋은 교육이 있겠는가? 나의 이런 마음을 아셨는지 하나님은 멋진 사건을 계획하고 계셨다.
키르기스스탄 비쉬켁의 첫 집회를 앞두고 어느 한국인 선교사가 나를 당국에 고발했다. KGB에서는 나를 조사하겠다고 출두하라는 것이다. 사색이 된 나빈 선교사와 누루싼 목사를 다독거리며 슬라바 목사와 함께 시내 모처로 향했다. 나빈 선교사는 슬라바 목사에게 “저는 안 들어가도 되지요?”라며 뒤로 빠졌다. 나는 그들을 뒤로 하고 슬라바 목사와 함께 조사실로 들어갔다.
그곳은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방이었다. 약 40분을 세워두고 그들은 종교부 장관을 비롯한 당국자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종교국장과 조사관을 보자마자 나는 “할렐루야!” 하며 단단히 악수했다. 슬라바 목사도 “슬라바 보그(하나님께 영광)”하며 인사했다.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이었다. 이토록 담대히 나간 우리 앞에 그들은 기세가 눌린 듯했다. 이 때다 싶어 나는 말했다.
“나는 법을 지키는 사람이다. 당신들의 법이 허락지 않는다면 나는 집회를 하지 않겠다.”
슬라바 목사는 담대했다. 그는 가져간 홍보책자를 그들에게 보여주며
“우리는 지금까지 러시아권 5개 나라에서 복음을 전했다. 한번도 집회허가를 받아가며 한 적 없다. 이분은 세계 70개국에 선교하고 있는 한국의 큰 목사님이다. 만일 당신들이 이분의 집회를 막는다면 세계에서 키르기스스탄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보겠는가?”
그들은 서로 쳐다보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나에게 이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다. 나는 분명히 답했다.
“이 나라는 한국의 70년대 초와 같다. 이 나라야말로 무한한 발전가능성이 잠재한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그들은 완전히 조사관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한수 배우려는 학생의 태도로 변해있었다. 더구나 회교도들이 린치를 가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며 나의 안위까지 걱정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한 가지 분명한 믿음이 있다. ‘내가 만나는 자마다, 내 손을 잡는 자마다 나를 돕기 위해 하나님께서 붙인 사람이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나는 그의 손을 더 세게 붙잡으며 그를 이튿날 점심식사에 초대했다. 그리고 한국에도 초청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입을 벌리며 좋아했다.
이튿날 만남을 통해 나는 그를 친구로 만들어버렸다. 앞으로 이곳에서 하는 집회는 자기가 책임지고 허가해주겠다고 약속까지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후 나빈 선교사를 따로 불러 따끔하게 훈계했다.
“네가 중앙아시아의 여호수아가 되려면 부정적인 말, 부정적인 생각을 당장 버려라. 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생각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체질화하지 않으면 너는 성공할 수 없다.”
그는 깊이 깨달았다며 감사했다.
미리 마음에 한계를 긋는 자에게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나를 조사하려는 자가 나를 도울 것이라는 담대한 믿음, 틀을 깨는 생각으로 다가갔다. 생각이 변해야 기대가 변하고 자세가 변하고 운명이 변하여 미래가 달라지는 것이다. 생각을 바꿔라.
